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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Jan 03. 2021

새해를 특별하게 맞이하는 우리만의 방법

랄라랄라랄라 힘내라 돌멩이 

 연애할 때 1월 1일마다 반드시 해야 하는 행사가 있었다. 바로 그 해의 숫자를 붙이고 있는 버스 타기. 주로 왕십리 쪽에서 데이트를 했는데 마침 길에 다니는 버스 번호가 2012, 2013, 2014인 게 아닌가! 그래서 1월 1일이 되면 출발지에 가서 제일 먼저 버스를 타고 거의 종점까지 가서 내렸다. 처음 가보는 동네의 맛집을 검색해 배를 채우고 돌아오는 게 코스였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빠짐없이 행사를 치렀다.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 데이트 코스가 꽤 낭만적이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버스만 타면 눈을 감았다, 말로는 버스 타는 게 좋다더니. 


 생활근거지가 바뀌면서 2017년부터 버스 타는 데이트를 못했는데 공교롭게도 2017번부터는 서울에 다니는 버스가 없는 것 같다. 또, 이내 한집에서 살게 되면서 밖에서 데이트할 이유도 사라졌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어디에 나가지도 못하고 보신각 타종 행사도 취소되었다고 하니 왠지 더 뭔가를 하고 싶었다. 보신각 종을 안 친다니 대신 뭐라도 치고 싶었다. 




1. 소의 해를 맞이하여 소고기 먹기  

 작년 마지막 날 저녁엔 조촐하게나마 분위기 있게 요리를 할까 생각했지만, 퇴근하고 소파에 앉자마자 계획은 무산되었다. 배달을 해 먹기로 결정하고 메뉴를 검색하는데 뭔가 분위기를 내야 할 것 같아 파스타, 스테이크를 생각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막창, 보쌈, 족발을 떠올렸다. 마지막 날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라며 떠올린 메뉴란다. 그렇지, 막창이 분위기 없다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저녁 메뉴는 분위기 있게 돼지 막창이 되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먹을 메뉴는 명료하게 정해놨었다. 2021년은 신축년, 소의 해, 그러므로 소고기를 먹어야만 한다. 내 말에 남편은 그럼 내년엔 뭘 먹을 거냐고 묻는다. 호랑이, 토끼, 용, 뱀의 해에는 뭘 먹을 거냐고 묻는다. 이런 융통성 없는 사람 같으니. 고기를 호랑이 모양으로 놓아서 먹거나, '이것은 호랑이 고기다'라고 생각하며 먹으면 될 것을, 뭘 벌써 걱정하는 걸까. 어쨌든 새해 저녁 메뉴는 스테이크로 결정되었다. 남편은 요즘 무언가를 할 때마다 백종원 유튜브 영상을 틀어보더니 스테이크도 꽤 잘 구웠다. 


돼쥐와 함께 묵은해를 떠나보내고 소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다!



2. 손뼉 치고 한 곡씩 고른 노래 듣기

 매년 보신각 타종 행사를 보거나 일출을 보거나 둘 중 하나는 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두 가지 다 할 수 없으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보신각 대신 무얼 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내가 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박수밖에. 남편이랑 번갈아 가며 박수를 2021번 칠까 하다가 둘 다 너무 힘들 것 같아 21번만 치기로 했다.(ㅎㅎㅎ) 이마저도 계획이 틀어져 새해가 다 뜨고 나서야 가능했다. 21년 0시에 나는 꿈나라에 있었다. 

 

 다음은 서로 고른 노래를 감상하는 시간이다. 남편이 고른 노래는 arco의 happy new year였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하는데 특히 리스닝에 많이 취약한지라 가사를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제목이 '해피뉴이어'니까 아마도 좋은 내용이 담겨 있겠지? 그런데 멜로디가 많이 쓸쓸하다. 진지하게 들으면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나는 전날 잠들기 전까지 두 곡을 최종 후보로 놓고 꽤 많은 고민을 했다. 커피소년의 '행복의 주문'과 마시따밴드의 '돌멩이'가 후보였는데 결국 '돌멩이'를 선택했다. '행복의 주문'은 이미 많이 들어본 노래이기도 했고 '돌멩이'보다 조금 단순하게 느껴졌던 게 이유였다. '돌멩이'는 남편 말대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노래는 아니었지만 구절 하나하나가 가슴에 크게 와 닿았다. 


흙먼지가 날리고 비바람이 불어와

뼛속까지 아픈데 난 이를 악문다

아등바등 거리는 나의 삶을 위해서

내 맘 둘 곳 찾아서 난 길을 떠난다


 새해를 맞이하며 고른 노래의 앞부분 가사가 이미 뼛속까지 아프다. 왜 스스로 무덤을 파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오히려 현실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아무리 새해 복을 많이 받는다고 한들 365일 다 행복하고 기분 좋을 리는 없다. 그래도 '내 몸이 부서져 한 줌의 흙이 되어도' 같은 구절은 좀 심하지 않나 싶어 잠시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이 노래의 방점은 '꿈꾸는 돌멩이', '힘내라 돌멩이'에 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듣다 보니 내가 정말 굴러가는 돌멩이 같다. 가사처럼 굴러가다 보면 좋은 날 오겠지. 


2021년을 맞이하며 우리가 고른 노래 두 곡



3. 지혜롭게 집콕 즐기기 

 느지막이 잠에서 깨어나는데 왠지 기분이 좋다. 어제 몇 시간 동안 본 드라마가 왜 깨어나자마자 생각이 나는지. 잠에서 깨면 장천을 좋아하는 나를 우보송이 따라다닐 것만 같다, 푸하하핫. 이렇게 드라마에 몰입해본 게 얼마만인지. 게다가 중국 드라마에 빠진 건 처음인 것 같다. 이런 며칠 간의 긴 호흡과 후유증이 부담스러워서 되도록 드라마를 안 보고 영화만 보려고 하는데 뭔지도 모르고 눌러버렸다. 며칠 동안 나는 '치아문단순적소미호(아름다웠던 우리에게)'라는 중국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나는 왜 남주인공의 말 한마디에 웃는 거냔 말이다. 사람들 말이 맞았다. 나이 들고 몸이 늙어도 마음은 그대로라더니, 그래서 다행이다. 아껴서 아껴서 보라는 조언에 따라 아직 나는 주인공들의 고등학교 시절에 머물러 있다.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릴 것 같다.

 남편에겐 며칠 전에 정말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남자들 사이에 그렇게나 구하기 힘들다는, 게임기 신상 구입에 성공한 것이다.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제품이란다. 배달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 따끈따끈한 제품이다.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나는 드라마를 보며 웃고 있고, 남편은 좀비를 잡으며 재미있단다. 남편은 뻔한 드라마를 보면서 그렇게 재미있냐고 묻고, 나는 뭐하러 좀비를 잡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서로 말한다, 뭐 재미있나 보지. 어쨌든 둘 다 즐거운 새해 연휴를 보내고 있으니 그걸로 된 게 아닐까. 






 1월 1일 뒤로 주말이 이어져 아직 새해 기분을 만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일이 되면 다시 직장인의 생활로 돌아간다. 힘이 빠질 때면 머릿속에 다시 재생해야겠다. 랄라랄라랄라 힘내라 돌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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