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여행 에세이 #2
아침이 밝았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날씨는 완벽했다.
오늘은 대학 시절 중 2년을 함께 했던 소위 '여자사람동생'을 만나기로 했는데 시드니에서 조금 떨어진 맨리(Manly)에서 살고 있었다.
"What Time is Your name?!!"
이 정도는 아니지만, 학교 다닐 때는 영어를 말해도 국어책 읽듯 꽤 어설픈 편이었는데 이 곳에 온지도 한참이 지났으니 능수능란한 스킬을 보여주지 않을까?
뭐 그렇다고 내가 네이티브(Native)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교 다닐 땐 내가 좀 괜찮았지? 교수님은 아실거야?! 응?
숙소에서 카메라를 챙기고 하이드파크를 걸으며 이 곳의 아침을 느껴본다.
멀리 시드니타워도 보이고, 아침이라 많지 않지만 잔디 밭 위에 누워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양복을 입은 채 누워 책을 보고 있는 외국인. 출근을 하던 중이었던건지, 땡땡이를 치고 있는 건지. 그게 뭐든 그 모습 조차도 자유로워 보인다.
하이드파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영국 런던의 공원일 것이다. 여기 시드니의 하이드파크도 런던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지도로만 보면 직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다.
과거 식민시대 초기에는 크리켓이나 경마 등의 경기가 열리기도 했단다.
호주 식민시대 5번째 총독이었던 맥쿼리가 북쪽의 지역을 분리시켜 하이드파크라고 이름을 짓고 주민들의 여가와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나머지 도메인 지역은 총독 개인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하이드파크를 가로질러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아차! 블루마운틴 예약해야지?'
사실 우린 이 곳에 오기 전, 시드니 시내와 떨어진 포인트로 또 다른 여행을 하려 했었다.
지인이 살고 있다는 멜버른이나 울룰루(또는 에어즈락)가 있는 '앨리스 스프링스'로의 여행이었다. 어느 곳도 가깝지 않았고 또 그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울룰루를 가기 위한 여러 가지 여정과 시간들을 끝까지 서칭해보았으나 답이 없었다.
가는 날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 어쩔 수 없이 대안을 찾았다.
바로 '블루 마운틴(Blue Moutain)'
한국사람이 근무하는 여행사에 잠시 들러 블루마운틴을 가기 위한 버스 패키지에 2명을 예약했다. 대략 10만 원쯤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블루마운틴과 시드니 시내를 왕복하는 버스, 그리고 간단한 식사와 음료 제공 패키지! 예약 완료!
마치 화장실에 다녀온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서큘러키에서 맨리로 가는 페리를 타야 하는데 일단 서큘러키로 이동할 수 있는 무료버스(Free Shuttle)를 알아둔 바 있다. 바로 555번.
우리가 이 곳에서 가장 많이 탔던 버스 중 하나다. 서큘러키를 거쳐가니 여행객들에게도 굉장히 유용한 버스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 곳 시민들과 여행객들의 지친 발을 책임져주는 그 마음과 호의에 감사를!
서큘러키에 도착하여 페리를 탔다.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페리가 점차 속력을 내자 머리가 휘날렸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앉은 꼬마 아이가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우리가 좀 초췌했던 건가?
"Hi"라고 인사하니 웃으며 손짓을 했다.
햇살 가득한 바다 위로 시원하게 질주하는 페리. 좌측으로는 하버브릿지가, 우측으로는 오페라하우스가 보였다.
역시나 아름다웠다. 점차 오페라하우스에서 멀어지는 페리.
20분? 30분이 지났을까?
맨리에 도착한다는 페리. 카메라와 짐을 챙겨 맨리에 발을 디뎠다.
드디어 맨리에 왔다!
맨리(Manly)는 '남자다운, 남성적인'이라는 의미인데 이 곳이 "맨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788년이다.
영국 해군의 군인이었던 아서 필립(Arthur Phillip)은 식민지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 제독으로 임명되었는데, 1788년 이 곳을 처음 탐험할 때 원주민들의 '남자다운' 모습을 보고 'Manly'라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거친 파도'가 남성적이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긴 했다. 아마도 전자가 '맨리'의 유래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맨리 부두 앞은 생각보다 한적했다. 이 곳을 지나다니는 차량들도 별로 없어 보였다.
서큘러키에 비하면 이 곳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춥게 느껴지기도 했다.
'을씨년'스러웠지만 '어디 놀러 가기 딱 좋은' 바로 그런 날이었다.
30분이 지났나? 드디어 마중 나오기로 한 동생이 버스에서 내려 부랴부랴 뛰어왔다.
오전에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늦었단다. 몇 년 만에 본 얼굴, 반가웠다.
사실 아침에 나와서 딱히 먹은 게 없었다.
허기진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고 그녀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일식집을 추천했다.
시드니에서 먹어보는 초밥이라니. 아까부터 느꼈던 '허기'가 극에 달했다.
총총총 발걸음에 더욱 속도를 냈다.
맨리 안쪽으로 들어가니 아담하면서 예쁘거나 꽤 좋아 보이는 집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뭐랄까 거리 분위기는 마치 우리나라의 성북동 같은데 용인의 빌라촌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들어보니 맨리의 부촌이 모여있다고 한다.
역시나 길거리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간혹 보이는 사람들은 비치웨어에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로 향하는 서퍼들.
거리가 끝나는 지점엔 Freshwater라는 해변가가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파도와 함께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서핑 구경은 둘째 치고 얼른 배를 채워야 했다.
