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영화 <남한산성>의 인조 그리고 결정권자의 역할
"진정한 리더란, 직함이 없어도 추종자가 있는 사람이거나 주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전문가들 역시 이렇게 언급한다.
"리더는 자신의 위치에 맞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숙한 판단력을 갖춰야 하고 무엇보다 성실해야 하며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과거 필자가 속해있던 부서의 부서장은 아침마다 '회의'라는 명분으로 '꾸짖는' 시간을 갖곤 했다. 어제 보고 했던 리포트에 대해 작성된 내용에 대한 언급이나 조언은 없고 몇 안 되는 오타와 글자 폰트를 중요시하며 고치라고 지시했다.
"제목은 폰트 사이즈 15로 하고 본문은 12로! 이게 얼마나 중요한데"
그렇게 부서원 한 사람씩 똑같은 지시와 쓸데없는 내용을 반복했고 아침마다 무려 1시간을 소요했다. 사실상 허비된 시간이었다. 오랜 경험으로 부서장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지만 사원들은 그의 객쩍은 지시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명령하달에 복종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결국 그 부서장은 좌천되었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
또 한 부서장은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아침에 느지막이 출근해 술 냄새를 풍기며 다짜고짜 화를 내곤 했다. 새로 부임해 아무것도 모르던 신임 부서장이었지만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자 사원들을 들들 볶기 바빴다. 업무와 관계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짜증을 냈다. 사원들은 점점 부서장을 멀리했다.
"야, 너네들은 밥 먹을 때 왜 나를 피하냐? 두고 봐! 아주 가만 안 둬!"
점심을 먹고 책상머리에 앉아 졸고 있는 무능력한 부서장의 존재는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과 유능함마저 짓밟았다. 부서원들 모두 그를 믿지 않았고 따르지도 않았다. 부서장과 부서원들 사이에 갈라진 틈은 점차 벌어졌다.
지휘관의 어리석은 전략과 흐리멍덩한 작전명령은 결국 패전(敗戰)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뛰어난 사격수와 용맹스러운 병사가 여럿 있다고 해도 말이다.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 역시 지휘관의 몫이다.
또한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부하직원 역시 그를 믿고 따르게 되지 않을까?
영화 <남한산성>은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씁쓸했던 지난날의 과거로 하여금,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교훈이 될 수 있도록 그려냈다.
찬란하게 빛나는 역사는 이미 많이 그려졌다. 몇 번을 되새기고 곱씹어도 기분 좋은 과거가 있는 반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페이지도 있는 법. <남한산성>이 바로 그 후자다.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가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와 홍타이지의 병자호란 이야기
영화 <남한산성>의 인조는 청나라의 침입으로 인해 추운 겨울 남한산성에 고립되었고 주화파와 척화파로 나뉜 신하들의 의견 대립 사이에서 갈등한다. 인조는 당시 결정권자였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살고자' 했다.
"난 살고자 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명나라 지원군과 함께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 이후 북방의 여진족은 후금(後金)을 건국했다.
사실상 휘청거렸던 명나라는 후금으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조선에 구원을 요청했다.
임진왜란 때 도움을 받긴 했지만 당시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쳐 황폐화된 국가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조선의 안보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정변이 일어났고 광해군은 폐위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인해 인조가 왕위에 올랐다.
사실 후금과 광해군의 조선은 나름 사이가 좋았지만 광해군 폐위 이후 중립외교 정책은 무너졌고 반금친명 정책으로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났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했고 형제 맹약이 체결되어 일단락되었다. 결국 조선은 후금을 형님의 나라로 불러야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후금은 더욱 강해졌다. 후금의 우두머리였던 2대 칸 홍타이지(皇太極)는 자신 스스로를 황제로 승격시켰고 후금의 이름 역시 청나라로 변경했다. 청은 조선을 조금씩 압박해왔다. 민가에 침입, 약탈도 일삼았다. 청은 조선에게 형님의 나라가 아닌 군신관계를 요구해왔다. 조선은 이렇다 할 답을 하지 않았다.
홍타이지는 점점 불만이 쌓여갔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인조를 왕으로 모시는 신하들은 주화파와 척화파, 둘로 나뉘었다. 청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는 주화파, 우리에겐 아직 명나라가 있으니 화친을 배척하자는 척화파.
인조는 척화파의 의견을 듣고 전쟁을 준비했다. 때는 1636년, 인조 14년. 이것이 병자호란의 서막이다.
