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가지 않아도 되는 시간

by 여아리

약속이 있는데
약속 시간보다 아주 일찍 움직였다.
저녁 8시 약속인데
나는 오후 1시에 이미 서울에 와 있었다.

서두를 이유는 없었지만
일찍 도착한 이 시간이
괜히 나에게 주어진 여유처럼 느껴졌다.

서울에 오면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조계사에 들러
인사를 하고,
오랜만에 인사동을 걸었다.

많아진 외국인들이 반갑기도 하고,
딸과 함께 걷던 골목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때는 없던 가게들을 구경하며
시간이 흘렀다는 것도 실감했다.

모든 게 변했는데
묘하게 그대로인 것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계속 걷다가
급하게 떠나기 싫어
거리가 잘 보이는 카페 자리에 앉아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꽤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계획 없이 다니기도 하고,
머무르기도 하고.
이 시간들이 아주 편안하다.


​어디로 가기 전이 아니라
어디에도 가지 않아도 되는 시간.
오늘은
그 여백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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