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는 글쓰기 Day 18

by Sasha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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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1663-1669),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엉엉엉... 울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따뜻한 품.

난 그 안전하고 따뜻한 품을 설악산 봉정암에서 느꼈다. 한 여름 무더위가 기승하던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동아리 친구들과 설악산 봉정암을 가자고 해서 오르던 기억이 난다. 중간에 그만 두고 다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짧은 찰나들도 있었지만, 그 때만해도 정상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과 건강한 체력이 있었기 때문에 숨이 꼴깍 꼴깍 했지만 열심히 동료들의 도움과 응원을 받으면서 올라간 기억이 난다. 목표가 봉정암이었기에 다른 생각 안하고 앞으로만 열심히 올라간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밤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어둠이 내려 앉은 오래된 산사의 품은 그 무엇이라도 품어주고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 소리만이 울려퍼지던 산 꼭대기의 풍경이라니... 현실인지 이상인지 헷갈릴 정도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도 다른 친구들 따라서 1080배를 한다면서 열심히 기도를 하던 때였다. 어느 순간 얼마나 절을 했는지 기억도 없어지고,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이유도 모르겠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쩔지를 몰라서 스님께 여쭤보니, 업장이 소멸되는 거라고만 하셨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것을 처음으로 그대로 흘러내리게 두면서 잠시 절을 멈추고 계속 울었다. 업장이 소멸되고 있는 거라면 저 밑바닥 끝에 있는 나의 업까지 모두 씻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계속 울었다. 한 없이 짙푸른 산 속 한 여름 공기가 날 둘러싸고 하루 종일 고되게 걸어올라온 내 몸뚱아리도 놓아버린채 그렇게 봉정암의 따뜻한 품 안에서 난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아기처럼 엉엉 울었다. 그러고나니 후련함이 찾아왔다. 몸이 한 결 가벼워지고, 스님 말씀처럼 그간의 업들이 소멸이라도 된 것일까 생각이 들 정도로 가뿐했다.


아직도 특별한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나오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와 함께 내가 어디에서도 그렇게 맘 편히 울어본적도 기대본적도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어두운 밤 이 세상의 모든 기도와 고통이 봉정암에 스며들던 그 날 나의 업도 슬픔도 후회도 모두 쏟아내었다. 이 그림을 보자, 그렇게 지쳐있던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기처럼 엉엉 울고 그걸 이유도 묻지 않고 그대로 고스란히 품어내주던 설악산 봉정암의 품이 생각난다. 그 이후로도 나의 업은 쌓이고 있겠지만, 살면서 이러한 품이 필요한 것 같다. 종교가 있다면 신의 품이던, 자연의 품이던, 사랑하는 사람의 품이던, 엄마의 품이던, 방 한 켠 작은 이불 위에서건,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의 품이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그 품이 모든 이의 곁에 함께 하기를 기도하며...


문득 단어 '품'의 사전적 정의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두 팔을 벌려서 안을 때의 가슴'이라고 나온다. 몸과 마음은 연결이 되어 있다. 두 팔을 벌린다는 것은 마음을 열어서 수용할 때의 자세이다. 이 그림 속에서 누더기 옷을 걸친 사람이 따뜻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듯 보이는 얼굴의 누군가에게로 푹 안겨있다. 오랜 피곤이 이 품 안에서 쉬어지는 것 같다. 때로 눈물이 흐르도록 내버려둘 수 있는 시간이 따뜻한 품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고 싶다.



음악: (103) 모차르트: 레퀴엠 "라크리모사" (피아노 1시간) - Mozart: Requiem K.626 "Lacrimosa" (Piano 1 Hour) - YouTube



Day18_해설

�화해하는 글쓰기 Day 18 - 21. 8. 4.

오늘 소개해드릴 예술가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입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당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던 부르주아 계층의 부와 진취성이 드러난 초상화로 빠른 성공을 거뒀습니다. 젊은 나이에 명예와 부를 모두 거머쥔 그는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어요. 큰 빚을 내 대저택을 구매하고 사치품으로 집을 꾸몄지요. 수입과 비례해 빚도 늘어갔지만 그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시기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인기가 많았지만 언제나 그가 돈을 버는 속도보다 쓰는 속도가 더 빨랐어요. 그리고 뜻밖에 화가로서의 재능과 자부심이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는 주문 받은 초상화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입히지만, 고객들은 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어요. 렘브란트는 이에 맞춰줄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를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지 못하는 고집스런 화가로 소문나게 만들었고, 이후 작품 의뢰는 대폭 줄어듭니다.


개인의 삶에도 불행이 스며듭니다. 세 명의 자녀를 얻었지만 모두 몇 달을 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네 번째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가 출산 후 시름시름 앓다가 몇 달 뒤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슬픔 속에서 오랜 시간 어렵게 작업을 이어가던 중 자신의 가정부 헨드리키에와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아내의 유산 문제로 그녀와 결혼을 하지 않았고, 불륜으로 지역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며 얼마 남지 않은 명성마저 모두 잃고 맙니다. 50대가 된 그는 결국 파산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아들과 헨드리키에 또한 먼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지요.


말년의 그는 가난하고 사랑하는 이를 모두 잃었으며 누구도 찾지 않는 불행한 화가였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며 무너져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 렘브란트는 끊임없이 화가로서 자신의 인생과 예술을 탐구했습니다. 더 이상 비참할 수는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그는 오히려 죽기 전까지 13년간 길이길이 후대의 사랑을 받는 역작들을 제작합니다.


그의 사망한 해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돌아온 탕아>는 신약성서 누가복음서 15장에 나오는 비유를 토대로 한 종교 주제입니다. 유산을 미리 상속받아 아버지 곁을 떠난 작은 아들이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돼지치기를 하며 비참하게 지내다 결국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비난과 호통을 예상하며 두려워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 기뻐하며 큰 연회를 열지요.


작품 속 지친 아들은 누더기를 걸친 채 무릎을 꿇었습니다. 노쇠한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다시 잃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아들의 어깨를 붙들고 있어요. 모든 것을 용서받은 아들은 지친 방황의 끝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편안한 숨을 내쉽니다. 아버지의 큰 사랑이 모두의 어깨 위에 황금빛 축복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습니다. 렘브란트 또한 신에게서 방탕했던 시절의 자신을 용서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말년의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삶의 풍랑을 견뎌내는 인간 존재의 숭고함을 작품에 표현합니다. 그의 깊은 인간애가 우러난 작품 속 인물들은 그 내면의 품위가 금빛으로 스며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말년의 그가 작품 속에서 붙들었던 빛은, 다름 아닌 ‘인간 영혼의 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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