인조는 청나라의 침입으로 인해 다시 한번 강화도로 피신하고자 했으나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신했다. 결국 청나라 군사는 남한산성 주변을 오갈 데 없이 포위했고 인조를 포함한 주화파와 척화파 모두 고립되기에 이르렀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청나라 군사들이 있음에도 주화파와 척화파는 매일 같이 극명하게 대립했다.
주화파나 척화파 모두 나라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은 같았지만 신념 자체가 달랐다. 그들의 의견과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인조는 특단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수많은 조선군은 청나라 군사에게 모두 당해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인조는 용포를 벗고 푸른색 옷을 입었다. 성 밖으로 나가 홍타이지가 원하는 대로 머리를 조아렸다.
삼전도의 굴욕은 현재 송파구 석촌호수 주변에 위치한 삼전도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조의 존재와 리더의 역할
영화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은 쉽게 부러지지 않을 만큼 유연함과 부드러움을 가졌고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은 절대 굽히지 않는 강인함과 카리스마를 가졌다. 둘의 모습은 굉장히 상반되지만 위기를 벗어나 나라를 구하기 위한 신념과 맺고 끊는 결단력 또한 확고했다. 단지 방법이 달랐을 뿐.
반면 인조(박해일)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청나라의 급습과 위협에 공포감을 느끼며 어느 것 하나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있었다.
영화 <남한산성>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고립되어버린 인조의 47일을 10개의 챕터로 나눠 구성했다. 영화의 러닝타임 139분이 표현한 47일의 쓰디쓴 역사를 눈으로 보고 나니 땅이 꺼질 듯 한숨이 나온다. 왜 굳이 이런 내용을 영화화했나라고 말하는 일부 관객들도 있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어둠의 역사일지도 모르겠다. 빛나는 역사가 전부는 아니다.
"아껴서 분배하되, 너무 아끼지는 말거라"
세상의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추운 겨울, 남한산성의 성곽을 지키고 있는 군사들은 배고픔에 굶주렸다. 그렇지 않아도 동상에 걸린 손과 발인데 허기가 진 탓에 창을 쥐고 버틸 힘조차 없으니 막강한 왜군들과 어찌 싸우랴. 식량은 점점 줄어들고 먹을 것이 없는 군사들에게 남아있는 음식을 아껴서 분배하라는 인조. 그런데 너무 아끼지 말라는 아리송한 말을 남긴다. 인조가 이처럼 확고하지 않은 지시를 내린 것은 결단력이 부족한 결정권자라는 측면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얼마나 주면 아끼지 않는 것인지..."
"내가 그것까지 일러주랴?!"
인조는 오히려 역정을 낸다.
한편 성곽에서 벌벌 떨며 보초를 서고 있는 칠복(이다윗)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불을 지피다가 발각된다.
모닥불을 피우게 되는 경우 적군들 눈에 띌 수 있어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칠복을 돌보는 날쇠(고수)가 한번 봐달라고 사정을 하곤, 이 추위를 버틸 기력이 없으니 쓰지 않는 가마니를 주면 몸을 덮거나 깔고 앉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전한다. 이를 들은 예조판서 김상헌이 인조에게 내용을 전하고 날쇠의 아이디어는 즉시 시행된다.
얼마 후 사람이 먹는 식량도 없는 상황 속에서 말들 역시 추위와 배고픔에 쓰러져간다. 인조는 다시 갈등한다. 추위를 이겨내라고 가마니를 줬건만, 이제는 말들이 죽어나가게 생겨 기동력마저 떨어지게 되는 위기 속에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 조선. 결국 인조는 가마니를 뺏고 백성들의 초가집 지붕을 모두 뜯어 말의 식량으로 배분하기에 이른다.
신하들이 그렇다고 하니 귀가 얇은 인조는 하석상대(下石上臺)를 택한다. 결정권자가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니 결국엔 신하들이 선택권을 부여한 셈이다. 결과가 어찌 됐든 눈 앞에 닥친 위기만을 모면하고자 했고 이는 결국 군사들의 사기를 주저앉히고 만다.
인조 주변에는 최명길과 김상헌과 같이 능력 있는 신하들도 있지만 세치혀로 무장한 영의정 김류(송영창)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각자의 신념을 강렬하게 토로하는 와중에도 김류는 인조의 마음을 흔들고 자신의 안위를 걱정한다. 청나라 군사와 유일하게 접촉하여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책략을 마련키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최명길을 역적이라 부르고 적과 내통한 자라 둘러대기 바쁘다.
