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 윌 헌팅, 상처받은 내면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인간은 누구나 내면의 상처를 안고 있다. 자신을 옭아매는 상처와 두려움은 끊임없이 인생을 가로막으려 한다. 그러나 과거의 구렁텅이에서 손을 내미는 누군가가 있기에 인생은 아름답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마음은 치료자가 되어주는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안정을 찾는다.
영화 <굿 윌 헌팅>에는 윌이라는 한 천재가 등장한다. MIT의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그는 어느 날 남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수학 공식을 풀어 MIT의 교수 제날르 램보의 눈에 든다. 한 순간에 어려운 수학 문제를 증명해내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는 그에게서 천재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윌의 삶은 불행했다.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을 펼칠 무대가 없었고 하루하루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윌을 보며 램보는 그를 본연의 삶에서 구해주고자 한다. 힘들고 고된 일들을 하며 자신의 가장 역량을 펼치지 못하는 그의 삶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삶의 어느 순간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던가. 윌은 램보의 소개로 ‘로빈 윌리암스’라는 한 정신분석학 교수를 만난다. 로빈은 상담치료를 위해서는 환자와의 신뢰와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6년간 암으로 투병한 아내를 잃은 사람이다.
그러나 윌은 자신에게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법원의 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만나는 정신분석학 교수마다 놀라운 언변으로 상대에게 굴욕감을 준다. 그런 윌이 로빈을 만났다. 윌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첫 만남부터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늘어놓으며 로빈의 삶을 조롱한다.
그러나 로빈은 그를 상담하기를 결정한다. 왜냐하면 로빈은 윌이 상대를 밀어내면서 나약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어린 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수준으로 상대를 얕보고 남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쉽게 해낼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는 실제 경험이 없는 오만한 어린아이였다.
즉, 그는 고흐의 그림을 보고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떠한 심경으로 그림을 그렸는지는 나열할 수 있었지만, 진정 그 마음을 이해할 경험이 없었다. 늘 익숙한 곳에 머물며 새로운 것을 도전하지 못하는 그는 세상을 등진 어린 청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삶이 나 자신에게는 바꿀 수 없는 시간 일 수 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에 따라 삶은 좋은 것으로 평가받기도 부정적으로 결정지어지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다른 동료들에게 로빈 교수의 삶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동료들의 눈에 로빈 교수는 자신의 아내의 삶이 다하기까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패자였다. 그러나 로빈 교수에게는 그 시간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다. 병에 걸린 아내로 인해 직업을 그만두고 투병을 한 시간 조차 그에게는 소중했다.
성공한 직장과 명예, 돈이라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돈이란 것도 휴지조각에 불과할 수 있다. 로빈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아내와의 사소한 모든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로빈은 이렇게 말한다.
내 아내는 긴장을 하면 방귀를 뀌는 버릇이 있었어. 하루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잠자던 개가 깰 정도였지. 남들이 보기에는 그것은 치명적인 단점일 수 있어. 그러나 내겐 그러한 사소한 것조차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러웠지. 그녀가 떠난 지금 떠오르는 기억도 사실 그런 것들이야.
아내의 사소한 버릇을 기억하며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로빈의 삶은 성공한 삶이었다. 그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고 후회하지 않을 사랑을 경험했다. 그에게 있어 성공의 지표는 누구와도 대신할 수 없는 그녀와의 만남이자 그와 함께 공유한 시간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불완전한 두 세계가 만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사랑에 용기를 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함에 부딪쳐 누군가를 사랑할 의지조차 상실하기 때문이다.
윌은 자신의 높은 지적 수준에 자신감을 느끼면서도 떨쳐버릴 수 없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과거의 상처에 얽매인 겁쟁이였다. 그는 하버드대학에 다니는 여자 친구의 어마어마한 배경에 눌려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언젠가 자신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에게 배타적으로 행동한다. 버림받기 전에 자신이 먼저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남은 친구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어릴 적부터 비슷한 가정환경과 삶의 길을 걸어온 이들 말이다. 이는 그의 사랑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함께 다른 곳으로 가서 살자는 여자 친구의 제안에 그는 그녀는 홀로 떠나보내는 선택을 한다.
용서란 자신의 과거를 용서라는 이름으로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과거는 상처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머무르려 한다. 그러나 변화의 시작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자신의 과거를 용서할 수 있을 때 발생한다.
It's not your fault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로빈 교수가 윌에게 한 말이다. 윌은 자신의 상처를 부정하면서도 거기에 얽매여 새로운 시작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로빈 교수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겉으로 싸인 외면의 모습으로만 살아가는 그에게 내면을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윌은 진정 자기 자신을 대면하게 된다.
굿 윌 헌팅은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메시지를 주는 영화이다. 영화에 담긴 한 청년의 삶을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떠한 사회를 바라고 있을 걸까 라고.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던 잔잔하게 밀려오는 질문이 다시금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