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했던 시네마천국은 그렇게 변해갔다.
아주 어릴 적, 엄마의 손을 잡고 시내에 있는 아주 작은 극장에 <E.T>를 보러 간 적이 있다.
100석 남짓 되는 딱 하나의 상영관. 표를 끊고 엄마, 동생과 나란히 앉아 얼른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어른들의 담배냄새가 방금 구운 듯 마른오징어의 냄새와 뒤섞여 퀴퀴했을 법했는데도 내 신경세포는 온통 거대한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고 설렘과 흥분이 동시에 발산 중이었다.
당시에도 영화가 시작하기 전, 광고나 예고편이 흘러나왔는데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등장했던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보고 "엄마, 무서워!"라고 말하니 손으로 내 눈을 가려주셨다.
100분이 넘는 영화 <E.T>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SF영화로 무려 33년 전에 제작된 영화다. 외계인 E.T와 교감하며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던 엘리엇 역의 헨리 토마스는 벌써 50세를 바라보고 있는 중년이 되었고 1984년 당시 38세였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칠순을 넘어선 노장 감독이 되었다.
세월이 지나 어설프거나 유치할 법한데도 <E.T>가 주는 감동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졌다. 신비하고 환상적이며 감동적인 플롯이 나의 어린 시절과 묘하게 디졸브 된다. 그만큼 이 영화는 SF라는 장르뿐 아니라 영화사(史)에 길이 기록될 작품이다.. '33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나의 어린 시절, 그때 그 영화
내가 살고 있던 곳에는 상영관 하나짜리 '중앙극장'과 '국도극장'이 존재했다. 몇 년이 지나 '중앙극장'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었다. 볼만한 영화는 서서히 넘쳐나는데 그나마 하나 있던 상영관은 이미 노후되었고 상영관을 3개로 늘린 '국도극장'의 멀티플렉스 전략과 5개가 넘는 상영관을 갖춘 극장이 하나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비좁고 낙후된 극장보다는 쾌적한 환경의 상영관을 찾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소비자의 심리.
중앙극장이나 국도극장을 찾는 사람들은 뜸해졌고 몇 년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있다.
그때 그곳은 나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단편적이지만 지극히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 당시 새롭게 오픈한 극장에서 봤던 영화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1991년 7월 6일.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 영화,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터미네이터 2>.
<터미네이터 2>의 존재는 그야말로 엄청났고 당시에도 큰 화제를 모았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놀라운 기술은 과거보다 크게 발전했고 로버트 패트릭이 연기한 T-1000은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지금의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만든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터미네이터 2>는 당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 시각효과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 작품 속에서 발휘된 시각 효과는 이후 영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극장을 나오며, 함께 본 친구와 영화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야, 진짜 멋지지 않냐?"
"난 또 봐야겠어!"
당시 학교에서도 단체 관람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그 인기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터미네이터' 역사에서 다시 나오지 않을 그리고 오랫동안 터미네이터 마니아 층에서 회자될 작품이 되었다.
같은 날 맥컬리 컬킨의 인생 영화 <나 홀로 집에>가 함께 개봉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 생각날 법한 영화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름에 개봉한 영화다. 영화 <대부>로 영화감독을 꿈꿨던 크리스 콜럼버스가 연출한 작품으로 지금도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자로 열일하는 인물이다. 반면 어린 시절 귀여웠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맥컬리 컬킨은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 시내에는 영화관이 꽤 즐비한 편이었다.
충무로의 대한극장, 을지로의 명보극장, 스카라극장으로부터 종로 3가의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까지 이어져 있는 과거 극장의 모습과 주변 거리는 내 눈을 번쩍이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들어갔고 좌석도 어마어마했으며 스크린 또한 웅장하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통제하에 단체 관람했던 <로렌조오일>이나 <서편제>는 사춘기에 접어든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저 지루한 영화였을지 모른다. 93년 3월에 개봉한 <로렌조오일>은 희귀병에 걸린 아들 로렌조를 위한 오돈 부부(닉 놀테와 수잔 서랜든)의 위대하고 놀라운 모습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려내 감성을 자극했다.
