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인터넷은행이 문을 열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선 영수증을 한데 모아놓고는 통장을 열어보시며 가계부를 쓰시곤 했다.
당시만 해도 약 10분을 넘게 집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겨우 은행에 다다를 수 있었다. 돈을 입출금 하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모아둔 돈을 입금하거나 필요한 돈을 꺼내 사용해왔다. 전기세, 수도세 등 공과금을 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흥은행, 한일은행 등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과거 은행들의 명칭도 이젠 어색하게만 들린다.
찰랑찰랑 대던 100원짜리를 하나 둘 모아 돼지저금통이 묵직해지면 모아둔 돈을 꺼내 은행으로 달려갔다. 얼마 되진 않았지만 통장에 기록된 돈의 액수를 보고 기뻐했던 과거의 내 모습. 생각해보면 지금은 참 많이도 변했다.
※ 조흥은행은 과거 한성은행이라는 이름으로 1897년 출범한 후 생겨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상업은행이고 한일은행은 1932년 조선신탁주식회사로 설립된 후 발족된 시중은행이다.
금융서비스의 눈부신 진화
은행이나 빌딩 곳곳에 설치된 ATM(Automatic Teller's Machine)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필수적' 기계가 되어버렸다. 통장 없이 카드 하나만으로도 입출금부터 계좌이체, 납부까지 모두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신규 통장이나 증권, 펀드 개설이 아니라면 ATM을 찾는 경우가 더 많다. 더구나 인터넷이 생기면서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거래가 가능해졌으니 펀드 개설마저도 PC 앞에 앉아 편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해보면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제대로 실감한다.
우리나라에도 유선통신 인프라를 이용해 은행 업무를 처리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끝난 직후라고 하니 약 28년 전 이야기다. 은행 거래 내역이나 다른 나라의 환율, 기본 예금이나 정기적금에 대한 문의를 안내원이 연결에 연결을 거쳐 알려주는 '음성 서비스'가 본격화되었다.
그 후 인터넷망이 전 세계적으로 보급화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을 이용한 뱅킹 서비스도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대략 2000년 들어 대부분의 은행들이 인터넷 뱅킹 시스템을 구축했다. 인터넷은 더욱 발달했고 서비스 범위 또한 넓게 확장했다. 온라인 대출도 생겨났고 신용 카드 업무도 할 수 있으며 해외 송금도 편리하게 이용 가능해졌다.
인터넷 뱅킹은 PC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다. 이러한 인프라 안에서 생겨난 전자 상거래는 인터넷 쇼핑몰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소셜커머스가 각광을 받아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 뱅킹의 필수 요소는 바로 공인인증서다. 은행에 들러 상담원과 이야기를 하고 거래를 하는 행위가 온라인으로 가능해진 만큼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장치를 공인인증서가 대신해주게 되었다. 디지털 인감증명서라고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어디선가 그리고 또 누군가 공인인증서를 이용해 은행 거래를 하고 있을 것이다. USB에 담거나 PC에 저장해 두고 사용했던 이 인증서는 어느새 모바일로 들어왔다.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린 더욱 간편하고 심플한 방법을 이용해 다양한 거래를 하고 있다. 계좌이체는 물론이고 실시간으로 주식 매매도 할 수 있다.
모바일을 이용한 간편결제
몇 년 전만 해도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을 조합한 ‘핀테크(Fintech)’라는 키워드가 온 세상을 뒤흔든 바 있다. 이는 IT와 금융이 하나로 융합된 것으로 소비자와 산업계의 변화를 촉발시켰다. 사실 국내에서는 금융규제와 그에 따른 정책, 금융 보안이라는 이유로 핀테크에 대해 그렇게 적극적인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금융 산업 성장세와 IT강국이라는 면모를 고려해보면 성장성은 분명히 존재했다.
