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화해하는 글쓰기 Day 20

by Sasha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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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The Sun (1911), Edvard Munch


제 카톡 메세지창에는 '반짝반짝 빛나는'이라고 적혀져 있어요. 언제부터 써두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이 정도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면 꽤 오래전인 것 같아요. 아마도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었던 때이겠지요. 반짝이는 사람들의 인스타를 보며, 페이스북을 보면서 부러움과 좌절 그리고 자책등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이 터널의 끝은 언제 끝날까 생각하기도 했구요. 그러다 모두의 영혼은 본래부터 반짝이는 빛이었다는 글을 보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모두 원래부터 환한 빛이래요. 그래서 인도에서는 당신의 빛에 인사합니다라고 하는 '나마스테'라는 인사가 있지요. 전 그 인사가 참 좋아요. 힘든 시기를 지나는 사람이던, 성격이 나빠서 친구가 없는 사람이던, 이미 화려한 꽃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건, 그 안에 같은 빛을 품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감사하고 또 연결감을 느끼게 해주거든요.


모두 살면서 환한 빛의 세계만 걷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것이 실제로 닥친 어려움이건, 내면의 힘든 시간들이건, 모두는 이 세계에서 그러한 어둠의 시간들을 건널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때에도 자신 안의 환한 빛을 잊지 않고 있다면, 좀 더 그 길이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터널을 지나면서 그 길 끝에 보이는 빛처럼, 동굴 속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칠흙같이 어두운 바다의 길을 보여주는 등대처럼, 꺼지지 않는 내면의 등불에 마음을 모은다면 우리는 길을 좀 헤매이더라도 결국은 환한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될 거예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뭉크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절규'를 그린 그 뭉크라고??? 그래서 다시 봤어요. 정말 그 뭉크더라구요. 전 뭉크의 작품은 절규 밖에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 사람의 한 단면만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거나 확언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이 그림을 보고 하게 되었습니다. 굳이 인간성의 극을 달리는 난이도 상의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까지 끌어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누군가를 단정하기 쉬운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해석하기 힘든 자신의 어둠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늘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봐요. 하나의 그림을 통해 떠오르는 생각들이 참 많네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들었던 하나의 생각을 더하면서 갈무리해볼게요.


그 어둡고 무서운 그림을 그렸던 뭉크가 이처럼 환한 햇살을 그린 계기가 바로 '고흐'였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고흐 역시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일어서서 그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다는 것에 영향을 받아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해요. 정말 놀라워요. 누군가의 삶이 또 다른이에게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서로 빛으로 이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고흐의 작품이 뭉크의 내면의 빛에 인사를 건넸듯이, 저의 아픔을 극복한 이야기들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도 힘이되고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지금 어떤 길 위에 있건 서로의 안에 있는 빛에 인사할 수 있는 존재들임을 잊지말아요 그대!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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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ot Card에서도 The Sun카드에는 정말이지 아이처럼 맑은 환한 햇살의 에너지가 담겨져 있어요.


The Sun

https://youtu.be/G4g5HetxYOU


Day20_해설

�화해하는 글쓰기 Day 20 - 21. 8. 6.

오늘 말씀드릴 예술가는 바로 뭉크예요. 그는 이 작품에서 눈부시게 밝은 빛깔로 강렬한 태양을 그렸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절규’를 포함해 그의 어떤 대표작과도 다른 느낌입니다.



뭉크는 80년 가까운 평생을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고통받았습니다. 어머니와 누이의 이른 죽음, 아버지의 학대, 여동생의 정신 질환… 몸과 마음이 여린 아이가 버티기 힘들었을 유년 시절을 보낸 뭉크. 그런 그가 성인이 되어 맺는 관계 또한 모두 파국으로 치달으며 예민한 예술가를 고통에 몰아넣습니다.



뭉크는 불안과 고통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필연적으로 누구보다 탁월한 표현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뭉크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그의 이삼십대에 그려진 것들입니다. 그랬던 그가 50세가 넘어 전혀 다른 화풍의 <태양>을 그린 것이죠. 혹시, 작품을 보며 ‘고흐’를 떠올리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뭉크는 40대에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 시작된 정신질환은 갈수록 심해져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 고흐의 작품을 알게 됩니다. 뭉크는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쫓으며, 작은 기쁨도 눈부신 빛으로 그려냈던 그의 삶과 작품에 탄복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화풍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뭉크의 모국 노르웨이에는 겨울 동안 해가 거의 뜨지 않아 캄캄한 낮이 몇 달간 이어지는 극야 현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우울한 겨울을 보낸 뒤 봄이 되어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요. 뭉크는 이 작품에서 긴 겨울 뒤에 찾아온 눈부신 봄의 첫 태양을 그렸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밝게, 찬란하게, 주변을 장악하듯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이 또 있을까요? 마치 태양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요. 제게는 뭉크가 작품을 통해서 이렇게 말하는 듯 느껴집니다. 나 역시 길고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 있지만 저 밝은 빛을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잘 되지 않더라도 힘을 내 볼 거라고. 그래도 절망보다는 희망을, 어둠보다는 빛을 이야기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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