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에서 호짬까지 — 바람과 빛, 가족의 여름
한복의 전통의 선이
이국적인 자연과 나를 감싸 안았다.
그날 아침, 햇살이 유난히 부드러웠다.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머리를 땋아주던 직원의 손길이
아직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머리를 묶자마자 문득 떠올랐다.
“지금 한복을 입어야겠다.”
한국에서 가져온 한복을 꺼냈다.
꽃들이 수놓아진 아이보리 저고리, 밝은 레몬색 치마.
바람이 불 때마다 천이 부드럽게 흩날렸다.
거울 속의 나는 조금 낯설고, 조금 새로웠다.
이국의 햇살과 한국의 색이
한 장면 안에서 섞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커피잔을,
다른 손에는 전화를 들고 있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여보세요?”
수화기를 들어보기도 했다.
그냥 일상의 동작이었지만,
그 순간이 마치 영화 같았다.
이국의 풍경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하루’를 연기하고 있었다.
화장을 마치고
욕실에서 손을 씻고 거울 앞에 앉았다.
변기 뚜껑 위에 걸터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어쩌면 인생의 중요한 결심들은
이런 평범한 순간 속에서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점심엔 신라면 컵라면을 끓였다.
김이 피어오르며
한복 자락에 스며들었다.
베트남의 리조트,
그리고 한복을 입은 한국 처녀의 라면 식사.
이질적인 조합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그 순간, 나는 한국에서도 베트남에서도 아닌
‘나의 세계’에 있었다.
방 앞 처마 밑,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보기도 했다.
바람이 천천히 지나가고,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
지나가던 직원이
“Who are you waiting for?” 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도 웃었다.
“Just… waiting.”
기다림이 길어지자 포켓볼을 치러 갔다.
공이 구르는 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가끔은 헛스윙을 하고,
가끔은 멋지게 성공했다.
그 단순한 리듬이
이국의 오후를 천천히 채워주었다.
리조트의 완만한 길을 따라 걸었다.
연꽃과 야자수가 어우러진 정원.
한복 자락이 풀잎에 닿으며
가벼운 바람을 만들었다.
이국의 풍경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이상하게 익숙했다.
햇살이 길게 늘어질 무렵,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국의 빛 아래에서도
내 안의 선은 여전히 한국의 곡선이라는 걸.
한복은 내 몸을 덮는 옷이 아니라
내 마음을 감싸는 하나의 공간이었다.
마무리
그날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본다.
한복을 입고 연꽃 옆에 앉아 있는 나.
익숙한 나이면서도, 낯선 나.
한국의 전통을 입고
베트남의 자연 속에 녹아 있는 모습.
그날의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한복을 입은 ‘련빛’이었다.
낯선 시선 속에서도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기쁨이
햇살처럼 오래 남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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