1960년대 배경으로 판소리를 주제로 한 <서편제>는 93년 4월에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작품으로 청룡영화상, 대종상 등 국내 유명 영화상을 휩쓸었다.
"야, 지루하다", "선생님이 우리 쳐다본다. 조용히 좀 해"
웅성웅성 대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영화 보랴, 아이들 감시하랴 선생님들의 눈은 바빠졌고 이내 호통이 이어진다.
"야 너네들 조용히 하고 봐라!"
두 영화 모두 우리에겐 '감상문'이라는 숙제로 남겨졌다.
브런치나 블로그를 이용해 '리뷰'를 쓰듯 투박한 말투와 건조하고 딱딱한 단어들을 조합해 영혼 없는 '감상문'을 작성해 제출하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영혼을 담아 리뷰를 쓰고 있는 것일까? 무미건조한 궤변으로 브런치의 하얀 공백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추해보게 된다.
사라져 버린 시네마천국 그리고 멀티플렉스의 본격화
1988년 개봉한 <시네마천국>은 내 기억 속에 오랜 기간 동안 존재하고 있는 인생 영화 중 하나다.
영화가 세상의 전부인 토토(살바토레 카스치오)와 아주 낡은 마을에서 영사기사로 일하는 알프레도(필립 느와레)의 애틋하고 감동적인 우정을 그린 영화로 많은 관객들을 울고 웃게 했다.
작은 광장에서 마을 사람들이 영화를 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시네마천국은 그저 3류 극장이 되었고 도시개발로 인해 이마저도 사라져 버린다.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되어버린 토토(자끄 페렝)가 자신이 이룩한 극장에서 수많은 영화의 키스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관객 모두에게 '하이라이트'일 것이다.
키스신으로만 조합된 이 엔딩신은 대략 40편의 영화를 하나로 모은 것으로 1932년 영화 <무기여 잘 있거라>나 1946년 <멋진 인생>의 짤막한 신도 존재한다.
우리가 과거에 즐겨 찾았던 영화 속 시네마천국, 즉 '동네 극장'도 멀티플렉스에 가려져 대부분 사라졌다. 극장들 역시 대기업의 손에 맡겨져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유혹했다.
미국에서는 건물 하나에 5개 이상 상영관을 갖추면 '멀티플렉스'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비디오와 같이 집에서 편히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던 과거 극장들은 다소 불황이었다. 그 대안이 바로 '원스톱 엔터테인먼트'이자 멀티플렉스였다. 최근에는 영화의 상영시간을 기다리며 쇼핑도 즐기고 식사도 한다.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복합 시설은 삶의 질을 높여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CGV나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이 대표적인 멀티플렉스다.
1998년, '멀티플렉스'라는 이름으로 강변역에 CGV가 탄생했다.
그 당시 관람했던 영화는 98년 5월에 개봉한 <여고괴담>
최강희가 관객들을 향해 다가오던 모습에 관객들 대부분은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당시 <여고괴담>은 200만 명이나 끌어모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으로 2009년까지 무려 5편이나 영화로 제작되었다.
멀티플렉스는 98년 이후 우후죽순 늘어났다. 멀티플렉스의 본격화와 동시에 블록버스터도 전성기를 이루기 시작했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 역시 1999년 2월 개봉해 전국적으로 62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객을 끌어모았다. 비극적인 남북의 분단 현실과 함께 중원(한석규)과 명현(김윤진)의 가슴 아픈 사랑을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만들어내 크게 성공했다.
수많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미국 같은 나라만 해도 수입 액수를 기준으로 흥행을 판단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관객수가 영화 흥행의 척도이자 기준이 된다. 영화 제작을 위해 투자한 예산에 대한 손익 분기점(BEP) 역시 관객수로 판단하곤 한다. 대한민국의 인구수가 대략 5천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천만 관객은 매우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기록 역시 '멀티플렉스'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2003년 12월,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1968년 창설된 '실미도 684부대'를 그린 영화로 1천100만 명을 끌어모아 '첫 천만 관객 돌파'라는 역사적 기록을 달성했다. <실미도> 개봉 이후 3개월이 지나, 6.25 전쟁을 배경으로 두 형제의 애틋한 우애를 그린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했고 <실미도>의 관객을 넘어섰다.
