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우드소싱 Jun 12. 2020

허쉬 (HERSHEY'S) 초콜릿 브랜드스토리


안녕하세요, 라우드매거진 에디터 SSong 입니다. 이번 호에서 알아볼 브랜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고 이름만 들어도 달콤한 브랜드, 허쉬 (HERSHEY'S) 입니다. 허쉬는 1894년부터 시작된 긴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인데요. 원래는 초콜릿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초콜릿을 선택하게 되었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이번 호 스포일러

1. 천 번을 흔들린 밀턴 허쉬

2. 왜 초콜릿 회사가 됐을까?

3. 허쉬타운 : 성공을 함께 나누다





1. 천 번을 흔들린 밀턴 허쉬

사진출처 : https://www.thehersheycompany.com/


위의 사진 속 남자가 허쉬의 창업자 '밀턴 스네이블리 허쉬'입니다. 밀턴은 185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데리타운십의 한 가정에서 탄생했죠. 하지만 밀턴은 현재의 명성과는 다르게 어린 시절은 그리 달콤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계속된 사업 실패로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죠. 결국 함께 사는 것이 버거워진 부모님은 별거를 선택하게 되었는데요. 재기를 위해 아버지의 사업에 맞춰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옮겨 다니던 밀턴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힘든 환경에서 자라게 됩니다. 결국 13살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죠.


안타까운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이런 밀턴의 기억은 훗날 긍정적인 사업 방향의 이정표가 되기도 하는데요. 그 얘기는 조금 뒤에 하도록 할게요!


사진출처 : https://hersheyarchives.org/


학교를 그만둔 밀턴은 하나 관심을 가졌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탕 만들기였는데요. 그런 밀턴을 본 어머니는 사탕 장인 '조셉로이어'에게 밀턴을 데리고 갑니다. (사진의 왼쪽이 조셉로이어, 오른쪽이 밀턴)

그리고 사탕 만드는 기술을 배우도록 했죠. 그렇게 4년간 기술을 전수받은 밀턴은 자신의 사탕가게를 차리고 싶어졌습니다.


사진출처 : http://springarts.com/journal/entry-three/


본격적으로 자신의 가게를 차리기 위해 이모에게 150달러를 빌렸고 필라델피아 중심부에서 사탕가게를 운영하게 됩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가 새로운 사탕 캐비닛을 밀턴에게 제안하는데 어렵지만 어떻게든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 캐비닛의 특허까지 구입을 합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881년 사탕가게의 문을 닫게 되었죠. 그리고 아버지가 계시는 콜로라도주 덴버로 향했습니다.


밀턴은 덴버에서 신선한 우유를 이용해 캐러멜을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캐러멜은 한 번 팔리면 대량으로 판매가 되는구나"


그리고 캐러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그 길로 밀턴은 시카고에서 캐러멜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어느 정도 캐러멜이 팔렸고 드디어 성공하는 건가 기대에 찼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3년 만에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합니다. 


뉴욕에서 다시 도전했지만 금세 문을 닫았는데요. 이 정도면 사업에 신물이 나서 다시는 손도 대지 않을 것 같지만 밀턴은 달랐습니다.


 1886년 펜실베이니아주로 돌아와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캐러멜 가게를 차리죠. 여기서 밀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영국에서 온 손님이 밀턴의 신선한 우유로 만든 캐러멜 사탕을 먹어보고 그 맛에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이로 인해 엄청난 양의 캐러멜을 주문하면서 은행 대출을 갚는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돈을 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90년대 초에는 '랭커스터 캐러멜 컴퍼니'라는 이름을 걸고 1400여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는 큰 기업으로 성장했죠.


사진출처 : http://explorepahistory.com/





2. 왜 초콜릿 회사가 됐을까?


사진출처 : https://fortune.com/2015/07/16/palantir-hershey-share-data/


"그럼 어떻게 캐러멜 회사에서 초콜릿 회사로 바뀌게 되었을까요?"


그 답은 1893년에 열린 세계 콜럼버스 박람회에 있답니다. 이 박람회에 갔던 밀턴은 독일 초콜릿 제조 기계 전시회에서 초콜릿을 맛보고 눈이 번뜩이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초콜릿 기계를 구입했고 기존에 제조하고 있던 캐러멜을 초콜릿으로 감싸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도 했죠.


