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는 글쓰기 Day 19
작품 1(책 표지) : Title plate from Maria Sibylla Merian's New Book of Flowers, 1680
작품 2 : Pomegranate (Punica granatum) with a butterfly's life cycle, plate 9 from Insects of Suriname, 1726 edition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그림입니다.
오늘도 화분에 물을 주면서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내가 이 식물들을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있을까? 물 주는 것조차 까먹고 살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은 작심을 하고 하나 하나 들여다보며 여름이니까 더울 것 같아서, 샤워기로 시원하게 단비를 뿜어주었죠. 그러다가, 혹시 지난 번 내가 잘 살피지 않아서 죽은 건가 하면서 마음 아파하던 화분에서 아주 작은 희망처럼 초록초록 잎이 머리를 내미는 것을 보았어요.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사진을 찍었답니다.
지난번 많은 잎들이 더운 태양에 시들어 버렸을 때, 잘라내 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새잎들이 나 여기 있다고 소리치는 모습을 못 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과감하게 이미 시들어버린 잎사귀는 잘라내고, 그 잘려진 바스락 거리는 줄기들을 보고 있자니 참 마음이 아팠는데, 이렇게 힘을 내주는 모습을 보고 오늘 아침 행복했습니다.
오늘의 그림을 보면서도, 여인은 더 안으로 안으로 더 섬세하게 식물들을 곤충을 대하고 바라보았을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 헤세도 이렇게 세밀화를 그렸던 것 같은데, 어떤 사물에 대해서 자세히 보고 관찰하는 연습은 명상과도 연관이 되는 것 같아요. 마음이 차분해지고, 못 보았던 것들도 보이고, 자기 안의 고정관념과 편견도 거울처럼 비춰지는 것 같아요. 나비의 날개 모양도 하나하나 다 다르고, 색상도 애벌레의 다리도 다른데, 그냥 징그럽다, 이쁘다, 이런 생각들에 가려져서 못 보았던 부분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마치 오늘 오전 저의 생각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작은 새싹처럼요.
이 그림을 보면서 예전에 귓등으로 들었던 프랙탈 이론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프랙탈은 일부 작은 조각이 전체와 비슷한 기하학적 형태를 말하는데, 너무나 신비하지 않나요? 작은 일부가 전체를 닮아있다니. 참 이 우주는 신비로운 것 같아요. 더 자세히 파고 들어가서 미세한 세계로까지 가면 전체를 닮은 작은 전체가 있다는 것까지 알아내는 세상이잖아요. 결국 작고 크고의 문제가 아닌, 무엇을 보고 있는가의 문제는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네요. 생각에 가려서 봐야 할 것을 못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세밀화 작업이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오늘부터 저도 이렇게 관찰하는 연습 그리고 그것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연습으로 세밀화 작업을 해볼까봐요. 단지 그리는 것을 넘어 과학의 발전과 생명의 중요성을 일깨운 작가처럼 저 또한 그러한 생각 너머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과정으로서의 세밀화 작업을요!
가려진 생각 구름 너머 보이는 초록 잎사귀들의 희망을 찾아서.
Day19_해설
�화해하는 글쓰기 Day 19- 21. 8. 5
최근 들어 인테리어에 식물세밀화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지요. 이 식물세밀화의 효시가 되는 그림들을 그린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17세기 독일의 곤충생물학자이자 박물학자, 과학 삽화가였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입니다.
메리안은 십대 시절부터 자연의 섭리, 특히 곤충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당대의 상식은 '곤충은 썩은 진흙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악마의 생물'이라고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곤충을 지켜보면서 이들의 삶의 순환 과정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성인 그녀가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연구를 지속하기는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메리안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꿈을 계속 쫓았습니다. 그녀는 무능했던 남편을 대신해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에게 그림 수업을 하며 생계를 부양했지요. 그리고 곤충과 꽃을 관찰한 그림을 그려 꾸준히 책을 출간합니다. 오랜 별거 끝에 결국 남편과는 30세를 전후해 이혼을 합니다.
40대 중반이 되자 그녀의 그림이 인기를 끌며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됩니다. 그녀에게 배우고자 하는 문하생이 몰리고, 애벌레에 대해 썼던 책 또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품고 있던 호기심과 열정은 그대로였어요. 그녀는 여전히 더 많은 곤충들의 생태를 연구하길 열망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원시자연림을 간직한 수리남으로 5년에 걸친 탐험을 계획합니다. 남성들만이 정부나 기업의 후원을 받아 식민지로 탐사 여행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어떤 후원자도 없었으므로 그녀는 자신의 그림들을 팔아 스스로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모든 준비가 되었을때 그녀는 스무살이 된 둘째딸과 함께 탐험길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나이 52세 때였어요.
수리남에서 메리안 모녀는 혹독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숨막히는 더위와 모기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채집된 표본들이 빠른 속도로 썩어 연구 또한 난항이었습니다.
그래서 메리안은 현지인들, 흑인 노예들과 인간적인 신뢰를 쌓으며 그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녀에게 표본을 가져다 주고, 약초와 요리에 쓰이는 작물들에 대한 정보도 기꺼이 공유해주었습니다. 후에 메리안은 삶에 깊게 절망했던 노예들의 운명,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식민지 상인들의 그릇된 행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말라리아에 걸리게 되어 2년 만에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옵니다. 몸을 회복한 메리안은 곧바로 자료를 정리해 마침내 그녀의 대표작 《수리남 곤충의 변태에 관하여》를 출간합니다. 곤충들의 삶에 대한 치밀한 연구자료이자 시각자료인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유럽 상류층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고, 과학계와 미술계 모두의 인정을 받는 대성공을 합니다. 그때쯤 60세가 넘은 메리안은 수리남으로 두번째 여행을 계획하지만 1711년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말았고, 6년 뒤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는 예술가로서 뛰어난 재능이 있었으나 그림만으로 그녀의 업적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행했던 것은 단순한 그림 기록을 넘어선, 사실상 곤충의 성숙과 삶의 단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이자 동시에 작은 생명들의 삶에 대한 통찰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