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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l 12. 2017

영화 <택시운전사>의 절대적인 힘, 송강호

#46. 1980년 광주, 그 곳에 대한 기억 그리고 아픔

1980년 5월의 따스한 어느 날.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택시기사 만섭(송강호)은 오늘도 조용필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영업에 나선다. 만섭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있는 딸의 모습을 보곤 한없이 안쓰러워한다. 귀여운 딸의 머리를 묶어주며 함박웃음 짓고 함께 소풍 가자고 말하는 평범한 '아빠'이자 집주인에게 밀린 사글세 10만원으로 박박 긁히는 지극히 보통의 '소시민'이다.

 

어느 날, 10만원으로 광주에 가겠다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에 대한 동료기사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아무도 몰래 그를 태워 광주로 떠나게 된다. 거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워하는 만섭의 표정과 달리 힌츠페터의 표정은 굳어있다. 만섭에게 광주는 그저 지방에 있는 도시이자 10만원을 벌 수 있는 기회일 뿐이었고 힌츠페터에게는 어느 사건의 한복판이자 최루탄과 피 비린내 뒤섞인 아비규환의 현장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계기였다.  

이 영화는 1980년 당시 군부 세력의 잔혹한 폭력과 무자비한 살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1937.07.06~2016.01.25)와 그를 광주까지 태우고 간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의 실화를 그린다.

영화 <택시운전사>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그 시대의 소시민이자 한 아이의 아빠가 바라본 광주

만섭에게 택시는 일종의 생명줄 같은 존재다.

차에 흠집이라도 날까 애지중지하길래 '얼마 되지 않은 신차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백미러가 부서져 너덜너덜했으니 그의 마음은 오죽하랴. 광주에 내려가게 된 만섭의 애마는 만섭의 마음도 몰라준 채 한순간에 퍼져버리고 만다. 알고 보니 그의 택시는 무려 60만 km를 오간, 말 그대로 폐차 직전의 고물차였다.

사글세는 나날이 밀리고 집주인의 구박을 받는다. 그런 와중에 얻어걸린 힌츠페터는 만섭에게 큰 건수였다. 광주로 내려갔다가 통금 시간 이전에 서울로 올라오기만 하면 10만원이 생기는 꼴이니 하루 종일 기름 버려가며 영업하지 않아도 손에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엄마 없이 아빠와 살고 있는 딸아이는 아빠와 함께 먹을 저녁상을 '제대로' 차릴 수 있을 만큼 야무지다. 성장의 속도와는 달리 작아진 신발은 다 구겨졌지만 굳이 불평하지 않을 만큼 아빠를 걱정하는 착한 딸이다. 아빠 만섭에게 있어 딸아이는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혈육. 딸을 생각하는 아빠 만섭의 부성애와 아빠를 생각하는 딸의 고운 마음씨는 택시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처럼 늘 한결같다.


"비싼 등록금 내고 데모질이나 하고 말이야!"

만섭은 라디오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을 귀로 듣고 데모하는 학생들을 눈으로 목격하지만 정작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에게 광주란 그저 '10만원'이라는 경제적 물질이었지만 분노와 슬픔을 자아낸 시대적 아픔이고 신군부정권의 잔혹함으로 인한 희생임을 깨닫게 된다.

광주로 내려간 만섭과 힌츠페터는 우연히 대학생 재식(류준열)과 택시기사 황태술(유해진)을 만나 광주의 상황을 듣게 되고 이들의 도움을 받아 험난하고 위험한 취재를 시작한다. 광주의 상황이 심각해지고 신변의 위험을 느끼자 서울로 올라가자는 만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힌츠페터는 취재에 열을 올린다.

최루탄이 곳곳에 퍼져있고 총알이 빗발치며 몽둥이가 민주화를 짓밟는 현실은 힌츠페터에게 있어 반드시 알려야 할 팩트였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큰 역할을 한 故 위르겐 힌츠페터 역은 토마스 크레취만이 연기했고 캐릭터 역시 만섭과 함께 투톱을 이룬다. 당시 사건을 취재하고 세상에 알린 힌츠페터는 독일 제1공영방송 소속의 기자였다. 일본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던 그는 한국의 참상을 반드시 알리려는 신념 하나만으로 위험천만한 광주행에 목숨을 건다. 당시 대한민국의 언론은 이미 통제가 된 상태였기에 입은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무능력 상태였다. '푸른 눈의 목격자'인 힌츠페터만이 광주의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광주 시민이 건네준 주먹밥을 먹으며 야구 경기 관람하듯 아무렇지 않게 쳐다만 보던 만섭의 눈빛은 힌츠페터와 재식이 현장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는 그 눈빛처럼 서서히 변해간다.

