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사막의 문법, 방어와 저항

by 연담




이 글을 읽고 나면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이해된 탓에,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문장은 차분하고, 설명은 정돈되어 있으며, 독자를 배려하는 어조로 이어진다. 그러나 읽기를 마치고 나면, 머릿속에는 개념 대신 공백이 남는다. 분명히 지나온 문단들이 있었는데, 어디에서 멈췄고 어디를 통과했는지는 말할 수 없다. 남는 것은 피로에 가까운 감각, 그리고 무엇인가를 놓쳤다는 막연한 느낌이다.


나는 이 감각을 실패로 이해하려 했다. 기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요약할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읽기를 통해 무언가를 소유해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읽은 것은 정리되어야 하고, 이해된 것은 재현 가능해야 하며, 배운 것은 호출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학술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는 더욱 그러하다. 문헌은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개념은 분명해야 하며, 독자는 읽은 뒤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런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것은 읽는 이를 지식의 소유자로 만들어 주지 않고, 대신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위치에 머물게 한다. 붙잡으려는 순간마다, 손에 남는 것은 텍스트가 아니라 나 자신의 조급함이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반복해서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어졌다. 문장 하나, 개념 하나, 중심을 대신할 무언가. 그러나 중심은 끝내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주변부만이 확장된다. 설명은 충분한데 결론은 없고, 이해는 가능한데 종착지는 없다. 이 글은 독자를 앞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다 이미 너무 앞서 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만든다. 이해하려는 속도, 정리하려는 욕망, 도착하려는 독서 습관이 이 텍스트 앞에서 번번이 제동이 걸린다.


이번에 읽은 글은 Alessandra Lemma의 Introduction to the Practice of Psychoanlaytic Psychotherapy 중 Chapter 7. "Defences and Resistance"이다. 이 책은 정신분석적 정신치료의 실제를 소개하는 입문서로 알려져 있고, Lemma는 임상가이자 저자로서 언제나 설명에 능숙하고, 문장에 절제력이 있는 작가다. 그래서 더욱 이 장이 잘 읽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이해가 안 되는 문헌이 아니라, 너무 잘 이해되는 문헌이 이토록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경험은 흔치 않다.


방어를 다루는 이 장의 특이한 점은, 방어를 문제로 삼으면서도 문제화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방어는 제거되어야 할 장애물로 제시되지 않는다. 교정의 대상도, 극복의 단계도 아니다. 대신 방어는 하나의 흔적으로 등장한다.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통과해 왔는지, 어떤 접촉을 견뎌야 했는지, 어떤 속도로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암시하는 흔적. 방어는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존재했다는 사실만이 조심스럽게 놓인다.



Some defences are developmentally necessary if the individual is to survive difficult early experiences. Alvarez(1992) has eloquently, and poignantly, elaborated this position through her work with very disturbed children. She argues for a concept of “overcoming” to complement the classical notion of defences, denoting the importance of considering where the patient is coming from (i.e. the notion of deficit) and where he may yet have to reach in terms of his psychic organisation. In discussing various defences, Alvare evocatively asks, “Do we need lifelines only to escape death, or also to preserve life?” (1992:112). This stance encourages us to consider when we work with patients who may have been deprived or traumatised not only what their defences seek to avoid, but also what psychic life they allow. The defene may, in some instances, be best conceived as a developemental achievement, a step towards greater integration rather than a structure that stands in the way of development. Taking the examples of obsessionval defences, Alvarez argues that we need to distinguish an obsessional defence used to control on object perceived to be separate from its use to achieve some order in a highly unpredictable world. Using the metaphore of a house to refer to psychic organisation, Alvarez suggests: In cases where the house isn’t yet built, what may look like an attempt to throw somebody out of the house-to project their suffering infantile part into someone else-may really be a deperate attempt to find a house anywhere.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인용된 하나의 은유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 집이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 밖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이, 사실은 어디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으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는 말. 이 문장은 방어를 다시 쓰게 만든다. 방어는 거부가 아니라 거주의 시도이며, 공격이 아니라 정착의 몸짓이다. 그것은 타자를 내쫓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타자가 너무 가까워질 때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다.


이 지점에서 방어는 기능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로 바뀐다. 방어는 무엇을 숨기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지연시키는지에 관한 것이다. 너무 이른 접촉, 너무 직접적인 노출, 너무 갑작스러운 현실. 방어는 그것들을 늦춘다. 그래서 방어는 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진실이 도착하는 속도를 조절한다. 방어는 말보다 오래 지속되고, 해석보다 먼저 작동한다.


이 문헌이 나에게 잘 읽히지 않았던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읽으면서 계속해서 도착하려 했다. 이해의 지점, 결론의 자리, 요약 가능한 상태. 그러나 이 글은 도착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를 계속해서 이동 중인 상태에 둔다. 의미는 생성되지만 고정되지 않고, 사유는 진행되지만 완결되지 않는다. 이 글에서 읽는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당하는 경험에 가깝다.




