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는 글쓰기 Day 17
작품 :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1964), Norman Rockwell
누군가에게는 매우 평범한 등교길이 누군가에게는 공포스런 등교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장의 그림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소녀가 어른들 사이에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어른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뭔가 연행되어 가는듯도 보이고, 아이의 표정도 어둡다. 벽면에는 자세히 보니 흑인을 비하하는 nigger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고, 피를 연상시키는 토마토가 던져져서 으깨져 있는 모습도 보인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성들의 팔에는 노란색 완장이 채워져 있다. US가 쓰여진 것으로 보아서 공무원으로 추정된다.
여기까지가 그림을 통해서 내가 본 것들이다. 알고보니 인종차별이 매우 심하던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한 획을 그었던 린다의 이야기였다. 한 소녀가 바로 집 앞의 학교를 두고도 멀리 1마일 (약 1.6km) 이상 걸어서 가야 하는 학교로 다니는 상황이었는데, 그 이유는 흑인과 백인의 분리 정책 때문이었다. 흑인도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고, 여러가지 변화들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흑백의 문제는 아직도 존재하는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 당시는 그 갈등은 더욱 첨예했고 무지했다.
한국의 경우 흑백의 문제이기보다는 한민족 사상으로 인한 타민족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문제가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들은 늘어가고 있다. 또 다른 린다가 나오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우리안의 혐오와 무지 그리고 고정관념과 편견을 걷어낼 평화 연습을 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모두 평등하다. '인종'이라는 말부터 잘못되었다. 인간은 하나의 종이다. 이 오랜 배제와 차별의 역사는 어떻게 끊어낼 수 있는 것일지. 참으로 막막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이런 역사는 그만 반복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름에 대해서 고정관념과 편견이 아닌 호기심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이 작가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3년뒤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 여전히 우리곁에 있는 문제들이라는 제목으로.
The problem we still live with | Financial Times (ft.com)
Day17_해설
�화해하는 글쓰기 Day 17 - 21. 8. 3.
1951년 미국 캔자스 주에는 '린다 브라운'이란 아홉 살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린다의 집 바로 앞에는 섬너 초등학교라는 학교가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린다는 그 학교에 다닐 수 없어 멀리 1마일 이상 떨어진 학교에 걸어 다녀야만 했어요.
린다가 집 앞 학교에 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녀가 흑인이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까지도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을 다른 시설에서 교육하는 '분리되지만 평등한 (Separate but equal)'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흑인과 백인에게 '동등한'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되, '분리된' 시설에서 해야 한다는 제도였습니다.
린다의 아버지는 딸을 안타깝게 여겨 섬너 초등학교에 전학시키려 했지만 교장은 정책을 들어 단호히 거절합니다. 린다의 아버지는 결국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3년의 긴 재판 이후 1954년 5월 17일 미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지요.
“교육계에서는 ‘분리하되 평등하면 된다’는 원칙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판결문 중에서
이 판결은 이후 한 개인의 승소를 넘어 흑인 인권 운동에서 있어 미국의 역사를 바꾸는 아주 중요한 판결이 됩니다. 그리고 소개해드릴 작품은 미국의 화가 <노먼 록웰>이 승소 이후에 린다의 아주 특별한, 실제 등교 장면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소녀는 팔에 완장을 찬 남성 4명에게 앞뒤로 에워싸여 있습니다. 이들은 린다를 보호하려는 미국 연방 보안관들이죠. 린다가 걷고 있는 뒤쪽 벽에는 흑인을 비하하는 표현인 'Nigger'라는 글씨와 백인 우월주의 단체의 이름인 'KKK'도 보입니다.마구 던져진 붉은 토마토가 흘러내린 자국도 보여요. 9살 소녀의 등교길이라기에는 너무나 험악한 분위기입니다.
린다의 등교 현실은 작품보다 더 무시무시했습니다. KKK 단에서는 린다를 죽여버리겠다며 공개 살인 협박을 했습니다. 그보다 더 린다에게 무서웠을 것은, 백인들이 매일 피켓을 들고 등교길을 메운 채 고성을 지르며 항의한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은 바로 차별을 행하는 이들의 시선과 일치합니다.
노먼 록웰은 22세 때부터 47년간 당시 미국 최대 판매부수를 자랑하던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표지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였습니다. 변모하는 20세기 미국사회와 미국인의 일상을 밝고 경쾌한 화풍으로 그려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어요. 따뜻한 가슴을 가졌던 화가는 본인 스스로는 백인이었지만,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의 가장 큰 모순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듯합니다.
록웰은 작품에 '우리 모두가 함께 안고 살아가는 문제'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제목을 보면 그가 작품을 통해 단순히 린다에게 인종차별을 행한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아니라, 이것이 미국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강조된 제목은, 차별이란 것이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임을 암시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