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에서 호짬까지 — 바람과 빛, 가족의 여름
두려움은 첫 미끄러짐의 이름,
해방은 그 다음 장면의 표정.
속도를 정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나다.
무이네의 하루는 모래로 시작해 모래로 끝났다.
요정의 샘 → 어촌마을 → 화이트샌듄 → 레드샌듄,
그 한 줄의 코스에 온종일이 담겨 있었다.
아침의 공기는 아직 차가웠고,
해가 오를수록 모래의 색이 점점 짙어졌다.
바람은 뜨겁지 않았지만, 그 안에 열기가 있었다.
요정의 샘은 얕고 조용했다.
발을 담그면 금세 체온과 닮은 온도가 되었다.
발바닥 밑으로 흐르는 모래가
시간을 밀어내듯 천천히 움직였다.
요정의 샘의 사진은 남기지 못했지만,
그 사라진 기록만큼 장면은 선명했다.
물결과 발자국이 교차할 때,
오늘의 리듬이 정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촌 마을에 닿자마자
지프차 청년이 손짓했다.
“어서 올라타요.”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시키는 대로 차에 올랐다.
그 순간,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프의 라임색 차체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그 사이를 달리는 가족.
사진 속 우리는 여행의 중심에 있었다.
이건 단순한 한 컷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의 빛이었다.
화이트샌듄에 도착하자,
썰매를 권하는 청년이 웃으며 다가왔다.
“팁을 주면 무제한으로 탈 수 있어요.”
한국 돈으로 천 원 정도였다.
나는 고운 모래 언덕 위로 올라가
그에게 등을 밀어 달라 했다.
처음엔 너무 무서웠다.
모래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눈을 반쯤 감게 했다.
등을 살짝 밀어주는 순간,
나는 모래 아래로 쏟아지듯 떨어졌다.
마치 앨리스가 토끼굴로 떨어지듯,
계속, 계속, 끝없이 미끄러졌다.
‘이게 끝이 있긴 할까?’
그 순간, 나에게 붙어 있던
모든 생각이 함께 떨어져 나갔다.
끝에 닿았을 때, 나는 웃고 있었다.
두려움보다 해방이 먼저 도착했다.
그래서 또 탔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점점 떨어질 때의 공포가 아니라,
떨어질 때의 쾌감을 즐기게 되었다.
모래 위를 달리는 ATV는 마치 영화 같았다.
동생이 직접 운전하는 걸로 예약했는데,
금액이 더 비싸 이상하다 했더니
직접 운전하는 시간이 30분 더였다.
그날 동생은 사막의 방향감각을 잃을까 봐
결국 기사님께 운전을 맡겼다.
돌이켜보면 팁을 드렸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 깜빡했다.
그 기사님이 다음 손님을 태우고
사막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던 모습이
아직도 잔상처럼 남아 있다.
한참 모래 속에서 놀다 보니
입안이 바싹 말랐다.
화이트샌듄 아래 매점에서
코코넛워터 한 병을 마셨다.
달콤함보다 시원함이 먼저 퍼졌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그 한 모금이
하루의 속도를 잠시 늦춰주었다.
지프차 청년이 손짓했다.
“Sunset, hurry!”
그의 말대로 달려간 레드샌듄은
붉은 모래 위로 남은 노을빛이
천천히 스며드는 장면이었다.
그날 사진을 찍어준 청년은
단순히 ‘찍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각도를 잡아주고, 포즈를 제안하며
진심으로 우리의 순간을 담아줬다.
“Smile again!”
그 한마디에 우리는 정말 웃었다.
모래가 반짝였다.
빛이 서쪽으로 완전히 기울 때까지
우리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해가 진 사막은 빠르게 식었다.
뜨거웠던 모래가 서늘하게 식는 동안
마음속 열기도 함께 내려앉았다.
그 순간, ‘멈춤’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멈춰야만 들리는 소리,
식어야만 알 수 있는 온도,
그것들이 여행의 진짜 얼굴일지도 몰랐다.
마무리
모래 언덕을 내려오며 알았다.
너무 세게 달릴 필요도,
끝을 재촉할 이유도 없다는 걸.
속도를 조절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나였다.
해가 지고 난 뒤에도
얼굴에 남은 모래의 따뜻함처럼,
오늘의 해방감은 오래 식지 않았다.
사막은 거대했지만,
그 위를 건넌 내 마음은 그보다 더 넓어졌다.
To be continued...
다음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