군인들의 몽둥이가 어느 노인의 어깨를 으스러뜨리고 거센 발길질이 여학생의 배에 꽂히는 무자비한 작태에 만섭 일행은 분노하고 관객 또한 그 감정에 자연스럽게 이입된다.  

출처 : 5.18 기념재단

이처럼 영화는 광주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제3자의 눈으로 당시의 광주와 그곳에서 정권과 대치한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이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플롯으로 삼았던 장선우 감독의 <꽃잎, 1996>,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 2007>, 강풀 원작의 <26년, 2012>과 같이 당시 정권을 향한 증오와 눈물 그리고 아픔을 자아내는 작품들이 여럿 존재하지만 <택시운전사>는 전작과 달리 다소 덤덤한 편이다. 눈물을 왈칵 쏟을 법도 한데 중간에 끊어버린 듯한 시퀀스 연결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다. 어쩌면 내심 같은 소재로 한 전작들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영화의 절대적인 힘, 송강호!

그럼에도 불구, 이 영화의 러닝타임 137분을 굳건히 지켜준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배우 송강호!

만섭 역의 송강호는 이 영화의 절대적인 힘이고 송강호가 연기한 만섭은 이 영화에 제대로 새겨진 캐릭터다. 장훈 감독의 전작 <영화는 영화다>에 소지섭이 있었고 <고지전>에는 이제훈이 있었던 것처럼 한 역할이 영화를 집어삼키는듯한 캐릭터 파워가 존재했다.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가 바로 그런 힘이다.

"송강호 선배랑 한 영화에 같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한 프레임에 들어간 게 라면 CF였죠"

배우 유해진 역시 훌륭한 배우인데 그 배우가 송강호를 두고 이런 코멘트를 했던 적이 있어 기억에 남는다. 그만큼 송강호는 <넘버 3> 이후 필모그래피를 화려하게 그려왔다. 보통 배우가 영화를 만나는 법인데 이번엔 영화가 배우를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이미 몇 번 사용된 영화적 플롯이었기 때문에 <택시운전사>의 크랭크 업 소식을 듣고 '묵직한 한 방'을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개봉일이 정해지기를 기다렸다. 만섭의 익살스러운 노래로 시작한 영화는 만섭의 눈물로 뜨겁게 달구고 만섭의 담담함으로 끝을 맺는다.

송강호 특유의 어설픈 노래로 관객들은 절로 웃음이 났고, 울먹거리며 한 구절 한 구절 어렵게 내뱉었던 노래는 더할 나위 없이 슬프게만 들렸다. 툭 치면 폭발할 것 같은 울음을 꾹 참고 전장으로 핸들을 돌리는 만섭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과 같다. 결국 광주 사태는 80년대를 살아간 광주 시민들의 아픔만이 아니라는 점. 우리 모두의 쓰라린 상처이기에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택시운전사>는 기대했던 큰 한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딱히 울라고 강요도 하지 않는다.

"아빠가...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아무것도 아닌 한마디인데 딸에 대한 그리움과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분노가 함축된 그 말이 그렇게 슬프게만 들렸다. 다양한 감정을 소화해낸 송강호의 연기는 관객의 눈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하나도 빗나가지 않는 그의 연기는 이 영화의 러닝타임을 굳건하게 지켜준 절대적인 힘이다.

'1980년의 광주를 두고 그때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과거의 사실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 때로부터 이어져온 슬픔을 어떻게 승화시킬 수 있을지 성숙한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송강호. 나 역시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하신 분들 그리고 만섭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 위 작성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해 '29만원' 전두환씨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광주 항쟁은 민주화 운동 아닌 사태"라고 하면서 "나는 광주 항쟁의 제물이고 십자가 또한 내가 지게 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박정희가 피살된 직후 전두환을 포함한 신군부 세력의 대한민국 장악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사상자만 1천명에 달하는 정치적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차별적 살상 행위는 없었다고 말했죠.

광주진입 작전 명령에는 작전 범위 내 사람을 살해해도 좋다는 발포명령과 함께 살상행위를 지시하는 의사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대법원에서 판시한 바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무기징역 이상의 형벌을 받아도 어색하지 않으나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죄를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듯 합니다. 영화를 보다 그의 얼굴이 오버랩 되니 더욱 분노가 치밀더군요. 우리는 이렇게 잊지 못하는데 정작 그들은 다 잊어버린듯 합니다.

※ 이번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는 배우분들 무대인사도 있었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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