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속에서

화해하는 글쓰기 Day 16

by SashaPark

작품 : "Untitled" (Perfect Lovers) 1991, Felix Gonzalez-Torres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81074


누구에게나 시간은 동일하게 흐르는가? 그렇지 않다. 7월에 피는 코스모스도 있고, 19살에 결혼하는 여자도 있고, 3살에 죽음을 맞이하는 아이도 있고, 8월에 눈 내리는 바닷가도 있다. 월요일 아침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은 5분이 50분처럼 여겨지고, 보고 싶은 애인과 함께 하는 하루는 12시간이 12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자신이 타고난 성정과 환경에 따라 같은 시간이 다르게 발현되기도 하고, 굳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까지 끌고오지 않아도 시간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흐르기도 한다. 복숭아들 마다 시간 속에서 품종에 따라 딱딱하게 최종읠 결실을 맺기도 하고 말랑말랑한 결실을 맺기도 하는 것처럼 동일한 시간처럼 보이지만 동일하지 않다.


이 작품을 봤을 때 (사실 처음에 작품인지도 몰랐다. 현대 작품들은 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냥 글로벌 회사의 어느 벽면 정도로만 생각한 것 같다. 뭘 봐야 하는 걸까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는지 찾았던 것 같다. 그런데 생긴 모양도 같고 시간을 가르키는 바늘도 모두 똑같이 배열되어 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시간이 똑같이 멈출 수 없다는 걸, 무언가 어색한데 그게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부분의 시계들은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고, 서로 다르게 멈춰선다. 이렇게 똑같이 멈춰선 시계를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어색한 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도 예전의 순장이 아닌 이상은 대형 사고가 아닌 이상 자연사를 이렇게 한 날 한 시에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처럼 시계 또한 제 각각 서로 다른 시간에 멈춰 서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작품이 제목을 보니 Perfect Lovers.


한 날 한 시에 멈춰선 시계 바늘처럼 한 사람의 부재 이후 자신의 시간도 멈춰서 버린 두 개의 시계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멈춰섬을 느끼지 않았을까. 넌 멈춰섰는데 내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는 야속함 혹은 아픔 혹은 비 현실적인 시간들. 그래서 이 작품을 통해서 그러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애초에 삶은 공평하지도 동일하지도 않다. 잠시 만났다가 스쳐가는 것인데, 어떠한 만남 속에서는 영원을 어떠한 영원 속에서는 찰나를 경험하는 것일 뿐. 난 오늘의 피로를 복숭아로 위로해본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동일한 듯 같지 않지만, 우리의 사랑은 그 영원한 만남 속에서 뫼비우스의 띠를 돌고돈다. 딱딱한 복숭아나 말랑말랑한 복숭아나 오늘도 참 달디 달구나.



KakaoTalk_20210805_104103236.jpg 복숭아의 시간 by Sasha


Day16_해설

�화해하는 글쓰기 Day 16 - 21. 8. 2.

달랑 두개의 시계가 벽에 걸려있을 뿐입니다. 작가가 직접 만든 것도 아닌, 똑같은 형태로 대량생산된 공산품 시계이지요. 거기다 작품의 제목은 <무제>입니다. 욕먹기 쉬운(?)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품의 부류입니다. 그런데 작품의 배경을 알고 나면 이 작품은 훨씬 더 마음에 가깝게 다가옵니다.



작가인 펠리스 곤잘레스 토레스에게는 8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랑했던 연인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영혼의 짝이었던 그들은 수많은 행복한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연인이 병에 걸리고 맙니다. 결국 그의 연인은 언제나 함께하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것도 30대의 젊은 나이에 말이죠. 이 두 개의 시계는 그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작품을 봅니다. 똑같이 생긴 두개의 시계가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처음에 두 시계에 함께 건전지를 넣습니다. 한동안, 아니 꽤 오랫동안 두 시계는 똑같은 시간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조금씩 어긋나겠지요.



두 시계는 똑같지만, 결코 완전히 똑같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점점 어긋남이 커져가다가 언젠가 한 시계는 먼저 멈춰버립니다. 영원히 같은 곳을 가리키고 싶었던 연인의 시간이 먼저 멈춰버렸듯이 말입니다. 곤잘레스 토레스는 연인이 병을 진단 받은 직후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습니다.



"시계들을 두려워하지 마. 그게 우리의 시간이고, 언제나 시간은 우리에게 관대했지. 우리는 승리의 달콤한 맛을 시간에 새겨왔어. 우리는 특정 공간과 시간에 만남으로써 운명을 정복한거야. 우리는 그 시간의 산물이기에 때가 되면 마땅히 되갚아야 해. 우리는 함께하도록 맞추어졌어, 지금과 그리고 또 영원히. 사랑해. "



서로가 완벽하게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연인은 병마와 싸워야 했고,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고통스런 투병의 시간동안 연인의 곁을 지키며 그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습니다. 제게는 작품이 이렇게 말하는 듯 느껴졌어요.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에는 상실이 있기 마련이라구요. 세상에 완벽한 사랑이란 없을지 모르지요. 완벽히 하나가 되고 싶었던 두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이 작품의 부제는 <완벽한 연인>입니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쿠바 출신으로 20대가 되어 미국으로 왔습니다. 이민자이면서 동성애자였던 그는 단 8년간 작품 활동을 했는데, 이는 그가 39살이 되던 해 그의 연인처럼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짧은 기간동안 그가 남긴 작품들은 이후 사람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그는 80-90년대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예술가로 남았죠.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은 누구나 공감할만한 감정을 익숙한 소품들로 덤덤히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은유적이면서도 동시에 직관적이고, 소박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이 있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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