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게 뭘까?”
긴 연휴가 끝나가는 금요일 밤, 오빠가 무심하게 물었다. 산다는 게 뭘까?
나도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냥 사는 거지 뭐.
거실에 불을 끄고 우두커니 둘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주변으로 냥이 삼남매가 다가온다.
이제 나이가 들어 애정을 가지고 동물(많은 도마뱀과, 해수어와, 담수어 등)을 열심히 키우는 생활도 힘이 든다고. 이제 이걸 정리해야 하는데 그 에너지조차 나지 않는다는 오빠의 한숨. 때때로 사는 게 뭔가 싶다는 오빠의 고백.
“나는 목표를 가지는게 도움이 되더라고.(냐옹) 직장생활이든 (냐앙?) 내가 즐거워 하는 생활이든(애옹) 뭔가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면(냐아앙) 둘리! 엄마 말하는데 그만 끼어들어!.”
나는 소신껏 내 이야기를 하는데 둘리가 계속 참견한다.
“어쨌든 그 목표가 달성되건 달성되지 않건 간에 나아갈 방향이 있으면 삶에 에너지가 생기더라고.”
말을 이어가는 동안 쪼꼬맹이는 내 무릎에 앉아서 내 손에 얼굴을 비빈다.
“ 맞아, 넌 성취욕이 있어서 그렇게 생활하는 것 같아. 그런데 나는 뭔가를 이룬다는 거에 전혀 관심이 없거든.”
“ 꼭 직장생활이 아니라 취미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야. 내가 뭘 하고 싶은 거에도 작은 목표를 세우는 거지. 오빠 불렛 저널 쓰잖아. 그런 것처럼 하루의 소소한 목표를 정해서 달성하다 보면 산다는 게 뭔지에 대해 고민이 덜어진달까.”
오빠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토요일 저녁, 우리는 로또 한 장씩을 사 들고 최근에 발견한 엘피 바에 갔다. 딱 한잔 씩만 마시고 로또 맞춰보고 돌아오자 라는 목표를 가지고. 로또를 맞춰보니 역시나 꽝. 오빠나 나나 연말에 대운이 들어온다는 사주풀이는 도대체 언제 맞는거냐고 푸념하며 한잔 씩 더 마셨다. 그러다 우연히 오빠의 지인과 나의 지인이 일행으로 바에 들어왔다. 결국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술을 마시고 이제 일어나려던 찰나, 나카시마 미카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이란 노래가 나왔다. 다시 자리에 앉아 끝까지 그 노래를 들었다.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갈매기가 부둣가에서 울었기 때문이야
파도를 따라 떠올랐다 사라지는 과거도 쪼아먹고 날라가라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생일날 살구꽃이 피었기 때문이야.
나뭇잎 사이 비치는 햇살 아래 선잠이 들면, 죽은 곤충과 함께 흙이 될 수 있을까?
박하사탕, 항구의 등대, 녹슨 아치형 다리, 버려진 자전거
나무로 지어진 역 난로 앞에서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는 마음
오늘은 꼭 어제와 같아. 내일을 바꾸려면 오늘을 바꿔야 해.
알고 있어, 알고 있어, 그렇지만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마음이 텅 비었기 때문이야
채워지지 않는다며 우는 건 분명 채워지고 싶다고 바라기 때문이야
(후략)
-나카시마 미카,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절절한 나카시마 미카의 목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그리고 그 가사를 들으며 어제 오빠와 사는 게 뭔지 나누었던 수다가 떠오르며 죽음과 삶에 대해 잠깐 다시 생각에 잠긴다. 죽고 싶은 것과 살고 싶은 것은 결국 같은 말이 아닐까. 언제나 우리는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때때로 비루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하루에 대해 허무함을 느낀다. 결국 그 늪에 빠져 죽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어쩌면 고민이란 게 없는 게 더 행복할 지도 모른다.
나 또한 최근 목표했던 것의 결과가 나오기 전과 후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생각이란 것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삶에 대해 생각하면, 내 현재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지니 그저, 잊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 나에 대한 보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마시고, 여행을 다녀오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 즐거웠고 충분히 의미 있었다. 이렇게 나의 일상을 회복했다.
그저, 그렇게 살기로 한다. 너무 심각하지 않고 가볍게. 하지만 때때로 스스로를 돌아보며 살기로 한다. 중간중간 산다는 게 뭔지 고민을 던져보기도 하고, 때때로 즐기며 살기도 하고, 종종 목표를 세워 달려보기로 한다.
그리고 글쓰기도 꾸준히 하기로 한다. 잘 쓰든 못 쓰든 다시, 꾸준히 써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