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n 잡은 루이스 Nov 21. 2017

수험생 여러분, 그저 응원하겠습니다!

#7. 나의 수험생 시절을 반추하며, 그대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거리에 불어대는 바람이 매섭게 느껴지고 움츠려 든 사람들이 눈에 띌 만큼 날이 추워졌다.

우거졌던 나뭇잎들 조차도 우수수 떨어져 앙상한 민낯을 드러낸다. 

막바지 가을이 버틸 힘을 잃어가고, 겨울의 문턱에 다가섰다. 

그리고 첫눈이 내렸다.


날이 추워진 건, 역시 매년 찾아온다는 '수능 한파'의 영향인가.

수능일이 다가올 때마다 잊힐 법한 수험생 시절의 파편들이 기억의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른다. 


온갖 스트레스에 얼룩져 예민해진 질풍노도의 청춘들이 고요하고 적막한 교실에서 수천 개의 글씨를 바라보며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문제들과 사투를 벌인다. 


그동안... 

몇 번이나 연습해보고, 

수백 번을 적어보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도록 외워봤던 문제들인데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건지. 

출처 : pixabay

나의 수험생 시절을 반추하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9층에는 7개의 가구가 살고 있다. 

오전 8시가 돼갈 무렵의 평범했던 출근길. 

부랴부랴 옷을 입고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종종 그 시간에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늘도 어김없었다. 


한 집은 중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늘 엄마의 배웅을 받는다. 

"오늘 학교 가서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밥 좀 많이 먹어! 잘 갔다 와"
"....."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의 애정 어린 목소리가 추운 날씨와 달리 매우 따뜻하게 느껴진다. 
정작 아들은 말이 없다. 늘 같은 모습으로 인사를 하는데 아들의 입에선 아무런 말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딱히 잔소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엄마가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들이 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어제도 봤고 오늘도 봤으며 내일도 볼 텐데 늘 똑같이 인사를 한다. 


다른 한 집은 초등학생 4~5학년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어린 동생을 안고 있는 엄마와 집 밖을 나선다. 
스쿨버스가 도착하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아이를 안고 있음에도 아이의 가방을 들고 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어제 틀린 한자 아직 기억하지? 자꾸 기억해내야 나중에 안 틀려. 오늘 틀리지 말고 잘 풀어"
"응"
"그리고 엄마가 말했잖아. 아침에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잘못하면 늦어."
"응"

눈을 비벼대며 하품을 하는 아이는 그저 해맑게 대답한다. 
내가 보기엔 잔소리처럼 들릴 법도 한데 이 아이 역시 잔소리라고 듣는 것 같진 않다. 
이 아이가 사춘기라는 영역에 진입하게 된다면 엄마의 이야기들을 잔소리라고 받아들이게 될까?
아직 어리고 약해 보이는 작은 아이인데 옷을 두둑이 챙겨 입었는지 보다 어제 틀린 문제에 대한 짧은 대화가 괜스레 안쓰럽기까지 했다.

 

출처 : pixabay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우리 엄마도 극성이라면 극성이었다. 맹모삼천지교라고,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주소를 옮기며 이사를 하기도 했다. 

"오늘 받아쓰기 잘했어?"

90점을 맞았다며 부끄럽게 내민 시험지. 9개의 빨간 동그라미보다 처절하게 그어진 단 한 문제를 노려보셨다. 

나름 반장도 해보고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내성적이었던 나를 이래저래 걱정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돈이 들더라도 나와 내 동생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 잘 사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너네 잘 돼라'는 명분 하에 이루어진 투자이자 이면에 숨겨진 극성의 단편적 모습이기도 했다. 

우리를 걱정하는 눈빛과 우리를 보살펴주시는 엄마의 뒷모습은 늘 한결같았다. 분명히 억척스럽고 모진 엄마였지만 난 그때만 해도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다고 느꼈다. 