해외로 잠깐 눈을 돌려보면 핀테크에 대한 관심은 남다른 듯하다. 해외 핀테크에 투자된 금액만 따져도 3조 원 이상이라고 한다. 중국의 경우, 알리바바그룹의 알리페이는 4억 명 이상의 고객이 사용하는 온라인 결제 서비스다.
애플사의 애플 페이(Apple Pay)는 2014년 10월 미국에서 첫 선을 보인 NFC 방식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다. NFC는 근거리 무선 통신(Near Field Communication)을 일컫는다. 약 10cm 이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무선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기술로서 신용카드 결제 후 서명까지 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앴다. 하지만 각 상점이 별도의 결제 단말기를 마련해야 하는 단점과 보안이라는 측면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포털사인 카카오는 LG CNS와 M-Pay의 솔루션을 기반으로 간편 결제 '카카오페이'를 탄생시켰다. 카카오페이는 2015년 9월 결제건수만 1천만 건이었다. 반면 네이버 페이는 2015년 6월 출시되었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은행이 문을 열다
2015년 금융업계는 큰 변화를 예고했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은행 탄생이 예고된 것이다. 자본금 160억원으로 케이뱅크 준비 법인이 설립되어 KT와 우리은행 등 무려 21개 사가 주주로 약 2천5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인터넷은행은 일반 은행이 평일, 그것도 영업시간에만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을 뒤집은 서비스로 24시간, 365일 내내 사용자들을 위한 뱅킹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매우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영업점이 없으니 비용도 줄일 수 있고 일반 은행과는 다른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예금금리는 보다 높고 대출금리는 보다 낮은 형태다.
2015년 11월 금융위원회는 카카오와 KT, 인터파크가 경쟁했지만 인터파크가 주도했던 'I뱅크'는 탈락하고 카카오와 KT만 예비인가를 받는다고 발표했다. 카카오뱅크 컨소시엄은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주도했고 케이뱅크 컨소시엄은 KT가 주도했다. 예비인가 심사는 금융위원회 외부평가위원회의 각 분야별 전문가가 3일간 합숙하며 진행되었다. 외부 민간 위원은 금융, 법률, 소비자, 핀테크, 회계, IT보안, 리스크 관리 분야에 속한 사람들이다.
1992년 평화은행 이후 '은행 설립인가' 자체는 23년 만이다. 23년 만에 생기는 신규 은행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https://www.kbanknow.com/ib20/mnu/PBKMAN000000
케이뱅크는 지난해 1월 자본금 160억원으로 준비 법인으로 설립되어 올해 4월 3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케이뱅크는 영업 개시일 첫날 필자와 같은 고객 약 2만여 명을 확보했고 출범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20만 명 이상의 고객을 유치했다.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여 회원가입을 누르고 전화인증과 휴대폰 인증, 신분증 인증을 거치면 손쉽게 가입이 가능하다. 필자는 신분증 인증이 쉽게 되지 않아 약 3분을 소요했다. 회원가입 시간은 기기에 따라 다소 상이할 수 있지만 이를 감안해도 가입절차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케이뱅크는 5월 중순 기준으로 가입자는 30만 명 이상, 수신액은 총 3천8백억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올해 연간 '수신 목표액'이 5천억 원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다. 은행이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고객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수신이라 말하고 고객들의 돈을 통해서 수신액을 만드는데 이를 예금 수신액이라 한다. 이 금액은 대출을 통한 은행의 수익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은행의 활발하고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라면 매우 중요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케이뱅크는 출범과 동시에 기대 이상 그 능력을 발휘했다. 결국엔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까지 케이뱅크의 영향을 받아 대출금리를 낮추고 있어 '메기효과'라는 말까지 튀어나오기도 했다.
※ 정어리라는 생선은 식감이 매주 좋아서 가격 또한 비싸지만 먼 바다에서 항구까지 오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대부분 죽고 만다. 그런데 이들을 활어상태로 데리고 올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메기'다. 메기는 정어리의 천적으로 같은 곳에 모아두면 정어리들이 메기를 피해 달아나곤 한다. 살기 위해 열심히 움직여대니 활어 상태로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메기와 같은 강력한 경쟁자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두고 '메기효과'라 한다.