그러던 중 밀턴은 초콜릿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1900년에 랭커스터 캐러멜 공장을 100만 달러에 경쟁업체에 넘기고 밀턴의 고향으로 돌아와 초콜릿 공장을 짓기 위해 넓은 농지를 인수했죠



하지만 공장을 바로 세우지 않고 밀턴은 한 가지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 연구는 '밀크초콜릿'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그 당시에는 밀크초콜릿이 브랜드 'Nestle'가 있던 스위스에서만 유일하게 공급되어 값이 비싸 부유층들만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밀턴은 이 맛있는 밀크초콜릿을 일반 사람들에게도 제공할 수 있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밀크 초콜릿을 만드는 재료 중 신선한 우유를 대량으로 구하기가 쉬운 이점을 가진,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죠. 밀턴은 3년의 연구 끝에 우유, 설탕, 카카오를 사용해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 밀크초콜릿 제조 비율을 찾아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www.hersheypa.com/about-hershey/history/index.php


그리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공장을 짓겠다는 다짐으로 초콜릿 공장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2년 만에 완공된 대형 초콜릿 공장은 밀턴의 제조 비율에 맞춰 밀크 초콜릿 생산에 돌입했고 이렇게 밀크초콜릿 바 'HERSHEY'S'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사진출처 : 유튜브 1990 Hershey's chocolate commercial


밀턴의 허쉬 초콜릿은 엄청난 인기를 끌며, 미국 전 지역에서 판매되는 최초의 밀크초콜릿이 되었죠. 


밀턴의 초콜릿 사업 인기 비결은 '대량생산'에 있습니다. 밀크초콜릿의 생산 비용은 비싼 편이었지만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 초대형 공장을 세우고 많은 양을 한 번에 제조했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가 가능했습니다. 




3. 허쉬타운 : 성공을 함께 나누다


사진출처 : https://www.pennlive.com/food/


앞에 목차 1을 시작하면서 밀턴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렸었는데요. '이런 밀턴의 기억은 훗날 긍정적인 사업 방향의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라고 말씀드렸던 이유를 설명해보려 합니다.

1898년 밀턴은 캐서린 스위니라는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허쉬 사의 직원 복지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밀턴이 캐서린과 상의를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의 직원들에게 더 좋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을까?"


긴 상의 끝에 거대한 복지를 내세우게 되는데요. 


"직원들을 위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자!"


여기서 마을 공동체란 오직 허쉬 사의 직원들을 위한 교회, 병원, 공원, 주택, 학교 등 일명 '허쉬 타운'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출처 : http://www.city-data.com/picfilesc/picc12254.php
사진출처 : https://www.ydr.com/story/news/2020/01/03/hersheypark


허쉬타운을 구축한 후에 수영장, 컨벤션, 놀이공원 등의 다양한 시설이 생기고 시골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도시처럼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허쉬의 직원들만 이용하는 마을이었지만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허쉬 타운에 호텔, 캠핑장 등도 들어서면서 관광지의 역할까지 하고 있답니다. 


이 허쉬 타운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바로 학교인데요.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던 밀턴은 가난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허쉬산업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캐서린과 함께 학교 아이들의 교육에 힘썼죠. 


사진출처 : https://www.adweek.com/brand-marketing/hershey-s-kisses-have-been-part-cultural-fabric-holida


허쉬산업학교에서는 세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요. ① 좋은 교육 ② 안정감 ③ 안전함 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양육했습니다. 


밀턴과 캐서린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허쉬산업학교는 '밀턴허쉬학교'로 이름을 변경하고 지금까지도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가장 부유한 학교'라 불리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브랜드 '허쉬'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창업자 밀턴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업에 발을 들인 후에도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성공까지의 길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한 자신만의 확신으로 무너지지 않고 노력해서 얻은 성공은 그에게 더욱 달콤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렸을 적에 겪었던 부족함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되풀이되지 않도록 힘썼다는 점에서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밀느님'...당신은...그저 빛....












* 라우드소싱 콘텐츠 모아보기


* 매주 목요일 오전에 미리 받아보는 뉴스레터



작가의 이전글 Z세대는 왜 MBTI에 열광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