출처 : pixabay

초등학교 시절에는 피아노, 태권도, 컴퓨터, 미술, 서예, 웅변학원까지 두루 섭렵했다. 대회에 나가 수상을 할 만큼 나름 열심히 했다. 내 노력보다 엄마의 열정이 8할은 되는 것 같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영어학원과 보습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값 비싼 과외도 시작했다. 

"너네 돈 많구나?"

겉보기엔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집은 작아졌다. 

부모님의 열정과 기대 그리고 금전적 투자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하는 말들이 귓등을 스치며 저 멀리 날아가버리기 일쑤였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와 싸우는 경쟁상대가 되어 짜증도 내고 화도 냈다. 감정의 변화가 심한 굴곡을 이루며 질풍노도의 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 전형성을 띄었다. 


알게 뭐야. 

될 대로 되라지.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종례 시간에 똑같은 말을 주입시켰다. 지겨웠다. 아이들도 그러한지 뒤에서 장난을 치며 떠든다. 

그런데 그 말씀이, 매우 중요했음을 성인이 된 지금 깨닫게 되었다.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정말' 후회한다. 선생님이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야. 명심해.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겪어봤을 법했으며 나를 포함한 누군가는 이 말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았을지 모르겠다. 

'별거 아닌데?'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때 좀 열심히 할걸'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뒤통수를 후려친다. 뼈저릴 만큼이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나에게 수학능력시험은 마지막 관문과도 같았다. 

담임선생님은 우리 어깨 위에 내려앉은 부담을 덜어내려 온갖 노력을 하셨다. 부모님 역시 지금까지와는 달리 잘 먹고 힘내라며 고봉밥과 고기반찬을 주셨다. 부담감이 또 다른 부담이 되어 다가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이미 늦었을지 모를 '다짐'을 하기도 했다. 

출처 : pixabay

수능 당일.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서둘러 집을 나섰다. 

교실에 앉으니 바깥공기와 달리 잠이 올만큼 따사롭고 고요했다. 

순식간에 찾아온 시험 시간. 언어영역을 시작으로 내 인생의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능이 시작됐다. 

출처 : pixabay

한 권의 책을 시험지에 쫙 펼쳐놓은 듯, 수많은 글자들이 이리저리 날뛰더니 수리영역 시간에는 내가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암호화된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칠판 위에 찰싹 달라붙은 시계는 평소보다 더 빨리 돌아가고 어느새 노을이 만들어낸 붉은빛이 시험지 위를 뒤덮었다. 


'답이 있긴 한 건가?'

답은 늘 그 안에 있다고 하지만 마치 또 다른 세상 어딘가에 숨겨놓은 것 같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온몸이 굳어갈 정도로 찌뿌둥했다. 

'이대로 굳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속도 좋지 않았다. 어제 먹은 게 잘못됐나? 구역질이 나는 것 같았다. 

고3 그리고 시험의 부담감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응어리가 되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헛구역질이 조용한 교실의 메마른 적막함을 단숨에 갈랐다. 그러자 오랜 시간 참아냈던 다른 이들의 기침 소리가 묘하게 화음을 이루었다. 

수험생 시절 나를 괴롭혔던 비염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코가 아니라 몸속 깊이 그 어디선가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괜찮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힘내!"

교실을 돌며 감독을 하시는 선생님이 등을 두드렸다.

내 몸은 이 차가운 바닥에 24시간 이상 붙어있는 느낌인데 이제야 해가 저문다. 

뉘엿뉘엿, 다음 날을 준비하려는 태양빛이 저 멀리 흩어져가며 손에 쥔 펜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그만큼 내 한숨도 길게 뻗는다.


모든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는 마지막 종이 울렸다. 


12년. 초중고를 보낸 시간들의 평가가 이렇게 하루 만에, 아니 단 몇 시간 만에 끝이 나버렸다. 

허무했다. 괜스레 야속하기도 했다.   