※ 영진위 기준으로 <실미도>는 1,108만 명, <태극기 휘날리며>는 1,174만 명이 관람했다.
2014년 개봉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은 무려 1천761만 관객이 들어 지금까지 가장 많은 관객으로 기록되었다. 이 영화가 상영된 스크린 수만 해도 1천500여 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치다.
다양성 영화에도 봄은 오겠죠
CGV는 올해 1월 월간 관람객 2천만 시대를 맞이했다. 이 기록은 전 세계 최초라고 한다.
오래전 내가 살던 그 지역에는 CGV만 두 곳이 존재한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도 CGV나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까지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만큼 멀티플렉스는 우리 가까이 존재한다.
다만 멀티플렉스라 해도 상업적 영화나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인디영화나 저예산 영화 등 다양성 영화의 상영회수를 가리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다양성영화라 함은 작품성이나 예술성이 뛰어난 소규모 저예산 영화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또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일컫는다. 내용도 비용도 블록버스터급인 상업영화와는 정반대의 개념이라고 보면 편하겠다. 관객수 또한 많지 않은 편이라 10만 명이라는 관객수라 하면 흥행했다고 표현하기도 하니 수익성은 당연히 높지 않은 편이다.
최근에 개봉한 이나정 감독의 <눈길>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아픈 역사를 그려낸 영화로 영진위 기록으로 10만 명을 돌파했다.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KBS에서 2부작 드라마로 방송된 바 있음에도 불구 놀라운 성과를 일궈낸 것.
2013년 3월 개봉한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는 제주 4.3 사건을 그린 흑백영화로 다양성 영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29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고 한국의 다양성 영화에서는 이례적으로 14만 명이나 관람했다.
영화란 그저 '개인의 취향'인 법.
어쩌면 다양성영화가 지극히 따분하고 잠이 올 정도로 지루할 수도 있다.
다양성 영화가 스크린을 많이 확보할 수 없는 건 감히 말해 '배급사의 횡포'라고도 할 수 있고 영화도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이기에 어쩔 수 없는 '시장논리'라고도 할 수 있다.
잘 나가는 인기 배우들이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스크린을 장악하는 사이사이에 배치된 다양성 영화는 많아야 1~2차례이고 그마저도 보기 어려운 시간대에 배치되기도 한다. 필름포럼, 인디스페이스, 아트하우스 모모 등과 같이 비록 100석 규모의 작은 영화관이지만 의지만 있다면 즉 볼려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긴 하다. 100석을 꽉 채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기 때문에 썰렁해보일 수도 있다. 어떨땐 10명, 또 어떨땐 2~3명이 좌석을 채울 때도 있다.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가 표출하는 묵직한 메시지는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때론 심오하고 미묘하며 때론 진지하고 진중한 이야기들은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 같기도 하다.
지금도 수많은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거나 개봉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양성 영화도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 100만 명이라는 기록도 채우리라고 본다. 그렇게 다양성 영화에도 봄은 오리라.
영화 산업은 날이 갈수록 변해간다.
고객들을 위한 이벤트도 늘 진화하고 VIP를 대상으로 한 리워드도 변모하고 있다. 사실 필자는 국내 멀티플렉스 VIP 기준에 모두 해당되지 않아 등급 하락도 아니고 단번에 컷오프 되어 고배를 마셨다. 그때문일까? 각 영화관들이 내세우는 기준도 리워드도 뭔가 야박하게 변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아쉬움과 얄미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The End.
※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해온 영화라는 문화 콘텐츠와 이를 서비스하는 영화 시설과 산업에 대한 환경을 아주 단편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함이 이 글의 취지입니다.
※ 시네마천국의 엔딩신이자 하이라이트를 유튜브 영상으로 공유해봅니다. 출처 : Unforgettable Channel의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