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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Jun 24. 2021

열 번도 넘게 읽은 책이 생겼다

인생 첫 교정지를 받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거나,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렇게 책을 많이 읽거나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서 되도록 다른 작품을 접해보고 싶어한다. 또, 아무리 재미있게 봤다고 하더라도 다시 보려면 왠지 물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초속 5센티미터'인데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마지막 엔딩만 겨우 반복해 볼 뿐이다. 


 이런 내게 처음으로 열 번도 넘게 읽은 책이 생겼다. 책을 내려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이렇게 끝없이 긴 읽기 활동이 따라오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 달 출간을 앞두고 드디어 교정지를 받아보았다. 이미 몇 번이나 읽어본 글일까. 그래도 또 오랜만에 호로록 읽어버렸다. 최소 두 번 정도는 더 정독을 하고 출판사에 보내려고 한다. 다시 읽기 전에, '교정지'라는 단어부터 너무 신기하고 황홀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 첫 책 <샤를로테의 고백>과 관련된 기억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2018년 가을, 소설을 구상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대학 시절부터 여러 번 했었지만 시험에 합격하고부터 나는 읽기, 쓰기와 거의 인연을 끊어버렸다. 매우 읽고 싶었고 쓰고 싶었지만 진득하게 앉아 있는 것부터 그저 힘들었다. 앉아서 책을 보는 일에는 말 그대로 질려버린 상태였고, 먹고 노는 재미에 눈을 떴기 때문에 장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결혼하고 지난날을 돌아보다가 문득, 뭔가 그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시절의 나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콘셉트는 그렇게 시작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 노트 한 권에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천천히 틈날 때마다 사건들을 메모했다. 


 2019-2020년 겨울, 집중적으로 집필 

 한글 문서를 띄워 놓고 메모해 놓은 사건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건들은 버려졌고 몇몇의 사건들은 만들어졌다. 언제까지 미룰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에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무조건 개학하기 전에 끝장을 봐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내가 어떻게 그랬나 싶을 정도로 한두 달 동안 매일 집에서 소설을 썼다. 많이 쓴 날은 하루에 여덟 시간도 앉아 있었다. 뭐라는 거야, 누가 보면 내가 하루키인 줄 알겠다.(ㅎㅎㅎ)

 글 쓰는 과정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즐겁게 쓴 소설이었기에 오랫동안 문서 창을 띄워놓고 있어도 하나도 괴롭지 않았다. 그리고 2월 말, 새 학기를 앞두고 정말 목표한 대로 결말까지 일단 글을 완성했다. 


 2020년 2-3월, 1차 투고 

 완성했다는 기쁨에 도취되어 급하게 투고를 시작했다. 출판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남편이 만들어준 1쪽짜리 출판 기획서를 첨부했다. 정말 100군데 정도의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고 결과는 처참했다. 읽지도 않는 곳이 절반 이상, 방향이 맞지 않아 안 되겠다는 곳이 사십 군데였다. 간간히 메일 주소가 불명으로 돌아오는 곳도 있었다. 반면, 자비 출판사가 아님에도 비용을 부담한다면 당장 출판해 주겠다는 곳들도 있었다. 


 2020년 상반기, 1차 포기, 고쳐쓰기

 일단 포기하고, 고쳐쓰자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투고했을 때 아주 친절한 출판사 한 곳에서 분량을 줄이지 않으면 힘들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처음에 글을 쓸 땐 눈에 보이듯이 생생하게 묘사하자는 게 목표였는데 쓰고 보니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너무너무 길다는 느낌이었다. 군더더기 문장들도 지우고 덜 재미있거나 중요하지 않은 에피소드도 삭제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고쳤다. 


 2020년 하반기, 기획서 대폭 수정

 작년에 브런치에서 제안을 받아 출판 스터디에 참여하게 됐다. 기획서 쓰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배우고, 작가 특강도 두어 번 들었으며, 원고 피드백을 받을 기회도 있었다. 원고 피드백이 가장 필요했던 부분이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내가 보낸 원고가 누락되어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ㅎㅎㅎ)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오지 않아 여쭤보니 내 원고가 누락되었다는데, 그땐 정말 속상했다. 

 스터디에서 기획서에 대해 공부하며 보니 내가 겨울에 보낸 기획서는 정말 웃기는 수준이었다.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출판사로 발송했다니. 어느 정도였냐면, 내 기획서엔 저자 소개도 없었다. 집필 의도나 홍보 계획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기획서였단 말이다.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서를 대폭적으로 보완했다. 


 2021년 1월, 새해의 운세는 다를까 기대하며 2차 투고

 스터디를 통해 보완한 네 쪽짜리 기획서와 작년보다 반으로 줄어든 분량의 소설을 첨부하여 다시 투고를 시작했다. 작년엔 어디라도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100군데에 막 발송했는데, 이번엔 한 군데씩 메시지를 다르게 작성했다. 작년에 답이 왔던 곳 중에 이미지가 좋았던 출판사 위주로 발송했고, 역시 대부분 작년과 비슷한 답장을 받았다. 출간 방향이 맞지 않아서, 이미 올해 출판 일정이 다 잡혀 있어서 안 된다는 답장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렇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습게도, 올해 출판 일정이 다 잡혀 있다는 부분을 보고는 잠시, 아, 조금 더 일찍 보낼걸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나는 이렇게 아직도 순수한가 보다.(ㅎㅎ) 그러다가 정말 열심히 하시는 것 같은, 젊은 감각의 출판사 한 곳과 운 좋게 인연이 닿았다. 


 2021년 2-3월, 또 고친다 

 출판사에서 1차 피드백을 받고 본격적으로 고쳐쓰기에 돌입했다. 여전히 가장 큰 과제는 '분량 줄이기'였다. 줄이고 줄일 것을 나는 뭐한다고 이렇게 길게 써놓은 걸까. 분량을 줄이면서 목차는 세분화했고 구성 방식을 대폭 수정하였다. 중간에 노래 가사를 쓴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저작권에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여 다 삭제하였다. 


2021년 4-5월, 또또 고친다

 조금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으며 읽을 수 있게 대사를 보완했다. 명대사, 멋진 구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그게 쉬웠으면 내가 하루키겠지, 그렇지 않나. 급하게 쓰느라 표현보다 내용에만 집중했던 점이 뒤늦게 살짝 후회되었다. 책 한 권을 읽고 덮었을 때, 기억에 남는 명대사가 하나 정도만 있어도 성공일 텐데.


모든 작업은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삐뚤빼뚤


2021년 6월, 교정지를 받고 또또또 고친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교정지라는 것을 받아보게 되었다. 그동안은 에이포 용지에서 글자 크기 10으로 쓰인 글을 수정하였다면, 이제는 에이포 용지에 책의 형태로 인쇄된 글을 수정한다. 처음에 받아보았을 땐 이 사실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어떻게 그렇게 여러 번을 읽고 고쳤음에도 또 어색한 부분이 있고 오타가 있을 수 있을까. 진짜 대단하다. 두 번은 다시 보고 교정지를 보낼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상태로 고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걱정이 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소설이 재미있다. 너무 우울하지 않게, 잔잔하면서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의도대로 그렇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 소설을 처음 읽는 상태로 리셋하여 읽어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떤 느낌이 들까.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뭐 이딴 걸 썼어? 종이가 아깝다, 퉷퉷!'과 같은 소감을 내뱉을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2021년 7월, 나의 첫 책이 세상에 나온다



 여기서 모든 일정이 끝나지는 않겠지만 일단 지금까지의 과정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책이 나온다고 해서 내 인생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겠지만 '쓰는 사람'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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