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월 4일
이제부터 난 엄마가 된 거야
1993년 1월 4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일요일 저녁,
4시 30분쯤 요기가 느껴져 화장실로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양수가 너무 흥건했어.
아차 싶었지만 꿈에도 네가 나오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단다. 예정일이 두 달이나 남아있었으니까.
경황이 없어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고 또 갈아입고 하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어.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하더라고. 그제야 바로 보이더라. 예삿일이 아니었던 거야.
덜컥 겁을 집어먹고 병원에 전화를 했지. 그래, 제일 먼저 병원을 찾아야 했던 거였어.
그러고 나서 네 외할머니와 아빠한테도 전화를 했단다.
아참 이때, 아빤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고 있었단다.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네 아빠는 원래 비 오는 날엔 할 일이 없거든.
졸지에 고스톱 아빠가 되고 만 거지. 후후후.
부른 배를 안고 헐레벌떡 바쁘게 움직였는데도 병원에 가는 데는 어언 두 시간 정도가 걸렸단다.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지. 양수가 터져버린 건 네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였다는 걸.
열달을 가득 채우지 못하고 빛을 봐야 하는 팔삭둥이였기 때문에
분주하게 주사를 꽂고 가슴 사진을 찍고 심장박동 검사를 했어.
이전에도 심장의 리듬이 조금 불규칙적으로 체크되는 이상이 발견되었었는데,
여전히 그런 상황이라 하시는 거야.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수술을 선택해야만 했어.
12시가 되면서부터 심한 진통이 오기 시작했단다.
5분에서 3분, 3분에서 2분으로 좁혀져 오는 진통은
그 자체의 아픔보다도 네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옥죄여 왔어.
신음소리 대신 깊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너에게 이야기를 했다.
'넌 건강하게 나올 수 있어'
점점 호흡 시간이 짧아지고 고통의 농도가 진해질 무렵 네 머리가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어.
'힘을 주어 보세요!'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단다. 수술까지는 안 해도 되는 모양이었어.
가진 모든 것을 쥐어 짜내는 기분으로 힘을 줬지. 배위로 트럭이라도 지나가는 느낌이었어.
의식이 까맣게 멀어지는 고통 속에서 '드디어 나온다!'라는 말이 희미하게 들렸어.
네가 세상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거야. 그게 새벽 4시 15분이었단다.
첫 울음소리가 터지고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단다.
출산이란 이런 거구나.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네가 너무 파랗더구나. 산소 공급이 모자랐던 게지.
얼떨결에 눈을 돌려 옆 산모의 건강한 아이를 보니 네 상태와 너무 비교되는 것이 아니겠니?
거뭇거뭇하고 푸르뎅뎅한 피부와 사그라드는 듯 미약한 울음소리. 속상해 미칠 지경이었단다.
세상과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인큐베이터에 실려 나가는 너의 모습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차라리 내가 아플걸.
인큐베이터 속의 네 모습은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는 고통 그 자체였어.
작은 머리와 팔에 다닥다닥 꽂혀있는 바늘, 호스, 헐떡거리는 얕은 숨.
이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그렇게도 야속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병원에서 몸을 추스르고 3일 뒤에 퇴원했단다.
널 놓고 가는, 가야 하는 쉬이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
아이를 낳은 사람이 집에 아이가 없이 미역국을 먹고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 것도 너무 큰 고통이었어.
너의 상태가 차츰 호전되고 있다고 선생님이 연락 주실 때마다 앓는 가슴을 쓸어내렸단다.
22일 최종 검사를 위해 병원에 찾아갔어.
그제야 너는 처음으로 내 품에 안기게 되었단다. 태어난 지 보름이 되는 날이었어.
젖병의 꼭지를 찾아 오물오물 분유를 먹는 네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병원에서 안구 검사를 마치고 이제는 모든 것이 양호한 상태라는 말에 날아갈듯한 기분이었다.
드디어 시장에 가서 네 옷가지들을 사고 육아 용품을 챙기기 시작했단다.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준비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 그리고 그다음 날 너를 집으로 데려온 거야.
이제부터 난 엄마가 된 거야. 우리 아가야.
LEN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인스타그램: lotus_hee_illust
메일: choyeonhee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