집에 오자마자 피곤하다는 이유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한 달 뒤 성적표를 받았다. 남녀공학이긴 했지만 남자아이들이 득실거리는 우리 교실에서 우는 아이는 없었다. 단, 표정이 좋지 않거나 마냥 떠드는 아이들만 있을 뿐. 


결과적으로 난, 그간 치렀던 모의고사 점수보다 살짝 좋은 점수를 받았다. 

다행이라고 여겼다.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했다. 

수능의 부담을 털어내고 나니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끝인 줄 알았던 시험이었는데 마지막엔 최선을 다하지 못해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몇 명의 아이들은 그 자리를 유지하거나 나를 앞질렀다. 


졸업을 앞두고 나와 친구들은 대학에 원서를 내기 위해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누군가는 대학을 포기해야 했고 누군가는 재수학원에 등록을 했으며 누군가는 아버지를 따라 일을 하겠다며 나서기도 했다. 

난 대학 세 곳에 원서를 썼다.

다행히 한 대학에 합격했고 그렇게 새내기가 되었다.  

출처 : pixabay

여러분, 응원하겠습니다!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에서 30분으로 넘어갈 시점에 사무실 곳곳에서 휴대폰 경보음이 울렸다.

재난문자 수신으로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포항 지역의 지진 발생으로 인한 여진에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외갓집이 포항인데 문제없으시겠지?"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마치 바로 아래층에서 지하철이라도 지나가는 듯 수 초간 건물이 흔들렸다. 사람들은 그 흔들림에 웅성웅성거렸다.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의 여파가 이렇게 서울까지 타고 올라왔다.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회사 건물의 진동으로 포항 현지의 진도가 얼마나 강한지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다행히 외갓집은 큰 문제가 없으시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16일은 수능일이 아닌가. 

1999년생 학생들을 포함한 많은 응시생들이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지진은 수많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고 수험생 당사자와 그들의 부모님들 역시 당황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례적으로 수능일이 연기되었다. 무려 24년간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에 치러졌던 시험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2017년 11월 23일로 수능일은 다시 정해졌다. 


고3 수험생이 되자마자 컨디션과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극도로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진 신경과 마음을 다스려왔건만, '자연재해의 급습'이라니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진은 재난으로 이어졌고 여진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물질적인 피해를 입고 정신적 고통마저 입은 당사자들은 포항의 이재민들이 아닐까? 더구나 책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로 '피난' 중인 수험생들의 스트레스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 같다.


포항의 재난을 생각하면 수능일 연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이로 인해 전국의 수험생이 혼란에 빠졌다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일부 언론사의 기사는 다소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갑론을박과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언론사의 목소리는 수험생들에게 더욱 비수를 던지는 꼴이 되었다. 

극히 일부 사람들의 비난과 책망이 있기도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확보되었으니 수능일을 대비하면서 성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비법 전수하듯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어떤 학원은 수능일이 연기된 것을 기회삼아 점수를 올릴 수 있는 반전의 기회가 될 것처럼 호소해 때 아닌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언론도 학원도 그들의 부담을 덜어내 주려 노력하는 곳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로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민낯이 곳곳에서 드러나니 씁쓸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올바른 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늘 선진국과 비교하며 우리나라는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고 말한다. 사회적인 변화가 없으면 비판만 끊이지 않을 뿐이다. 


최근 블라인드 채용도 꽤 늘어난 편이고 대학을 포함한 스펙 대신 취준생의 능력을 보는 케이스도 많아졌다. 명문대라는 네임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올바른지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정말 먼 이야기겠지만, 지금 이 세대가 그 다음 세대를 위해 바꿔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 

수험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한 문제라도 더 풀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페이스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건강에 더욱 유의할 수 있도록 감싸주고 보살펴줘야 할 때가 아닐까.  


※ 그저, 응원하겠습니다. 진심으로! 힘내세요!!  

P.S. 딩고의 동영상을 하나 공유해봅니다.

https://youtu.be/9npfWzdiRm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