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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l 03. 2017

생명과 생존의 경계선에서 피어난 우정과 사랑, <옥자>

#45 봉준호 감독의 <옥자>, 문을 열다!

엄청난 논란과 화제 속에 6월 29일 넷플릭스와 일부 영화관에서 <옥자>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약 6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넷플릭스 제작 영화로 스케일 또한 남다르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봉준호의 크리쳐(Creature) 슈퍼 돼지 옥자!

옥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봉준호의 전작 <괴물>은 말할 것도 없고, <쥬라기공원>을 통해 부활했던 공룡들이 생각난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크라이튼의 상상력 그리고 훌륭한 기술력으로 다듬어진 CG가 마치 진짜 같은 공룡들을 종합선물 패키지로 스크린에 뒤덮어 우리를 놀라게 해준 바 있다.

이번 작품 속에서 옥자의 모습은 상상 이상, 기대 이상의 그림을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과 비교해도 옥자는 매우 특별하다. 환경적 요인으로 돌연변이가 된 괴물과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옥자는 봉준호 감독에게 있어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입힌 유일무이한 캐릭터다. 특히나 옥자는 거대한 몸집과 달리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이수교차로를 지나다니며 그늘져있는 후미진 곳에 움츠려든 그 무엇인가를 상상했다는 봉준호 감독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옥자는 그 눈빛만으로도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옥자와 미자의 아이컨택(Eye contact)은 그런 의미에서 더 애잔하다.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옥자와 미자의 교감
생명과 생존, 자연과 자본. 그 사이에서 피어난 러브스토리

미란도를 연기한 틸다 스윈튼은 <설국열차>에 이어 악역 캐릭터를 맡았고 루시와 낸시로 1인 2역을 소화했다.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는 슈퍼 돼지를 친환경에서 유전자 조작 없이 탄생시킨 새로운 품종이라 말하며 향후 10년간 훌륭하게 키워낸 자에게 보상을 해준다고 했다.

미란도가 등장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언급된 그녀의 대사를 잘 들어보면 살아숨쉬는 생명체에 대한 가치관이 골프에 빠져있는 루시의 언니인 낸시와 비교되는 듯 했다. 하지만 '결국은 맛의 퀄리티'라는 그녀의 프리젠테이션 마지막 언급으로 그 가치관은 뒤집히고 감춰진 속내가 오롯이 드러난다. 조커를 연상시키는 미소와 함께.

탐욕에 찌든 미란도에게 있어 슈퍼돼지는 인류의 새로운 먹거리이자 식습관의 변화를 가져다준 매개체로서 개발된 미란도의 프로젝트다. 적게 먹고 적게 싸니 그만큼 자본도 적게 드는데도 불구하고 고품질의 먹거리를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것이 그녀의 큰 그림이다. 아주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표본이자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미란도가 꾸민 유전자 조작을 통한 식품 생산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와 동일선상에 있고 옥자와 같은 슈퍼돼지 또한 머지 않은 미래에서 만나게 될 '품종'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유전자 조작 즉 슈퍼돼지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친환경 뒤에 감춰진 '자본주의를 위한 생명파괴'라는 이면이다.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강원도 산골짜기 아주 작은 집, 미자(안서현)와 옥자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가족으로 살아간다.

이른바 '슈퍼 돼지 콘테스트'의 시작이 선포된 후 10년, 미자는 오늘도 옥자와 한가로운 여유를 즐긴다.

그 어느 곳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옥자는 어느 날 찾아온 미란도코퍼레이션의 죠니 박사(제이크 질렌할) 눈에 띄게 되고 미란도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슈퍼돼지가 되어 뉴욕으로 끌려간다. 초청이라는 명분이지만 실질적 결과는 살육이고 평범하지만 특별한 '먹거리'가 될 위기!

미자의 할아버지(변희봉)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돼지를 전리품이자 상품으로 받고 옥자를 떠나보낸다.

미자는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옥자를 찾기 위해 위험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미란도그룹로부터 전해진 황금돼지는 자본주의와 권력의 상징이고 할아버지에게는 생존을 위한 오브제(Objet)로서 역할한다. 유리로 된 돼지 저금통을 황금돼지 내던지듯 깨뜨려버리는 미자의 속마음에선 자본주의의 산물인 금덩어리도 산산조각 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옥자에 대한 그리움과 미란도와 할아버지를 향한 증오가 남달랐겠으나 결과적으로 이 황금돼지는 애써모은 동전보다 가치 있게 활용된다. 옥자의 극적인 구출과 감동적인 재회가 금 한덩어리로 이어진다는 것은 꽤 슬프고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진짜 금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 큰 금덩어리를 굳이 이빨로 깨무는 미란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봉준호 식의 블랙 코미디적 요소와 자본주의의 풍자도 함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극중 트럭기사로 등장했던 최우식의 "4대보험" 발언이나 제이의 케이를 향한 '통역은 신성하다'와 같은 대사들도 봉준호니까 가능한 블랙코미디다.

황금돼지를 이빨로 씹는 낸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미란도의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옥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자(안서현)

미자를 연기한 안서현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이 곳 저 곳을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보는 내가 숨이 찰 정도였다. 더구나 트럭에 매달리고 이리저리 구르는 등 이쯤 되면 액션 히로인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빨간색과 보랏빛의 츄리닝, 어깨에 둘러멘 힙색(Hipsack)은 미자만의 유니크한 코스튬이겠다.

비밀리에 활동하는 동물 보호 단체 ALF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더욱 박진감 있게 속도감을 높인다. ALF의 수장 격인 제이(폴 다노)와 그의 일행들 케이(스티븐 연), 레드(릴리 콜린스) 등은 옥자를 구출하고 미자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을 짠다.

ALF의 레드(릴리 콜린스)
회현 지하상가에서 벌어지는 격투신

미란도의 요원들과 ALF 일행은 거대한 트럭으로 옥자 쟁취를 위한 추격신을 벌인다. 차량 추격신과 더불어 회현 지하상가로 이어지는 격투신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존 덴버(John Denver)의 애니 송(Annie's Song)이 이 씬(Scene)과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Like the mountains in springtime
Like a walk in the rain
Like a strom in the dessert
Like a sleepy blue ocean
You fill up may senses
Come fill me again
Come let me love you
Let me give my life to you

John Denver의 <Annie's song> 中

다소 억지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봄날의 푸른 산, 고요한 푸른 바다는 옥자의 모습을 떠올리고 다시 사랑하게 해달라는 애원은 옥자에 대한 미자의 그리움인 듯하다. 실제로 존 덴버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이 곡을 썼다.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첫 번째 러브스토리"라고 말한 것처럼 미자와 옥자의 교감은 남다르다. "옥자야"라고 연신 불러대는 미자의 목소리는 옥자의 귓가에 울린다. 가끔 미자가 옥자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그 말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할 때가 있다. 마지막 엔딩신에서 역으로 옥자가 미자의 귀에 대고 이야기한다. 그들만이 공감하는 그들만의 대화, 관객은 끼어들 수 없는 무음의 속삭임 또한 그들의 사랑스러운 교감이고 귀여운 소통이다.

살아숨쉬는 생명체와 생존을 위한 먹거리로서 희생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욕구 사이에서 <옥자>는 옥자와 미자, 동물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을 이야기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할아버지와 밥을 먹으며 밖을 바라보는 마지막 엔딩신은 묘하게 뭉클하다.


※ 위 리뷰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 존 덴버의 <Annie's song>

https://youtu.be/RNOTF-znQyw

※ <옥자> 개봉을 앞두고 벌어졌던 논란에 대해 이야기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louis1st/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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