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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Jan 09. 2020

내가 잠든 사이에 일어났던 일

이미 우리는 모두 작가

 지난 주말 여느 때처럼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는데 협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빠르게 두 번 진동했다. 이 진동은 브런치 알림이다. 눈도 다 뜨지 않고 팔을 뻗어 일단 휴대폰을 들었다. 벌써 10시 30분, 남편은 침실 방문을 닫아놓고 거실에서 혼자 신나게 게임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휴대폰 화면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찍 끌어내려 알림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커질 수밖에 없었다. 브런치 알림이 10개나 더 있다니! 어젯밤에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잠잠했던 브런치가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잠든 사이에 <서울 출신 며느리의 부산 사투리 체험기> 글의 조회수는 10000을 돌파했다. 알림 빈도를 보면 대략 10-20분 사이에 조회수가 1000씩 올라간 것 같았다. 


 브런치 메인에 글이 공개됐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한두 시간마다 통계를 눌러보면 몇 천씩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원인은 다음 메인 화면 '홈&쿠킹' 코너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정작 나는 이전에 다음 메인 화면에서 이런 코너를 찾아본 적이 없었기에 더 신기했다. 실제로 다음 메인 화면 곳곳에 여러 브런치 글들이 많이 올라와있었고 나는 운 좋게(?) 그 기회를 한 번 얻은 것뿐이었다. 브런치 인기글 순위권에 들었는지 브런치 메인에서도 자주 보였는데 대기업 카카오의 카카오 이모티콘 관련 글보다도 높은 자리에 위치해서 남몰래 어깨를 으쓱하게 됐다. 많아봐야 겨우 70-80까지 나아가던 조회수는 순식간에 3만을 넘어 밤에는 4만을 넘어갔다. 


신기한 경험이므로 무조건 캡처




 이렇게 글이 메인에 노출되고 조회수가 올라가는 현상은 다른 브런치에서도 여러 번 봐왔고 그때마다 막연하게 부러워만 했었는데 막상 이런 일을 겪으며 주말 동안 나는 마음이 불편하고 무서웠다. 새로운 알림이 뜰 때마다 혹시나 악플이 달렸을까 봐 걱정도 됐다. 같은 것을 보고도 사람마다 생각과 느낌이 너무나도 다른 걸 알고 있는지라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괜히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글은 아니겠지, 내가 하는 일을 브런치에 적어놨는데 괜히 다른 국어 선생님들의 이미지까지 같이 깎아먹는 건 아닌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이걸 보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혹시나 시어머니가 이 글을 보시면 기분이 나쁘시려나, 정말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평소 나는 걱정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게 무색할 만큼 마음 한편에서는 계속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조회수 고공 행진은 이틀 정도 지속되다가 다시 안정을 찾았다. 앗, 나는 왜 이걸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지? 




 재작년부터인가 장난처럼 내 꿈은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아이들에게 소개를 했다. 아이들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나부터 뻔뻔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아무런 아이디어도 없고 한 글자도 쓰지 않았어도 내 꿈은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노력은 이제부터 할 예정이라고(언제부터?). 그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몇은 어린 자신과 다르게 어른의 모습으로 앞에 서있는 내 모습이 대단해 보이는지 입을 헤벌리고 바라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베스트셀러 작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이름으로 쓴 책 한 권 정도는 가지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막연히 꿈꿔왔다. 이미 서점에 가면 내 이름이 쓰인 책이 2권이나 있는데 가끔 대형서점에 갈 때마다 나는 남편을 그 앞으로 꼭 끌고 가서 책 뒷부분에 쓰인 내 이름을 다시 확인시켜 주고는 한다. 그렇다. 책 뒷부분에만 작게 쓰여있다. 하나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에 작품 선정 설문을 해서 넣어준 거고, 하나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책에서 몇 페이지를 맡아 검토했기에 넣어준 거다. 내 이름을 더 넣고 싶어서 책을 읽지도 않고 추천사를 쓰기도 했었다. 이건 이름 욕심이야 뭐야. 책을 쓰고 싶으면 출판 모임에 들어오라고 했다. 이미 같은 일을 하고 계시는 많은 선생님들이 관련 활동을 하고 계셨다. 그런데 몇 년째 선뜻 못 들어가고 있는 이유는 솔직히 마음이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연구하고 그 내용을 쓰면 된다고 하지만 독서를 그렇게까지 즐기지 않는 내가 어떻게 독서 관련 책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 독서의 중요성이야 말해 뭐하겠냐마는 나도 못하면서 억지로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내 경험을 거짓으로 둘러대고 싶지는 않다.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시대. 출판사의 도움이 없어도 자비를 써서 누구든지 얼마든지 책을 낼 수 있는 시대. 이런 시대에도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또 브런치에서는 이미 서로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고 있는데 그 단어를 댓글로 확인할 때마다 내가 진짜 작가인가 기분이 오묘해지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한다면 책을 내지는 못했어도 이미 우리는 모두 작가가 맞는데 그 호칭이 아직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나는 나를 위해서 글을 쓴다고 생각했었고 그 누군가는 글이라는 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읽혔을 때에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가지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 조회수 3만에 무서움을 느끼다니, 조금 더 담력을 키워야겠다. 그래서 일단 그냥 내키는 대로 써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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