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사람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법

by 이신우

말과 사람, 그리고 나를 지키는 시간


나는 경주마 조교사다. 매주 열리는 경주 앞에서 말의 컨디션으로, 기록으로, 숫자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 세계는 늘 빠르고 냉정하다. 오늘의 결과는 그대로 다음 주의 평가가 되고, 잘해냈다는 말보다 다음 선택에 대한 질문이 더 빨리 돌아온다.


이 일은 말과 함께하지만 사실은 사람 사이에서 더 많이 흔들리는 직업이다. 기대와 요구, 판단과 책임, 설명해야 할 일과 삼켜야 할 말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에 포개진다. 말보다 사람이 더 어려운 날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이 직업을 선택한 사람의 몫이라는 걸 나는 오래전에 배웠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일은 말과의 교감이라는 고차원적인 감성과 기술이 동시에 필요한 작업이다. 말은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표정과 리듬, 숨과 반응으로 사람의 상태를 먼저 읽는다. 훈련은 기술이지만 컨디션을 읽는 건 감정이고, 경주는 계산이지만 매일의 결정은 결국 직관이다. 조금만 조급해도 말이 먼저 무너지고, 조금만 흔들려도 말이 먼저 알아챈다. 그래서 나는 강해 보여야 하지만 속은 늘 부드러워야 하는 사람으로 산다. 이 균형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생각보다 어렵다.


이렇게 살다 보니 압박은 일상이 되었고 스트레스는 당연한 배경처럼 붙어 다녔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에서 오래 서 있으려면 마음보다 먼저 몸이 먼저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운동을 한다. 그중에서도 검도 수련을 한다.


검도는 언제나 예절로 시작한다. 사람들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접었다 펼쳤던 나에게, 검도를 시작하는 그 짧은 인사는 하나의 정리처럼 느껴진다. ‘지금 이 시간만큼은 다른 역할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서자’라는 약속처럼.


수련은 늘 단조롭고 반복적이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같은 자세를 계속해서 고친다. 눈에 띄는 변화는 더디지만 몸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정직하게 반응한다. 그 더딘 축적이 나는 좋다.


그리고 교검의 시간. 상대와 마주 서서 검을 맞대는 그 짧은 순간에는 말의 컨디션도, 사람에게서 받은 감정도 잠시 뒤로 물러난다. 서로의 시선과 숨, 그리고 거리만이 남는다. 그 안에는 요란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긴장과 집중이 흐른다. 타격은 말없이 쌓였던 감정들을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바깥으로 밀어낸다. 속에 눌러 두었던 피로와 긴장이 소리와 함께 흩어진다. 사람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사람에게서가 아닌 방식으로 조용히 내려놓는 시간이다.


나는 아직 검도에서도 초보다. 빠르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고 자주 어긋난다. 하지만 그 어긋남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나를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 내가 조급한지, 흔들리는지, 아니면 어제보다 조금 더 차분해졌는지를.


나는 매주 경주에서 또 다른 종류의 승부를 치르고, 검도장에서는 수련과 교검을 통해 조용히 나를 다듬는다. 비교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다만 오늘의 나를 하루만큼 더 버텨내는 연습처럼.


이 직업은 몸이 먼저 버텨줘야 하고, 마음은 그보다 더 오래 버텨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래 남아 있고 싶어서 수련을 한다. 사람 사이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말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나는 여전히 매주 평가받는 조교사이고, 매주 나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오늘도 도복을 입고 조용히 검을 든다. 사람과 말, 숫자와 감정, 승부와 일상 사이에서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해.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승부의 세계에서 말을 키우고 검도를 수련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