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丙午年), 말의 해가 밝았다. 현장의 끝단에서 경마를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말의 해’는 단순한 절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때맞춰 한 언론 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왔다. 대중에게 오랫동안 외면받아온 한국 경마가 우리만의 목소리를 건넬 수 있는 귀한 기회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정성스레 옷깃을 여미며 질문지를 기다렸다.
미리 받아본 질문지에는 익숙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한국 경마의 수준은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어디쯤 와 있는지, 도박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국민 스포츠로 거듭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30년 가까이 기수로, 또 조교사로 경주마와 호흡하며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은 적 없는 질문들이었다.
그런데 그 익숙함 앞에서 문득 멈칫하게 되었다. 질문이 그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한 순간, 묘한 허탈함, 이른바 ‘현타’가 찾아왔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우리는 왜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질문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는 뜻이며, 이 질문의 무게가 곧 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라는 것을.
숫자의 의무와 생명의 본질 사이에서 조교사는 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다. 나는 단 한 번도 기록을 위해 말을 도구로 대하지 않았고, 경마를 단순한 숫자의 나열로 이해하지 않았다. 내게 말은 언제나 뜨거운 숨을 몰아쉬는 생명이었고, 경마는 그 생명과 사람이 교감하며 써 내려온 시간의 서사였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 말의 컨디션을 읽어내고, 훈련 성과를 결과로 책임지며, 승률과 기록으로 나의 유능함을 설명해야 한다. 숫자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숫자에만 갇히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 그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조교사로서 나의 숙명이다.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경마는 스포츠로서의 본질을 잃고 만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세계화’나 ‘이미지 개선’의 열쇠는 어쩌면 기술적 혁신보다 ‘서사’의 회복에 있을지도 모른다. 경마장 문턱을 넘는 이들의 마음속에 ‘돈을 따는 요행’이 아니라 ‘생명이 달리는 감동’이 먼저 스며들 수 있다면, 우리는 굳이 도박이 아니라고 강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혁신은 낯선 시선에서 시작된다. 우리만의 리그 안에서 나누는 자화자찬식 홍보는 힘이 없다. 진정한 혁신은 폐쇄적인 구조를 깨고 외부의 창의적인 시각을 겸허히 받아들일 때 시작된다. 내부의 논리로 세상을 설득하려 하기보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피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2026년, 다시 도약하는 한국 경마를 꿈꾼다. 더 빠른 기록이나 화려한 인프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말이 나누는 깊은 유대감을 대중에게 건네는 일이다. 숫자가 아닌 생명의 이야기가 먼저 들릴 때, 한국 경마의 내일은 비로소 밝아질 것이다.
병오년 첫 제주 출장길,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인터뷰 질문지를 다시 읽어본다. 한국 경마의 미래가 곧 나의 미래라는 자각이 서늘하면서도 뜨겁게 가슴을 파고든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나는 내일도 말의 눈동자 속에서 그 답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