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야 할 때를 알 수 있다면

# 도전

by 스텔라박

살다 보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멈춰야 할 때 멈추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시작이야 마음먹고 한 걸음 내딛으면 되는 일이다. 물론 그 첫 걸음 떼기가 어렵긴 하지만 나는 시작이 그리 어렵지 않은 사람이다. 해보자! 안되면 어때? 이런 마음으로 도전하는 것을 쉽게 도전한다.


이런 나에게 어려운 것은 멈추는 일이다. 시작해서 한창 달려 나가다가 이게 아닌데? 하는 순간, 멈춰야 하는데 멈출 수 없다. 이미 가속도를 내어 달리고 있기에 브레이크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이미 시작한 거 끝을 봐야지! 이런 마음이 크다. 하지만 인생 이라는게 꼭 끝을 볼 필요가 없는 일들이 허다하다. 뻔히 보이는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멈추는 것이 더 현명할 때가 있다. 그 일을 멈추고 다른 일에 시간과 돈을 썼을 때 더 좋은 결과와 행복한 삶이 분명 있을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 해보자! 하는 마음에 이것 저것 시도했다가 결국 나중에 감당이 되지 않아 번아웃이 온 경험이 있다. 한창 학교 일에 열심일 때 부장, 연구회 회장, 도 연구회 간사 등의 일을 마구잡이로 시작했다가 결국엔 여기저기서 상처 받고 남은 건 지친 마음 뿐이었다. 물론 능력이 출중했다면 그 모든 일을 완벽히 해내고 나의 커리어를 화려하게 쌓아갔겠지만, 나는 그 만큼의 그릇이 아니었던 거다. 결국 주변 환경의 어려움과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쳐 휴직까지 하고 한 학기 쉬어갔다. 복직하고 학교를 옮겨 주변 환경이 안정되자 나도 서서히 회복하여 여기까지 왔다.


이런 내가 승진을 준비하고 교육 전문직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준비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승진을 준비하기에 이뤄내야 할 것들이 앞으로도 큰 산이다. 향후 10년간 준비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하겠지만, 지금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작년 11월부터 교육 전문직 준비를 시작해서 결국 저번 주에 1차 서류 제출을 마쳤다.


내가 어쩌다 교육 전문직 준비를 시작했을까. 주변에서 반응은 ‘네가?’ 이런 반응이었다. 내가 특출나게 일을 잘하거나 많이 한 게 아니어서 대부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장학사란 자고로 공문 하나 기깔나게 잘 쓰고 교육청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도전해서 성취하는 자리가 아니었던가. 나도 사실 내가 교육 전문직 준비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아빠가 근 10여 년간 명절 때마다 ‘너도 장학사 한번 해 봐라.’라는 잔소리를 했다는 것. 그렇지만 그게 다는 물론 아니다. 나는 정년까지 일하고 싶은 정년 꿈나무인데, 내가 나이를 들어 교사로서 힘들어질까 하는 두려움. 승진을 하기까지 넘어야 할 큰 산이 도무지 이뤄질거 같지 않다는 절망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전문 분야를 교육 전문직으로서 일을 추진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미혼인 나에게 놀면 뭐하니, 노후 준비는 하고 있니, 애 낳은 나는 교육 전문직 꿈도 포기했는데 너는 어떠니. 라는 주변의 핀잔. 복합적인 상황에서 나는 호기롭게 교육 전문직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1차 시험 공고가 나기 전까지 나는 약간의 여유시간을 포기했다. 아주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한 것도 아니다. 딱 하나, 내가 속한 시민극단의 창단 공연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 그게 가장 내가 포기한 것 중 큰 덩어리다. 하지만 그 와중에 글쓰기 클럽도 다니고, 브런치 작가도 하고 한 걸 보면 공부에 아주 매달린 건 아니지 싶다. 해야 할 공부가 있을 때 글쓰기를 하는게 얼마나 더 재밌던지, 이건 뭐 더 재밌게 놀기 위해 공부한 것도 아니고 뭔가 싶기도 한다.


그리고 1차 시험 공고가 났다. 처음에 제출해야 할 서류를 봤을 때, 아, 이거 포기해야 하나보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연구대회 보고서도 혼자 쓸 때 계획서만 호기롭게 제출하고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한 경우가 적어도 세 번은 있다. 내가 나의 가장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하고 하는 것을 유목화 시켜서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만 잘 했다면 나는 아마 나의 커리어를 훨씬 더 찬찬히 잘 쌓아나갔을 것이다. 1차 시험에 해당하는 제출해야 할 서류들은 내 교직 인생을 꼼꼼히 점검해서 보기 좋게 유목화 시키는 작업을 해야 했다. 물론 그 작업이 다가 아니라 그 만큼 교육청 정책에 따른 일들을 많이 한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험이었다. 마치 신규 장학사를 뽑는데 경력직을 뽑는 것처럼 그 동안 학교 일, 교육청 일을 골고루 많이 한 사람을 뽑겠다는 교육청의 의지가 엿보이는 1차 시험이었다.