"최명길의 목을 치시고 거리에 내걸어 왕의 권위를 보이소서!"
김류의 역할은 '아부'로 점철된 부하를 떠올리게 한다. 인조는 그의 야비하고 얄미운 꼼수에 몇 번이고 넘어가지만 궁지에 몰아넣기도 한다.
"전하, 최명길을 참수해달라는 상소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영상의 목을 치라는 상소도 있소!"
우린 직장이라는 곳을 다니면서 김류와 같은 기회주의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병자호란 당시의 위기 속에서 충분히 존재할만한 인물이라 굉장히 현실적이라 느꼈다. 영의정 김류는 인조반정의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영의정이라는 자리 역시 그 기회를 포착하고 얻어낸 것이다.
척화파 김상헌의 의견을 따라 전쟁을 준비하자는 영상은 이시백 장군(박희순)과 함께 위기에 몰린 군사를 이끌어 침투하려 한다. 적군의 포위를 뚫기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나마 허술한 곳을 공략하려 한다. 하지만 청의 홍이포와 수많은 군사들로 인해 우리 군사들이 궤멸하게 되는 아비규환 속에서 이시백은 후퇴를 외치고 영상은 병력을 충원해 더욱 전진하라고 한다. 다시 한번 대립되는 의견 충돌. 이시백의 단호함과 그간의 전투 경험에서 기인하는 전략은 맞아떨어졌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이처럼 칼 한번 빼들지 않고 소리만 쳐대는 지휘관의 우매함으로 인해 얼마 되지 않은 군사들을 사지에 몰아넣었다. 영상 김류는 명령 불복종과 군사들의 죽음을 이시백의 책임으로 전가한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
적진에서 목숨을 걸었던 이시백의 부하는 목이 날아갔고 이시백 또한 그 위기에 처했다.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잘잘못을 따지고 죽음으로서 벌을 내리는 꼴 역시 인조의 우유부단함과 우둔함에서 비롯된 결과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고 이로 하여금 반성과 변화의 계기로 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겠으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보거나 영화가 흘러가는 플롯을 보다 보면 답답함마저 느껴진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은 백성들의 중심에 서있는 날쇠와 칠복의 캐릭터를 통해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벼슬아치들을 믿지 않소"
"백성들이 죽어갈 때 대감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결정권자의 역할은 이토록 중요하다. 최명길, 김상헌, 이시백과 같이 뛰어나고 용맹한 신하들이 왕의 주변을 감싸고 있지만 신하들의 의견 대립과 빗발치는 상소로 인조는 늘 고민만 거듭한다.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이후 강화도로 몸을 피해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고 남한산성에 고립된 당시 역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벼랑 끝에 몰린 군사들을 저 아래로 떠민 것은 적들이 가진 창의 날카로움을 비롯해 지휘관의 행동과 명령이다.
조금 더 빨리 그리고 보다 더 예리한 결단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남한산성은 무너졌다. 누군가는 희생해야만 했고 누군가는 동료의 죽음에 한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결국 인조는 신하들을 데리고 홍타이지 앞에 섰다.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땅에 머리를 박고 절을 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인조의 머리 위로 모래가 덮인다. 깔끔한 용포를 입고 있던 영화의 첫 장면과 엔딩신이 사뭇 비교된다.
이 영화는 김훈 작가의 동명소설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감독은 원작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기 원했고 플롯을 유지해 그가 바라는대로 이뤄냈다. 특히나 명배우들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수많은 대사들이 날카롭게 꽂힌다. '말의 전쟁'이라고 할 만큼 최명길과 김상헌의 충돌은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더불어 배우들의 흔들림 없는 눈빛이 남한산성 주변을 감싸는 매서운 추위 그리고 몰아치는 바람과 조화를 이룬다.
민들레 꽃이 피는 봄을 그토록 원했던 나루(조아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상헌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작은 아이의 모습이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극적인 장면을 덧칠해 눈물을 자아낼 법도 했지만 감독은 과감하게 쳐냈다. 139분이 자칫 지루할 수 있고 소설을 원작으로 했기에 재미가 반감될 여지도 있었지만 절제된 연출과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가 생생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결정권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한 편의 드라마이지만 잊힐 수 없는 역사가 지금 이 시대의 현실과 맞닿으면서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마주한 '웰메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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