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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정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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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haPark Sep 15. 2021

나를 견인(견디고 인내)하는 시간

Day8_견딤

사람이 어떤 것에 적응하는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아니 적응이라는 말 보다 견딤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지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과 사람들과의 대화와 기분 좋은 가을의 생맥주 한 잔을 견디고 있다. 오대수는 올드보이에서 15년 동안 감금되어 있을거라는 걸 미리 알려줬더라면 그곳에 적응하는 것이 조금은 더 쉬웠을거라고 얘기했다. 견디는 것이 쉬워지려면 분명 그 견딤의 끝이 언제인지를 안다면, 무한정 계속될 것 같은 때 보다는 참기가 쉬워질 것이다. 마치 군대생활의 끝인 제대를 기다리며 하루 이틀 사흘 세어나가는 군인처럼, 퇴사가 결정된 회사원의 마음처럼, 운동할 때 덤벨을 들어야 하는 갯수를 알 때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단식과 디톡스의 과정이 꼭 참고 견디는 과정인가 돌아보면 처음에는 멈춰서는 것만으로도 집중되고 힘들어서 배고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이 과정이 익숙해지고 보니 8일째인 오늘은 살짝 맛있는 음식도 좀 먹고 싶고, 나름 열심히 노력한 것 같은데 아직 뱃살과 몸의 무거움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고, 조급함이 올라오는 상황을 마주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나의 욕구에 한 없이 관대했던 그 때의 시간들의 무게는 잊고서 고작 8일만에 원하는 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것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년 동안 별 생각 없이 쌓아올린 독소들을 8일만에 제거하려는 것은 분명 욕심이다. 


금방 몸이 좋아졌으면 하는 조급함도 견디고, 맛난 음식들에 대한 욕구도 견디기 위해 잠시 이 정화의 여정에 대한 끝을 생각해보았다. 물론 정화의 여정에 끝은 없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우린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화장실을 가고, 몸을 정갈히 하고 하는 정화를 해나가야겠지만, 지금 조화와 깨져있는 몸과 마음의 조화에 이르기 위한 정화의 길 위에서 난 나를 더욱 강하게 견인해 나가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만나고 알고 이끌어 주는 일. 끝이 없는 수도와 연마의 과정이지만, 멀리 보기도 하고 가까이 보기도 하면서 가보자. 이 정화의 시간이 잠시 끝이 있다고 한 정하고 작은 목표들로 만들면서 평생이라는 끝도 없는 기간보다는 일년 동안으로 그 보다는 한 달 단위로 그 보다는 하루로 그 보다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면 그 또한 재밌는 견인의 시간이 되리라 생각해본다. 오전보다 오후 조금 더 활력이 살아난다. 칸트처럼 이제 산책이 몸의 습관이 되어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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