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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l 07. 2017

우리 아파트 가장 작은 공간에 사는 그들

#4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우리 아파트에는 경비원 두 분이 격일로 교대 근무한다.

세 개동 밖에 되지 않으니 경비원 아저씨도 딱 두 분이다.

한 분은 백발에 모자를 쓰는 일이 거의 없고 무뚝뚝한 편, 한 분은 눈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자를 푹 눌러쓰시고 자주 콧노래를 흥얼거리신다.

백발의 경비원 아저씨는 직업병처럼 주민들에게 "택배 찾아가세요"라고 한다.

이 곳에 처음 이사를 오고 분리수거 하던 어느 날.


"몇호 살아요?"

"000호요. 여기 이사왔어요"

"아, 이사왔어요? ... 그럼 아니구나." 


몇 주 뒤, 지나가는 날 붙잡고는 다시.

"000호 택배 찾아가요!"

"네? 저 거기 아닌데요?!"

아저씨는 지난 번처럼 같은 말투와 같은 표정으로

"아, 아니구나."를 반복하셨다.

그냥 잘못 봤나보다 생각했는데 가만보니 습관처럼 보는 사람마다 똑같이 이야기하곤 하신다.

어떤 주민은 아저씨가 택배를 찾아가라고 하니 얼굴 한번 쳐다보지 않고 '우리꺼 아니에요'라며 휙 지나가기도 했다.


한번은 외국에 나가있어 일주일 간 집을 비웠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택배 찾아가세요!"

"아, 제가 외국에 있어서... 돌아가면 찾으러 갈께요."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사실 평일 낮시간동안 집에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우린 무심코 그리고 아주 자연스레 '경비실에 맡겨주세요'라고 한다. 경비실 문 앞과 안쪽에 가득 쌓인 택배 상자들이 눈에 자주 띈다.

택배 인수자의 이름은 언제나 그렇듯 경비원 아저씨.

택배 분실의 경우, 고스란히 책임을 떠안아야 하니 그게 우려스러운 모양이다. 어쩌면 그런 일로 주민들과 언성을 높였을 수도 있겠다.


"그런 일 하라고 관리비 주는거잖아!!"


남들에게는 그저 필요한 물건이 담긴 기분 좋을 택배지만 그 분들에게는 얼른 치우고 싶은 스트레스일지도. 문 앞에 쌓인 택배 상자의 무게만큼 그들 어깨에 쌓인 무형의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주는 무게 또한 꽤 무거워보인다.

아파트 주차의 경우는 스트레스가 조금 더 심해보이기 마련.

주차 공간은 늘 한정되어 있고 차는 늘어만간다. 주차 라인에 세워두지 않은 차 역시 눈에 띄게 많다. 경비원 아저씨들은 순찰을 돌고 때론 불법주차 스티커를 붙이는데 주민들의 목소리가 워낙 완강하니 불법주차 제재도 잘 이뤄지지 않는 편이다.

주차 시비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있지만 경비원과도 비일비재한 일.

아파트 경비원을 무시하고 경시하는 일들이 너무도 빈번해졌다.


"내가 당신한테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돼. 당신은 경비원이잖아! 내가 누군지 알아?!!"


불현듯 예전에 살던 아파트 1층, 1평 공간에 계시던 분이 생각났다.

'가족은 있는건가?', '혼자 사시나?'하고 의아해하던 어느 명절에,

"이거 떡 한접시, 아저씨 가져다드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경비원 아저씨께 찾아갔다. 고맙다며 인사하던 아저씨에게 저 멀리서부터 뛰어오던 아저씨 딸의 모습.

"그동안 잘 지냈냐"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서로 만난지 오랜 시간이 지난 모양이었다. 직업의 귀천을 넘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남편이며 가족인 사람.


최근엔 경비원 초소에 에어컨 설치를 반대한다는 어느 아파트 주민들의 목소리가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반대의 이유와 그 목소리는 너무도 황당했다.

"공기가 오염된다. 공기 오염으로 수명이 단축된다"

"0단지보다 큰 아파트에도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불만을 자신의 목소리라고 내면서 자신의 이름은 철저하게 '추진자'라는 가면 뒤에 숨었다.

한겨울, 늦은 밤. 경비실 옆을 지나갔다.

경비실 안에 벌건 불빛이 보이길래 무심코 봤더니 그 작은 공간에서 난로를 켜둔 채 경비원 아저씨가 잠을 자고 있었다.

낮 시간동안 신발을 신고 왔다갔다 하는 그 작은 공간 위로 펼쳐진 이불.

경비실은 그들에게 일도 하고 잠도 자는 다용도공간. 기껏해야 2~3평 남짓 되는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작은 공간이다.


오늘도 분리수거에 정신이 없는 경비원 아저씨에게 한마디 남긴다.


"더우신데 고생 많으시네요. 수고하세요!"


경비실 작은 라디오에서 울리는 카펜터스(Carpenters)의 <Yesterday Once More>가 귓가를 울린다. 울려펴지는 가사와 노래를 부르는 카렌의 맑은 목소리가 웬일인지 구슬프게 들린다.

오늘 경비원 아저씨는 그 노래를 흥얼흥얼 거리며 분리수거에 여념이 없다.

그 뒤에 그늘진 어두움이 오늘은 왠지 더욱 짙다. 그리고 쓸쓸하다.


그들의 평범하지만 고된 일상을 카펜터스의 노래가 계속 생각나던, '배려'라는 것이 필요한 오늘에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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