사막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사막에서는 길이 남지 않는다. 발자국은 금세 지워지고, 지도는 쓸모를 잃는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감각이 예민해진다. 특히 불안은 정확해진다. 불안은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너무 빠르다는 신호, 혹은 잠시 멈춰야 한다는 신호로 다가온다. 사막에서 살아남는 것은 목적지를 아는 일이 아니라, 쓰러지지 않을 속도를 유지하는 일이다.


방어는 바로 이 속도의 기술이다. 멈추는 것, 반복하는 것, 같은 자리를 도는 것. 외부에서 보면 그것은 진전 없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붕괴를 지연시키는 방식이다. 방어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아직 나아갈 수 없는 자신을 보호한다. 그것은 결핍을 가리는 장치가 아니라, 결핍 위에서 버티는 기술이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방어를 해체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방어가 왜 생겼는지를 서둘러 밝혀내지 않는 일이다. 왜 멈췄는지 묻기 전에, 멈추지 않으면 쓰러졌을 시간을 상상하는 일이다. 방어를 내려놓으라고 말하기 전에, 방어 없이 서 있었던 순간에 무엇이 그를 덮쳤는지를 묻는 일이다. 이때 관계는 치료의 수단이 아니라, 방어가 조금 느슨해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방어가 약해지는 순간은, 진실이 밝혀졌을 때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도 견딜 수 있게 되었을 때다. 사막에서 우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도 함께 걷는 누군가가 남아 있을 때다. 그때 방어는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변형된다. 집은 철거되지 않고, 창을 갖는다.


이 문헌이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남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은 지식을 남기지 않는다. 대신 독자의 독서 태도를 흔든다. 빨리 이해하려는 손을 멈추게 하고, 요약하려는 욕망을 지연시킨다. 읽고 나면 문장은 남지 않지만, 읽는 방식은 이전과 같지 않게 된다.


방어란 결국 현실을 피하는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너무 이르게 도착하지 않기 위해 마련된, 느린 문법이다.

그리고 이 문헌은, 그 문법을 독자의 몸에 먼저 가르친다.


이 장을 읽고 나서 남는 것이 없다는 감각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문헌의 한계라기보다 이 문헌의 방식에 가깝다. 이 글은 독자에게 무엇을 이해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너무 빨리 이해하려 했는지를 되묻는다. 그래서 이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텍스트를 통과한 뒤에도 계속해서 자기 자신의 독서 습관을 반추하게 만든다. 기억되지 않는다는 경험은, 이 문헌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하나의 통과 의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Lemma의 글쓰기는 언제나 과잉을 피한다. 이론을 과시하지 않고, 개념을 밀어붙이지 않으며,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임상가로서의 위치를 끝까지 유지한다. 설명은 충분하지만 결론은 유예되고, 해석은 가능하지만 강요되지 않는다. 이 장에서 방어는 이해의 대상이기 이전에 존중의 대상으로 놓인다. 방어는 분석을 기다리는 자료가 아니라, 이미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해 왔던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그래서 이 책은 입문서라는 분류와는 조금 어긋난 위치에 놓인다. 개념을 빠르게 습득하기 위한 안내서라기보다는, 개념을 다루는 태도를 훈련시키는 책에 가깝다. 특히 “Defences and Resistance” 장은, 방어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방어를 설명하려는 독자의 조급함을 노출시킨다. 방어를 이해하려는 순간마다, 그 이해가 너무 빠르지는 않은지, 너무 안전한 위치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를 묻게 만든다.


어쩌면 이 문헌은 치료자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하나의 방어를 요청하는지도 모른다. 즉각적인 요약을 유예하고, 결론에 도착하려는 욕망을 잠시 미루는 방어. 그 방어 덕분에 독자는 텍스트와 너무 빠르게 거리를 좁히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머물 수 있게 된다. 이때 독서는 정복의 행위가 아니라 동행의 경험이 된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난 뒤, 만약 방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는 느낌보다 방어 앞에서 조금 더 천천히 서 있게 되었다는 감각이 남았다면, 그때 이 문헌은 이미 충분히 읽힌 셈일 것이다. Lemma의 글은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독자에게 하나의 속도를 건넨다. 방어를 제거하기 전에 머뭇거리게 하는 속도, 해석하기 전에 관계의 시간을 견디게 하는 속도다.


이 글을 읽고도 여전히 붙잡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래서 다시 이 장을 덮고 싶어 진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한 번 더 펼쳐도 좋겠다. 이 문헌은 기억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라, 너무 이른 이해를 늦추기 위해 쓰인 글이기 때문이다.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패한 독서가 아니라, 남지 않음 자체가 하나의 읽기 경험이 되는 텍스트. 그 점에서 이 책은 읽고 나서가 아니라, 읽는 동안 독자를 훈련시키는 책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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