조만간 출범하게 될 카카오뱅크 역시 케이뱅크 출범 이후 지난 2개월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듯하다. 케이뱅크가 가진 장점을 더욱 고도화하고 허점이 보이는 부분들은 최대한 보완하여 더욱 강력한 서비스를 예고했다. 더구나 국민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4천만명의 사용자들을 등에 업고 출범하는 것이니 어쩌면 케이뱅크 이상의 활약을 보일 수도 있다. 카카오의 코스피 이전과 카카오뱅크 출범으로 인해 카카오 주가도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언론 역시 카카오뱅크에 '더욱 강한'이라는 표현을 붙여 기사화하기도 했다.
케이뱅크는 이제 2개월, 카카오뱅크는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두 곳 모두 대한민국에서 은행으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할 것이다. 분명히 시중은행보다 편리하고 간단한데다가 금리마저도 좋으니 매력적이긴 하지만 이들에게도 넘어야 할 산은 존재하고 있다.
케이뱅크의 경우, 예금이나 적금으로 마련한 4천억원 이상의 수신액이 존재하고 있어 이른바 '총알'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금리가 낮은 편이니 대출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고 여기에 주택담보대출 상품까지 출격 준비 상태라 어쩌면 창고가 텅텅 비어버리는 사태가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케이뱅크는 자원을 마련하기 위한 유상증자가 불가피하다. 유상증자는 출범 이전부터 어느정도 예상하고 계획했던 것이겠지만 그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케이뱅크는 대주주가 KT인데 비금융회사가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는 은산분리 원칙에 위배된다.
인터넷은행의 발목을 잡아왔던 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지배 제한. 바로 은산분리 규제 문제다. 은산분리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금융주력자 즉 KT나 카카오의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최대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인데 금융위원회 승인을 얻는다는 전제하에 최대 10%까지 보유 가능하지만 4% 이상은 의결권이 없다. 현재 KT의 케이뱅크 지분은 8%다. 은산분리 문제는 카카오뱅크에도 당연히 해당되는 문제다.
우리나라의 인터넷전문은행과 각 전문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해외 사례가 바로 '찰스 슈왑(Charles Schwab)'이다. 미국의 최대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자산만 해도 한화로 110조원에 달한다. '인터넷전문은행'임에도 지점이 존재하는데 온라인에 익숙지 않거나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취사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이들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더구나 그들이 도입한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 '로보 어드바이저(Robo-Advisor)'는 운용자산을 관리하고 추천종목과 포트폴리오에 대한 조언도 해주는 등 4차 산업 혁명에 발맞춘 AI 서비스도 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이용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데이터를 쌓아 다시 이용자에게 추천하는 방식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금융 서비스의 진화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용자들을 위해 더욱 보완되고 트렌드에 발맞춰왔다. 사람들은 누구나 싼 가격에 상품을 사고 보다 비싼 가격에 팔기를 원한다. 그래야 수익이 나기 때문. 당연한 이치고 불변의 진리다. 금융 투자나 예금금리 또한 그러하다. 대출금리는 보다 낮고 예금금리는 보다 높으면 이를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탄생한 인터넷전문은행,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숫자'는 사용자 입장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존재가 아닐까? 더구나 AI 서비스를 접목시킨 금융 투자는 어쩌면 비대면 서비스의 새로운 세계일 수도 있겠다. 다만 산업과 금융의 벽을 허무는 은산분리 완화부터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모두를 위한 올바른 개선책 등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지 존재한다. 그리고 '존폐'에 있어서 반드시 건드려야 할 정책인지도 충분히 시간을 갖고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난 오늘도 인터넷은행을 가본다. (끝)
※ 위키백과와 케이뱅크 홈페이지, 케이뱅크 애플리케이션, 찰스슈왑 홈페이지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 이 글의 내용은 일부 수정되어 디아이매거진 칼럼으로도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