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R.D.Hinshelwood과 Tomasz Fortuna가 쓴 『Melanie Klein』가운데 Projective Identification 장을 읽었다. 투사적 동일시는 정신건강 분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개념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만큼 개념의 사용은 느슨해졌고, 때로는 서로 다른 이론적 층위가 무차별적으로 겹쳐 사용되고 있다. 특히 혼동이 발생하는 지점은, 멜라니 클라인이 처음 제시한 엄격하게 심리내적이고 전능적이며 무의식적·방어적 환상으로서의 투사적 동일시와, 이후 비온을 거치며 확장된 의사소통적·상호주관적 과정으로의 투사적 동일시 사이의 관계다. 이 둘은 종종 동일한 개념으로 호출되지만, 사실 그 전제와 강조점은 상당히 다르다.
멜라니 클라인은 1946년 「Notes on Schizoid Mechanisms」에서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후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개념은 수많은 임상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되었고, 그 과정에서 확장되기도, 희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개념의 역사적 전개와는 별개로, 클라인이 처음 이 개념을 통해 포착하려 했던 것은 단순한 방어기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보려 했던 것은 유아가 처음으로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자기와 타자의 경계가 어떻게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침범되고 교환되는가라는 문제였다.
멜라니 클라인은 투사적 동일시를 정의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The phantasied attacks on the mother follower two main lines: one is the predominantly oral impulse to suck dry, bite up, scoop out and rob the mother’s body of its good contents...
The other line of attack derives from the anal and urethral impulses and implies expelling dangerous substances(excrements) out of the self and into the mother. Together with these harmful excrements, expelled in hatred, split off parts of the ego are also projected on to the mother or, as I would call it, into the mother. These excrements and bad parts of the self are meant not only to injure the object but also to control it and take possession of it. In so far as the mother comes to contain the bad parts of the self, she is not felt to be a separate individual but is felt to be the bad self.
Much of the hatred against parts of the self is now directed towards the mother. This lead to a particular kind of identification which establishes the prototype of an aggressive object relation.... I have referred to the weakening and impoverishment of the ego resulting from excessive splitting and projective identification."
클라인에 따르면 유아는 어머니를 향해 환상적 공격성을 두 가지 주요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하나는 구강기 충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머니의 몸을 빨아 말리고, 물어뜯고, 퍼내어 좋은 것을 빼앗으려는 충동이다. 다른 하나는 항문기·요도기 충동에서 비롯되며, 자기 안의 위험한 물질-배설물-을 자기 밖으로 내던지고자 하는 충동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 배설물과 함께 자기 자아의 분리된 부분들, 즉 나쁜 부분뿐 아니라 좋은 부분들까지 어머니 안으로 투사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투사의 결과, 어머니는 더 이상 독립된 타자가 아니다. 그녀는 '나쁜 나'로 경험되며, 자기 자신과 타인의 경계는 흐려진다. 클라인은 바로 이 지점-분열된 자아의 일부를 타자 안으로 투사하고, 그 투사된 대상을 손상시키고 통제하며 소유하려는 환상적 관계-를 투사적 동일시라고 불렀다. 이 경험은 무의식적 환상의 차원에서 일어나지만, 유아는 전능성의 환상 속에 살기 때문에 이 환상이 마치 현실에서 실제로 실현된 것처럼 전적으로 믿어지고, 생생하게 경험된다.
클라인의 정의에서 주목할 점을 몇 가지 짚어보겠다. 첫째, 투사적 동일시는 공격적 대상관계의 전형(prototype)을 형성한다. 둘째, 이를 사용하는 유아적 부분은 대상을 손상시키고 소유하며 통제하려는 충동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셋째, 투사하는 주체는 자기의 파괴적 측면뿐 아니라, 자기의 좋은 측면들까지 대상 안으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넷째, 투사적 동일시는 병리적 방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투사적 동일시에서는 전능성이나 극단적 분열 없이도, 주체가 대상의 심상 속으로 자신을 확장할 수 있다. 특히 성적 발달과 친밀한 관계 형성에서 정상적인 투사적 동일시는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Hinshelwood는 이 지점에서 투사적 동일시의 방어적 기능을 명확히 짚는다. 우울 불안을 회피하는 데서 부인(denial)이 중심적 역할을 하듯, 투사적 동일시는 편집분열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에서의 박해적 소멸 불안을 회피하는 핵심 기제다. 그러나 이 개념이 던지는 가장 불편한 함의는, 우리가 타인을 원치 않는 경험의 저장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본질적으로 불완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실제로 타인과 정체성의 일부를 교환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더욱 도전적은 사실은, 이러한 교환이 유아기의 원초적 국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사적 동일시는 삶 전반에 걸쳐 지속되며, 성인 관계 속에서도 반복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되었다. 우리는 유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유아를 하나의 미성숙한 존재, 아직 분화되지 않은 불완전한 인간으로 보는 시선과, 처음부터 강렬한 정서 경험과 복잡한 대상관계를 살아내는 존재로 보는 시선은 전혀 다른 이론적·윤리적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이 시선의 차이는 단지 학문적 입장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을 무엇으로 상정하는가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클라인이 본 유아는 결코 '아직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타자를 통해 자기 자신을 다루고, 불안을 조직하며, 관계를 구성한다. 쾌와 불쾌의 초기 경험은 곧바로 세계 전체를 분할하는 기준이 되고, 그 분할은 자기/타자의 이분법이 성립하기 이전에 이미 작동한다. 다시 말해, 유아는 먼저 관계 속에서 세계를 경험하고, 그 이후에야 자기와 타자를 분리해 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독립된 자아가 관계에 들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만 자아가 형성되는 존재다.
이러한 관점은 성인에 대한 이해로 그대로 확장된다. 투사적 동일시가 삶 전반에 걸쳐 지속된다면, 성인 역시 완결된 주체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타인에게 원치 않는 감정과 경험을 맡기고, 타인의 정서 상태에 의해 우리의 감각과 정체성이 흔들린다. 성숙함이란 투사적 동일시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내는 혼란과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진 상태에 가깝다.
결국, 유아를 바라보는 시선은 인간 전체를 바라보는 틀을 만든다. 유아를 단순한 발달 이전의 존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관계적 사건 속에 던져진 존재로 볼 것인가. 그 선택은 곧 우리가 아이를, 청소년을, 그리고 성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로 이어진다. 투사적 동일시에 대한 클라인의 급진성은, 특정 방어기제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이 처음부터 타자와 얽힌 존재이며, 그 얽힘은 평생 지속된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시선에 있다.
이 문헌을 읽으며 내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생각은 이것이다. 우리가 유아를 다르게 본다면, 아이들은 다른 어른으로 자라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어른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투사적 동일시는 이 질문을 회피하지 못하게 만드는 개념이다. 그것은 인간을 안전한 경계 안에 가두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처음부터 경계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끈질기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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