나는 공고가 나고 제출하기까지 약 십여일 가량을 나 자신과 싸워야 했다. 그만둘까, 아니야 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지. 라고 서류 제출을 결심한 순간부터는 내 교직 인생을 찬찬히 생각하며 내가 한 일을 어디에 끼워 넣어야 하나를 고민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서류를 정리하고 잘 읽히게 글을 쓰는 것 또한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교직 생애 기술서를 쓰다가 교직 생애 에세이 집을 한 권 낼 판이었다. 나의 글쓰기는 주절주절 내가 쓰기 편하고 내가 즐거운 글쓰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보는 사람들이 한눈에 딱딱 들어오게 개조식과 서술식을 섞어서 쓰는 글쓰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퇴근하고 저녁부터 밤까지 집에 와서 쓰다 보니 이건 뭐 F의 감성 폭발 대환장 파티였다.


게다가 나는 늦어도 밤 아홉시 반부터 잘 준비를 해서 열 시면 꿈나라로 떠나는 사람인데 십여 일 넘게 12시 넘어서까지 컴퓨터를 붙잡고 있으려니 체력에 한계가 왔다. 결국 6일 차 쯤 감기에 걸리고 코 아래가 염증이 생겨 헐었다. 그래도 여기서 접을 수는 없었다. 일단 하기로 한 거 서류 제출까지는 해야 했다. 이건 나의 자존심 문제였다. 여기저기 장학사 시험 본다고 얼마나 떠벌리고 다녔던가. 동료평가 동의서를 받기 위해 어렵게 전출 간 선생님께 연락까지 드렸는데 여기서 접을 수는 없었다.


결국 1차 시험 서류를 제출했다. 마지막에는 내가 뭐라고 쓰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타자를 쳤다. 아, 모르겠다. 도저히 못하겠다. 이건 뭐 할말도 없고 알아서 해라. 읽을 테면 읽고 버릴 테면 버리라지. 이런 마음이었다. 나는 스스로 뒷심이 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나의 크나큰 이 단점을 이 시험을 치루면서 극명하게 알 수 있었다. 스스로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극한에 몰리면 다 놓아버리는 구나. 어쩔 수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내가 연구대회 보고서를 끝까지 못 썼지. 그랬지. 나 그런 사람이었지. 스스로 자책하고 자괴감에 휩싸였다. 나의 밑바닥을 만나는 나날이었다.


그래도 중요한 건 서류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던 간에 제출해야 할 서류를 완성했고, 제출했다. 더 붙잡고 있으면 더 잘 쓸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마음도 힘도 없었다. 서류 제출은 수요일까지였지만 나는 화요일부터 연수를 들어야 한다는 핑계로 화요일 오전에 시원하게 제출 해버렸다.


어쩌면 나는 올해 교육 전문직 시험에 도전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연구 점수를 따기 위해 연구대회를 준비하는 게 보다 나은 선택이었을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내가 즐거워하는 연극을 열심히 하는게 더 뿌듯한 일이었을 수 있다. 1차 공고가 났을 때 이건 아니다 멈춰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끝까지 갔다.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떨어질 게 자명한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끝까지 갈 필요가 있었는가.


그래도 나는 내가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딱 내가 이 시험을 준비하며 포기한 만큼 나는 얻었다. 세상에 쉬운 도전은 없다는 교훈과 하지만 끝까지 가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떨어지고 말고 결과 여부에 상관 없이 내가 시험공부를 했던 시간은 결코 헛되지는 않았다. 교육 정책에 까막눈이었던 내가 조금은 알아듣는 용어가 생겼고, 기획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했던 내가 대충 그게 뭔지는 알게 되었다. 1차 시험을 제출하면서 아, 내가 근 16년 동안 근무하면서 나름 이것저것 하며 열심히 살았었네 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토닥여주는 기회가 되었다. 나름 한 해 한 해 고민하고 도전하며 열심히 살았다. 이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큰 걸 얻은 셈이다. 교육청에서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나를 알아 줄테니, 그걸로 충분하다.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끝이 뻔히 보이더라도 끝까지 가 보는 것도 때때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인생이란 게 그렇다. 정답은 없고 선택과 과정, 그리고 결과가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결과가 중요하겠지만 결과만 중요한 건 세상에 없다. 선택과 과정이 더 중요한 순간도 분명 있다.


자, 이제 1차 결과를 기다리며 2차 준비를 할 것인가.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에이, 떨어질 게 뻔한데 2차 준비를 왜 하냐 라는 마음과 그래도 공부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싸운다. 어차피 흘러갈 시간, 공부를 해서 손해볼 건 없지, 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그냥 내가 지치지 않을 정도로만 딱 그 정도만 애쓰기로 한다. 그리고 1차에서 떨어지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않기로 한다. (사실 기대가 하나도 되지 않아서인지 실망도 크지 않을 듯 하다.)

작가의 이전글나의 동반자 술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