말 대신 글을 택한 이유
사람들이 보는 나와 글 속에 남겨진 나는 같지 않다. 나는 차분한 사람이 아니다. 담담하지도, 담대하지도 않다. 오히려 늘 산만하고 불안하고 걱정이 먼저 앞선다.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먼저 흩어진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나를 조금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가던 생각을 잠시 붙잡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 글쓰기는 표현이라기보다 정리에 가깝고, 나를 다스리는 일에 가깝다.
사람들은 내 글이 단단해 보인다고 말한다. 나는 그 단단함을 이렇게 이해한다.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중심이 있다는 것,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한 번 더 머무를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 말을 내뱉기 전에 한 박자 늦출 수 있는 태도, 지나치지 않아도 될 말은 굳이 남기지 않을 수 있는 절제. 내가 글을 통해 지키고 싶었던 건 그런 결이었다.
말은 너무 빠르다. 생각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 채 입 밖으로 나가버린다.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고, 그 말은 종종 의도보다 더 멀리 가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 나는 그동안 말로 많이 살아왔고 그만큼 실수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말로 남긴 상처가 글보다 훨씬 많다.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조금 더 나은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글을 택했다. 혼자 앉아 사색하며 쓰는 글은 실수를 줄여주고 감정을 한 번 더 거르게 하며 남겨도 괜찮은 말만 남길 수 있게 해준다. 글은 내게 시간을 허락해준다. 말이 허락하지 않는 시간이다.
나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순간의 대화 앞에서는 늘 서툴다. 하지만 글 앞에서는 조금 더 신중해질 수 있고, 조금 더 정직해질 수 있다. 그래서 잘 쓰지 못해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요즘 들어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좋은 말을 건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 부끄러워진다. 내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 글들에 진정성만큼은 빠지지 않았다는 것. 이 글들은 보여주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나를 붙잡기 위해 써온 기록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는 나를 다스리고 나를 덜 다치게 하기 위해 글을 써갈 것이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 쉽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래서 나에게 글쓰기는 재능도, 기술도 아니다. 내 삶의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한, 조심히 살아가려는 하나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