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17년의 대장정을 마감하는 작품, 영화 <로건>
1963년 9월. 마블코믹스의 <엑스맨>이 처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엑스맨>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돌연변이에 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돌연변이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좋지 않은 데다 이들의 가진 초능력과 그에 따른 파괴력이 어마어마했으니 절제와 컨트롤이 필요했다. 자비에 교수가 이들을 모아 세상과 화합할 수 있는 슈퍼히어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킨다. 인간과의 화합과 공존 그리고 급기야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으로 거듭나기 시작하는데...
<엑스맨>의 이야기는 그렇게 5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2000년 영화화되어 스크린에 등장했다.
엑스맨에는 여러 뮤턴트(mutant, 돌연변이)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휴 잭맨이 연기한 '울버린'은 엑스맨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인물로 <엑스맨>의 스핀오프(Spin Off)로 영화화된 것 역시 울버린이 유일하다.
지금까지 무려 17년 동안 <로건>을 포함, 총 9개 시리즈에서 울버린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소화해낸 것만으로도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만큼이나 사랑받은 캐릭터도 없을 것이다.
로건과 휴 잭맨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그간 고생했다고. 편히 쉬라고.
울버린의 오랜 역사와 기록은 이번 작품 <로건>을 끝으로 끝내 작별을 고했다.
"안녕 로건, 안녕 울버린!"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가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17년의 대장정을 마감하는 작품, <로건>
위에서 언급했듯 울버린은 엑스맨에서 가장 사랑받은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육질의 몸매, 울버린만의 유니크한 헤어스타일과 덥수룩한 구레나룻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트레이드마크'다. 손에서 튀어나오는 예리한 무기, '클로'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 '힐링팩터'는 그가 슈퍼히어로임을 증명해주는 능력이다. 비록 과음을 하고 절제가 어려운 다혈질의 성격이긴 하지만.
휴 잭맨이 아니었다면 이 캐릭터를 이만큼이나 소화할 수 있었을까?
한때 울버린도 젊었다. 17년 전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17년이 지나 슈퍼히어로의 능력을 잃어가는 설정만으로도 왠지 가슴 한편이 시리다. 팬이었기에.
울버린, 그가 인간이었을 때 가지고 있던 이름이 바로 '로건'이다. 세월의 흔적으로 짙게 남은 주름과 손질하지 않은 수염으로만 봐도 그가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아왔을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멕시코 국경 부근.
아무도 모를듯한 은신처에서 프로페서 X(패트릭 스튜어트)와 함께 살아간다. 뮤턴트도 나이가 들면 주름이 지고 쇠약해지는 것일까? 로건과 프로페서 X 모두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의 육체마저 보존하기 힘들 정도로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아니 '이젠 늙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만 같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이 어린 소녀 로라(다프네 킨)를 쫓다가 로건과 마주한다.
로라는 로건과 닮았다. 손에서 튀어나오는 무기 클로마저도 똑같다. 로라는 로건을 잇는 차세대 뮤턴트이자 엑스맨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이미 예고된 그리고 예견된 캐릭터다.
<로건>의 액션은 거침이 없다.
9개의 <엑스맨> 시리즈 중에서 유일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예상보다 잔혹하고 처절하다. 이만큼이나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잔인함도 없었던 것 같다. 2013년 <더 울버린>과 이번 작품을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잔인함보다 성숙함에 다가섰다고 했다.
인간이 태어나 인생을 살고 나이가 들어 죽음이라는 끝에 다다른다는 것. 그것은 숙명이다. 뮤턴트 또한 다르지 않았다. 로건과 로라의 캐릭터로 인해 영화는 기존에 없던 뮤턴트의 가족 그리고 그에 따른 유대관계 또한 형성했다. 아마도 감독은 이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같다. <로건>은 폭발적인 액션과 함께 한층 더 성숙한 플롯을 구축했다.
그간 CG로 뒤덮었던 웅장한 스케일은 엑스맨이 보여줄 수 있는 '블록버스터'를 과감하게 표출해왔다. 이번엔 시골마을, 특히나 멕시코 국경이나 울창한 숲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사투는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엑스맨의 로건, 마침표를 찍다.
로건의 덥수룩하고 희끗한 수염은 그간 힘겹게 살아온 세월을 증명한다. 찢기고 파여도 순식간에 멀쩡해질 수 있었던 치유 능력도 이젠 원활하지 않은 만큼 곳곳에 상처투성이다. 잔기침마저도 로건은 이제 더 이상 최강의 뮤턴트라기보다 그저 인간이자 '아저씨'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더욱 강한 상대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다. 한때 우리의 영웅이었던 로건으로 인해 관객들은 애처로움과 아픔을 동시에 느낀다.
로라와의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가족애는 <엑스맨>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측면이기도 하다. 혼밥, 혼술이나 할법한 그리고 누구보다 외로워 보이는 뮤턴트들이지만 그로 인해 더욱 분노한다.
분노의 정점은 곧 로건의 끝을 이야기한다. 증폭된 힘은 소멸로 이어진다. 즉 죽음이라는 것.
잘 생각해보면 울버린만큼 외로운 캐릭터도 없을 것이다. 고독하고 쓸쓸한 우리 시대의 영웅이 맞이하는 피날레는 더할 나위 없이 슬프다. 더구나 그 끝에서 맞이하는 '가족애'이자 '부성애'는 그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로건을 떠나보내기 싫은 팬의 마음을 후벼 파듯이.
로라는 로건으로 인해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다. 이미 늙어버린 구 시대의 영웅들을 떠나보내고 우리는 차세대 뮤턴트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끝이 아니라 다음 세대 <엑스맨>의 출발이기도 하다.
마트 앞에서 놀이기구를 타거나 과자를 먹는 모습은 마냥 어린아이 같고 순수해 보이지만 학살에 가까운 전투 능력은 울버린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듯 화려하고 강렬하지만 마트 앞에서 놀이기구를 타거나 아무렇지 않게 과자를 먹는 모습은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이러한 모습은 '아빠'로서의 울버린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 감동의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엑스맨> 그리고 '울버린'에게서 이러한 정서적이고 정동(情動)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영원한 작별을 고해야만 하는 '마지막'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잘 가요, 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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