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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 Jan 10. 2019

N포 세대의 청년들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생애 첫 해외여행 후기

N포 세대의 청년들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생애 첫 해외여행 후기



홋카이도로 생애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던 '그 흔한 해외여행 한번 가본 적 없는 나의 불쌍한 청춘'은 벗어난 셈이다.

여권도 발급받지 않은 상태였는데, 친구와의 술자리 중에 생활비나 잔고 생각은 집어던지고

충동적으로 비행기 표를 결제해버렸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다녀온 결과부터 말하자면 괜찮다.

괜찮다 못해 시기적절하기까지 했다.

삶에서 잠깐 벗어나는 게 더 삶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다.


출국하기 전 나의 상태는 물에 빠진 전화번호부 같았는데, 빽빽한 데다가 너덜너덜한 종이죽 같았다.

손에 쥔 것 하나도 없이 살아남기 위해 열성적으로 살아왔다.

열정이 아니라 열성(熱性). 문제라면 그게 문제였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자처하면서부터 월수입이 예상보다 저조하거나 손에 쥔 일감이 떨어지는 날이면

턱밑까지 조여 오는 불안감에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내 최선의 결과가 고작 이건가.


돌아보니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는 디자이너면 당연히 잘 다뤄야 하는 툴이고,

영상디자인과 출신이니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조금 다룰 줄 아는 것은

 메리트도 아니거니와 잘하는 사람이 널렸고.

그림 그리는 스킬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외국어도 없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밟고 있던 지반이 스티로폼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느낌이었다.


작고 큰 디자인 회사들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난 후에 알고는 있었다.

내 꿈은 회사원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가기 바로 전 조급함에 한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결과는 당연히 낙방.

대학교 중퇴에 내 걸만한 스펙조차 없는 내가 정직원이 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침울한 마음에 열몇 개의 공모전에 시안을 제출했지만 줄줄이 예선 탈락.

기분은 조금 더 처참해졌다.


어쩌랴. 현실이 그런 걸.

손쓸 수 없는 처참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김포공항에서 신치토세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대한민국은 저 멀리 미니어처 장난감처럼 작아지다가 이내 구름 밑으로 파묻혔다.





홋카이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달랑 영화 <러브레터>뿐인 내 망상을 실현이라도 해주는 듯이

삿포로시에는 4박 5일 내내 거짓말처럼 폭설이 내렸다.

두껍게 쌓인 하얀 눈이 줄줄이 끌고 온 내 시름을 덮어두어도 좋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횡단보도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큰 눈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도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친구들과 먹고 마시기에만 열중했으니까.

'고쿠로사마데시타(수고하셨습니다)'가 '고치소사마데시타(잘 먹었습니다)'로 잘못 튀어나오는 마당에

근심 걱정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 놓아두고 고삐가 풀린 듯이 스즈키노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고지서가 쫓아오지 못하는 자유였다.


삿포로는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정도에 해당하는 곳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삿포로역에서 나오는 순간 90년대로 타입슬립 당한 느낌에 어안이 벙벙했다.

건물, 버스, 거리의 간판이나 전단지 디자인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폰트와 색깔이 기기묘묘한 가독성 제로의 메뉴판 7개를 한꺼번에 내어주는 카페도 있었다.

클릭하고 나면 3초 정도 흰 화면을 멍하니 보고 있어야 하는 3G 인터넷 속도는 또 어떻고.

TV 뉴스에서는 화려한 모션그래픽 대신 커다란 패널에 뽑은 인쇄물로 이슈를 전하고 있었다.

흰 글자 외곽에 스트로크 효과만 준 자막들은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조금 엉성하고 난잡해도 잘만 굴러가고 있었다.

디자인 강국 일본의 조금 다른 모습에 당황하는 한편,

시내 전체가 나에게 '뭐 그렇게까지 모든 일에 힘을 빼냐'라고 말하는 듯했다.

한그루 한그루 나무에 집착하면 숲을 볼 수 없는 법이다.




대한민국의, 특히 서울은 청년들에게 야박하다.

질 좋은 인적자원이 벌떼같이 모여들어 블랙홀이라도 만들고 있는 느낌이다.

어지간한 것은 필요 없다. 치여서 가라앉고 말 것이다.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강박 안에 살고 있었다.

디자이너라면 UI/UX 디자인을 알아야 하고, 거기에 더불어서 코딩도 배우면 금상 첨화다.

영상편집 조금 할 줄 아는 것으로는 경쟁력이 없으니

몇백만 원을 지불하고서라도 실무 포트폴리오 학원에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

제대로 자립하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면 N포 세대의 나는

연애, 결혼, 출산, 집, 인간관계, 꿈, 희망, 건강 모두 포기해야 되는 줄로만 알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청년이 비단 나 하나 뿐은 아니다. 그렇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

슬쩍 주위만 둘러봐도 선뜻 결혼하겠다거나 아이를 낳겠다는 지인은 별로 없다.

공동체가 생기면 좋겠지만 자기 인생 하나 건설하는 것도 버거운데 가족까지 만들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연애도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뼈아픈 우스갯소리를 자주 한다.

N포 세대의 청년들은 자처해서 외로워지는 중이다.

다시 현실의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지금 누르자마자 화면이 넘어가는 LTE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생각한다.

과연 나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결혼할 수 있을까? 연애할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을까? 살 수 있을까?






LEN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인스타그램: lotus_hee_illust

메일: choyeonhe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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