맨리 부두에서 얼마나 걸었을까. 상가들이 보이는 거리로 진입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그녀의 일식 레스토랑..이라고 하기엔 초밥이 나오는 작은 식당?
우리나라의 분식점만한 작은 식당에서 일하던 그녀는 사장에게 '한국에서 온 친구들'이라며 우리를 소개했다.
주방에서 홀로 다시 주방으로 왔다 갔다 하던 동생이 몇 분 후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초밥을 가져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인다.
큼직한 초밥들이 아름답게 올라가 있었다. 겉보기엔 그저 작은 분식집 같았는데 꽤 싱싱한 초밥들로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는듯했다.
한국에서도 여유만 있다면 즐겨 찾았던, 그야말로 없어서 못 먹었던 초밥이었는데 지구 반대편으로 놀러 와서 이렇게 럭셔리한 초밥을 먹게 되는구나.
냠냠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초밥들이 우리의 에너지를 충전시켜주었고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프레시 워터(freshwater beach)와 맨리 비치를 따라 걷기로 했다.
어느새 길어지고 있는 내 그림자가 시간을 알려주는 듯했지만 아직은 햇살이 있어 걷기엔 충분히 괜찮았다.
이미 수많은 서퍼들이 자신의 발자취를 남겨놓았다. 바다소리가 들리고 바람도 살살 분다.
앞에서는 저 멀리 수평선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뒤에서는 햇살이 비추니 오묘한 느낌이었다.
퀸 클리프 헤드(Queenscliff Head)의 집들을 지나가면 다시 해변과 만나게 된다.
프레시 워터 비치보다 3배 이상 길게 뻗은 "맨리 비치(Manly beach)"
맨리 주변으로는 맨리 비치와 프레시 워터 비치, 컬컬 비치(Curl Curl beach) 등이 있는데 맨리 비치가 가장 크고 가장 번화한 편이었다. 남쪽 본다이 비치와 시드니를 대표하는 비치다.
본다이 비치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곳도 적당한 바람과 적당한 파고(wave height)가 서퍼들을 유혹한다.
맨리 비치는 약 1~2km쯤 된 듯했다. 오른편에는 상점들과 레스토랑들이 즐비했고 왼편으로는 서퍼들과 여행객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보였다.
맨리 비치의 끝으로 다다를 때쯤, 동생이 바다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고래다!"
나도 순간 눈을 돌렸고 고래의 꼬리가 바다 속으로 진입하는 순간을 목격했다. 찰나였다.
"이 곳에서 저렇게 고래 꼬리라도 보는 거 쉬운 일은 아냐. 오빠들 운 좋은 거야"
그래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비록 멀리였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래의 꼬리는 뚜렷했다.
해변가랑 멀지 않은 듯한데 고래라니.
반환점을 돌듯, 맨리 비치의 끝인 셸리 비치(Shelly beach)에 앉아서 쉬다가 상점이 있는 비치 중앙으로 돌아갔다.
갈매기들이 주변에 과자를 먹으며 쉬고 있는 여행객들 주위를 에워쌌다.
옆쪽으로 과자를 던지니 비둘기가 모여들듯 이 녀석들도 한꺼번에 모여들었다.
근처에서 북적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동양인으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일본 학생들이었다.
수학여행이나 졸업여행을 온 듯했다.
난 기껏해야 불국사, 경주, 오동도가 전부였는데. 이 아이들은 시드니로 여행을 온 모양이다.
교복을 입고 있어 불편할 법도 한데 그저 신나게 해변가를 뛰는 이 아이들도 그저 철없는 청소년, 사춘기구나.
부럽다...
그들이 나온 골목으로 들어가니 서퍼 스쿨, 비치웨어 상점 그리고 타투샵(tatoo shop)이 보였다. 덩치 좋은 한 사람이 엎드려있고 팔에 그림을 잔뜩 그린 타투이스트가 화려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거 엄청 아프대"
"그래 알아. 할 생각도 없어"
타투샵도 내겐 그저 신기해 보이는 상점들 중 하나일 뿐. 국내엔 대놓고 타투샵이 보이지 않으니 신기하긴 했다.
해가 뉘엿뉘엿 한쪽으로 숨어버리자, 가득 찼던 갈매기들도 떼 지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과 술을 파는 바(bar)에 사람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호주에 왔으니 "호주산" 소고기를 먹기 위해 스테이크와 맥주를 주문하고는 맨리의 저녁을 즐겼다.
이제 언제 다시 오게 될지 알 수 없는 이 시간을 만끽하며, 건배를!
맨리 부두로 돌아가 숙소에 가기 위해 페리를 기다렸다.
누군가의 "마중"과 "배웅",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이 곳.
마중을 나왔던 그녀는 배웅을 위해 우리와 함께 했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페리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만이 바다 위를 비춘다.
저 멀리 시드니 시내의 야경이 우리의 페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를 이렇게 보니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낮이나 밤이나 랜드마크는 역시 다르구나.
그렇게 우린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글쎄 생각해보면 한 것도 없이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동생을 만나고, 밥을 먹고, 해변가를 둘러본 것. 평범하다는 느낌?
달리 생각해보면.
저 멀리 (꼬리일 뿐이지만) 운 좋게 고래도 봤고, 튼실하고 싱싱한 초밥도 먹고, 반가운 동생도 만나고, 멋진 해변가를 둘러본 것. 생각에 따라 스페셜한 날이 될 수도.
그래, 당연히 오늘도 스페셜한 날이었다!
"형, 오늘도 한잔 해야지?"
"그래 먹고 일찍 자자"
시드니 여행기는 3편에서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