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인가, 사건인가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정신분석적 사고 속에 자리해 왔다. 그것은 환영받았고, 논쟁되었으며, 이름이 문제시되었고, 다른 개념들과의 경계가 끊임없이 재조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분석 장면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며, 마치 이미 확인된 사실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 지속성의 이유는 단순하다. 투사적 동일시는 임상에서 무언가를 설명해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이 시작된다. 투사적 동일시는 과연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가. 더 정확히 말해, 우리는 이 개념을 사용할 때 무엇을 발견했다고 느끼는가. 혹은 이 개념은, 우리가 어떤 장면 앞에서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사건은 아닌가.
처음 이 개념이 제시되었을 때, 그것은 인간 정신의 구조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발견처럼 여겨졌다. 유아는 자기와 대상을 분열시키고, 그 분열된 부분들을 대상 안으로 투사하며, 그렇게 변형된 대상을 다시 경험한다. 이 설명은 강력했고, 많은 임상 장면과 맞아떨어졌다. 투사적 동일시는 단순한 투사보다 더 구체적이고 대상관계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정신분석적 이해의 지평을 넓혀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투사적 동일시는 점점 더 많은 현상을 포괄하게 되었다. 공격과 회피, 통제와 의사소통, 관계적 교착, 심지어 분석가의 피로와 혼란까지-이 모든 것이 투사적 동일시라는 이름 아래 묶이기 시작했다. 이때 개념의 성격은 미묘하게 바뀐다. 그것은 더 이상 특정한 정신작용을 지칭하는 설명이라기보다, 장면 전체를 하나의 틀 안에 넣는 방식이 된다. 개념은 무언가를 밝혀내기보다, 장면을 빠르게 안정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이 지점에서 투사적 동일시는 발견이라기보다 사건에 가깝다. 분석가가 그 개념을 선택하는 순간, 장면은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되고, 다른 가능성들은 조용히 배제된다. 개념은 중립적 설명이 아니라, 장면에 개입하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투사적 동일시는 하나의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정신분석 개념은 세계 안에 이미 존재하던 어떤 구조를 '발견'하는 것인가, 아니면 분석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견디기 위해 생성되는 '사건'인가.
이 질문을 붙잡고 읽게 된 책이, Betty Joseph의 주요 논문들을 모아 엮은 논문집 'Psychic Equilibrium and Psychic Change'이다. 이 책은 단순한 논문 모음집이라기보다, Betty Joseph의 임상적 사유가 어떻게 형성되고, 돌파되고, 정립되었으며, 이후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었는지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따라가게 하는 일종의 사유의 지도처럼 구성되어 있다. 논문들은 'Begginings', 'Breakthrouhg', 'Consolidation', 'Recent developments'의 네 부분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오늘 내가 읽은 부분은 이 중 Recent developements에 실린 「Projective Identification: Some Clinical Aspects」(1984)이다. 이 글에서 Betty Joseph은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하거나 이론적으로 정교화하기보다는, 실제 임상 장면에서 이 개념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세 명의 환자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투사적 동일시의 임상적 유용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이 개념이 지나치게 포괄적일 때 발생하는 혼란과 위험을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을 읽으며 내가 계속해서 의식하게 된 것은, 이 개념을 다루는 Betty Joseph이라는 분석가의 태도였다. Betty Joseph는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을 충실히 계승한 분석가로 분류되지만, 그녀의 작업은 이론의 확장보다는 분석 과정 자체에 대한 집요한 주의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녀는 정신분석에서 무엇이 '설명되는가'보다, 그 설명이 어떤 순간에, 어떤 필요 속에서 등장하는가를 끈질기게 추적했다. 환자가 말하는 내용만이 아니라, 분석 장면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호작용, 즉 환자가 분석가에게 무엇을 하게 만들고 있는지에 주목하는 태도는 그녀의 임상 전반을 관통한다.
Joseph의 이러한 감각은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민방위 활동과 아동 피난민 지원에 참여하며 외상과 혼란의 현장을 직접 경험한 그녀는, 인간의 심리적 고통이 언제나 정돈된 언어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이후 Michael Balint와 Paula Heimann에게 분석을 받으며 수련한 그녀는, 이론을 적용하기보다 장면을 관찰하는 분석가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그녀의 글에서 투사적 동일시는 하나의 고정된 메커니즘이 아니라, 분석가의 역전이가 어떻게 포착되고 사용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띠는 임상적 사건으로 등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Betty Joseph이 투사적 동일시의 '임상적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그 개념의 포괄성이 불러오는 위험을 함께 다루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에게 개념은 안전한 설명이 아니라, 분석가의 사유를 시험하는 도구다. 투사적 동일시는 환자를 설명하기 위한 언어이기 이전에, 분석가가 지금 어떤 위치에서 장면을 조직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에 가깝다. 바로 이 점에서, 그녀의 글은 개념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대신, 개념을 다시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불안정성 속에서만, 분석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조용히 보여준다.
이 글을 여러 차례 읽으면서 나는 이상한 감각을 경험했다.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익숙했고, 임상에서도 자주 사용해 왔지만, 이 글을 읽을수록 개념이 또렷해지기보다는 오히려 흐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개념이 너무 쉽게 작동해 왔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유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이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사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인상 깊었던 단락을 필사해 두었다. 문장을 손으로 옮기는 동안, 나는 투사적 동일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나는 이 개념을 언제, 어떤 불안 속에 믿게 되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대개 그 믿음은 분석가가 무언가를 견디기 어려워질 때 도착한다. 환자의 감정이 과도하게 느껴질 때, 관계의 방향이 불분명해질 때, 혹은 자신의 반응이 설명되지 않는 혼란으로 남을 때, 개념은 하나의 출구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은 투사적 동일시다." 이 문장은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장면을 다시 붙잡기 위한 선언에 가깝다.
그 선언이 이루어지는 순간, 장면은 더 이상 열린 상태로 남아 있지 않다. 불확실성은 이름을 얻고, 혼란은 설명의 대상이 된다. 분석가는 다시 자신의 자리를 회복한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이 회복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바로 불확실성을 견디는 시간이다. 개념이 너무 빨리 도착하면, 그 시간은 사라진다.
여기서 개념의 윤리가 문제 된다. 투사적 동일시가 잘못된 개념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개념은 너무 잘 작동한다. 너무 많은 장면을 설명할 수 있고, 너무 많은 불안을 잠재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개념을 사용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나는 무엇을 발견했다고 느끼는가, 아니면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가.
정신분석 개념은 어쩌면 발견이라기보다 사건이다. 그것은 세계의 비밀을 드러내기보다, 분석가와 환자가 함께 서 있는 장면을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하는 사건이다. 그리고 분석가는 그 사건이 너무 매끄럽게 작동할 때, 한 번쯤 멈추어야 한다. 개념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순간이야말로, 다시 질문해야 할 순간이기 때문이다.
투사적 동일시는 나에게 하나의 결론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불편한 물음을 남겼다. 나는 이 개념을 언제 가장 확신에 차서 사용했는가. 그리고 그때, 나는 무엇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는가. 이 질문은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불안정성 속에서만, 정신분석적 사유는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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