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고 싶어지는 감정, 견뎌야 하는 감정
2026년 1월 1일, 새해 첫 정신분석 문헌으로 Hinshelwood의「Countertransference」를 읽었다. 이 글은 1999년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의 Eduction Section에 실린 논문으로, 역전이 개념의 역사적 전개와 이론적 함의를 영국 대상관계 이론의 맥락에서 정리하면서, 동시에 라캉까지 가볍지 않게 호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역전이를 분석 과정의 잡음이나 방해물로 취급하지 않고, 관계적 역동이 가장 농축되어 드러나는 지점으로 재위치 시킨다는 점이었다.
교육 목적의 글답게 여러 분석가들의 문헌이 인용되어 있었고, 나는 1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읽으며 두 개의 문단을 필사했다. 하나는 Glover의 문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Bion의 문장이었다. 두 인용은 서로 다른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는 듯 보였지만, 읽을수록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두 문장 모두 분석가가 불편함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to preoccupy oneself with the dream-material to the exclusion of a pressing transference re-enactment would merit a certain amount of self-inspection, on the grounds that the seemingly impersonal nature of dream-production may afford the analyst the same respite from unpleasantness as it does the patient(Glover, 1927, p.505).
Part of the analyst's job is to determine what figure he represents for the patient at any given moment whilst trying to retain his knowledge of who he is for himself. Bion described this vividly when working in a group:
the experience of counter-transference appears to me to have quite a distinct quality … The analyst feels he is being manipulated so as to be playing a part, no matter how difficult to recognize, in somebody else's phanta—or he would do if it were not for what in recollection I can only call a temporary loss of insight, a sense of experiencing strong feelings and at the same time a belief that their existence is quite adequately justified by the objective situation (1961, p. 149).
Glover가 말하듯, 꿈-자료에 몰두하는 태도는 전이의 재연이라는 더 즉각적으로 고통스러운 장면으로부터 분석가를 보호할 수 있다. 꿈은 비교적 비인격적이며 정돈된 해석의 언어를 허락한다. 그에 비해 전이의 재연은 분석가를 관계 속으로 직접 끌어당기며, 그가 무엇을 대표하고 있는지, 무엇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Bion이 묘사한 역전이 경험 역시 이 지점에 있다. 분석가는 자신이 특정 역할을 연기하도록 조종되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감정이 '객관적 상황'에 의해 충분히 정당화된 것이라 믿게 된다. 이 믿음이 형성되는 순간, 경험은 더 이상 질문이 아니라 설명이 된다.
역전이를 어떻게 개념화하든, 분석가와 환자가 느끼는 감정에는 분명히 특이한 성질이 있다. 두 사람은 분리된 주체이지만, 동시에 어떤 끈으로 묶여 있는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끈은 때때로 느슨해지거나 끊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연결과 분리가 반복되면서 치료 과정은 역동을 얻는다. 문제는 그 연결이 위태로워질 때, 분석가가 무엇을 하느냐이다. 더 많은 이해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이해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물러나는가.
현대 주체는 불편함, 모순, 결핍을 '의미'나 '이야기'로 과잉 조직함으로써 견디려 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분석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경향이 드러나며, 분석경험을 통해 서사적 미학에 심취하기도 한다. 바로 서사를 통해 삶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서사가 종종 불안을 가리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편함은 사유의 출발점이기보다는, 가능한 한 빠르게 설명되고 봉합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분석가는 이 지점을 유의해야 한다. 분석가는 환자의 경험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위치를 부여받지만, 그 설명이 지나치게 빠를 때, 그것은 해석이라기보다 불편함을 제거하는 서사적 편집이 된다. 나는 이 지점에서 히치콕의 말이 떠올랐다. 영화란 인생의 지루한 부분을 편집해 놓은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분석 또한 자칫하면 삶의 혼돈을 감당하기보다는, 견딜 수 있는 이야기로 재배열하는 작업이 되기 쉽다. 분석가가 바라보는 장면과 환자가 바라보는 장면은 결코 동일하지 않으며, 환자의 경험은 언제나 역전이라는 렌즈를 통과한 뒤 분석가에게 도달한다.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믿고, 나의 '지금'과 타인의 '지금'이 같다고 가정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이 보여주듯, 이러한 가정은 환상이다. 분석실에서도 환자의 시간과 분석가의 시간은 결코 완전히 겹치지 않는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이 이미 편집해 놓고 남긴 파편들이다. 문제는 파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파편 위에 너무 서둘러 의미를 덧씌우려는 충동이다.
분석실에서 드러나는 역전이는 역설적으로 분석 관계의 근원을 드러낸다. 그것은 환자나 분석가 어느 한쪽의 심리적 현실로 환원되지 않으며, 사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소멸하듯 관계가 생성되고 해체되는 과정과 대비될 때에만 비로소 윤곽을 얻는다. 역전이는 분석가의 감정이라는 전경에 놓이지만, 동시에 그 감정들이 떠오를 수 있게 한 관계 전체의 배경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역전이가 언제나 우리를 더 깊은 이해나 필연적인 의미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석가가 경험하는 하나의 임의적이고 특수한 감정 반응-피로, 지루함, 멍해짐, 혹은 설명하고 싶은 충동-은 예외적 사건이라기보다, 분석 관계 전체가 지닌 비필연성을 드러낸다. 그 감정은 '왜 이런 느낌이 생겼는가'라는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요구하기보다, 그러한 느낌이 생겨도 무방했고, 생기지 않아도 무방했을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 보인다.
이 지점에서 분석가는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분석가는 역전이를 치료적 차원이나 의미 있는 단서로 삼아, 관계를 보다 안정된 이야기로 재조직하고자 한다. 이는 '아무 감정이나 떠올라도 무방하다'는 불안을 반박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역전이는 우연히 발생한 잡음이 아니라, 관계가 요구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도 역시, 역전이가 던지는 질문을 완전히 봉합하지는 못한다. 감정이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그 감정은 여전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었고, 아무 의미도 갖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존한다.
이렇게 보면 역전이는 분석의 필연성을 보증하는 근거라기보다, 오히려 분석이 언제나 우연적 사건들 위에서 성립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흔적에 가깝다. 그것은 해석의 출발점이기보다, 해석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자리에서 분석가에게 남는 체험이다. 분석가의 몸과 감정에 남는 이 체험은, 관계 속에서 무엇이 이미 편집되었고 무엇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를 암묵적으로 알려준다.
결국 역전이는 분석을 무너뜨리지도, 완성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것은, 이 분석이 반드시 이런 방식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는 사실을 끈질기게 상기시킨다. 분석가가 경험하는 감정은, 이해를 요구하기 전에 견뎌져야 할 사건이다. 분석의 윤리는 역전이를 얼마나 정확히 해석했는가가 아니라, 그 감정이 아직 하나의 이야기로 조직되지 않은 상태를 얼마나 성급히 봉합하지 않았는가에 의해 더 엄격하게 시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