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팀추월 경기 그리고 김보름 선수 인터뷰에 대한 단상
* SBS에서 내보낸 노선영 선수 단독 인터뷰는 하단에 붙입니다.
야구(Baseball)라는 스포츠는 9명의 선수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고 포수가 홈에서 투수의 공을 받는다. 공격에 나선 타자는 상대편 투수의 공을 쳐내야 한다. 배트를 맞고 뻗어나간 공은 내야수나 외야수가 받아 수비를 펼친다. 강속구를 뿜어내고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수십억 대 연봉의 천재 투수가 있다고 해도 팀원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 지게 마련이다. 반면 안타왕이나 홈런왕이 막강한 공격력을 보여준다고 해도 수비진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면 역시 패배할 수밖에 없다. 간혹 야구에서 벤치 클리어링(Bench-clearing brawl)을 볼 수 있는데, '패싸움'으로 변질될 여지도 있지만 역으로 보면 '싸움을 말리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 벤치 클리어링의 기본적인 또 다른 의미는 우리의 팀원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팀워크를 보여주는 행동이기도 하다.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세기의 레전드 베이브 루스(Babe Ruth)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 하나가 된 팀플레이가 성공과 실패(승리와 패배)를 가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팀플레이가 부재하다면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구단으로 전락하고 만다.(The way a team plays as a whole determines it's success. You may have the greatest bunch of individual stars in the world, but if they don't play together, the club won't be worth of a dime)"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과 팀워크의 중요성
설 연휴가 끝난 이후인데도 거리가 왠지 한산한 느낌이다. 점심때가 되니 사무실 밖으로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동료와 함께 각자 정해진 장소로 이동하는 사람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 시간쯤 되면 쉽게 볼 수 있는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다.
식당에 앉아 주말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풀기도 하고 '조직'에서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이 이야기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 그들이나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이다. 어려울 땐 서로 도와주고 공통의 목표를 위해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우린 모두 초등학교 시절부터 '조직(단체생활)'에 몸을 담기 시작한다. 담임선생님이 감독이라면 반장이 반을 이끄는 주장의 역할을 하고 반의 모든 아이들은 팀을 이루는 구성원이 된다. 학교나 군대, 직장생활에 이르기까지 우린 끊임없이 '단체 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학습하고 깨닫는다.
좋은 대학을 나와 똑똑하고 유능한 한 사람이 조직 전체를 이끌 순 없다. 조직을 구성하는 팀원들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그 조직 역시 무너지기 마련이다. 불통(不通)은 전체를 깨뜨린다. 그런 의미에서 팀워크와 상호 커뮤니케이션은 조직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단체종목, 팀추월(Team Pursuit)
동계올림픽은 다양한 종목에서 전 세계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친다. 4년간 피땀 흘리며 준비했던 노력의 결과가 감동과 좌절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하고 기분 좋은 함박웃음을 짓게도 한다. 개인이 출전하는 종목이 있는가 하면 팀을 이뤄 단체로 출전하는 종목들도 있다. 설상과 빙상에서 열리는 10개 이상의 다양한 종목 중에서 빙상에서 열리는 스피드 스케이팅은 14개나 되는 세부 종목이 있어 가져갈 수 있는 금메달 역시 14개다. 500m의 단거리부터 남자는 1만 미터, 여자는 5천 미터까지 뛰기도 한다. 이 중 팀을 이뤄 출전하는 종목이 바로 '팀 추월(Team Pursuit)' 경기다. 3명으로 구성된 구성원이 상대팀의 꼬리를 잡듯 같은 방향으로 400m 트랙을 돈다. 여자팀의 경우는 6바퀴를 도는데 팀원 중 가장 늦게 들어온 마지막 선수의 기록이 승부를 가른다. 한 명이라도 상대팀을 추월하면 기록에 관계없이 승리한다.
상대팀을 추월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마지막 선수의 기록으로 메달의 색이 바뀌게 마련이다. 팀을 이루는 3명의 선수는 선두에 달리는 선수와 중간에서 달리는 선수, 후미에서 달리는 선수 모두가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인다. 기본적으로 체력과 스피드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팀워크가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종목이라 하겠다.
노선영 선수의 우여곡절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청의 김보름과 한국체대의 박지우, 콜핑팀의 노선영이 팀을 이뤘다. 사실 노선영 선수는 3명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었다. 하지만 나이보다 그녀를 가로막았던 예상치 못한 벽은 대한 빙상경기연맹의 행정 착오로 인한 출전권 박탈!
빙상연맹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팀추월 경기에 집중하도록 했으나 '국제 빙상연맹(ISU, International Skating Union)이 개인종목 출전 자격이 있는 선수들에게만 팀 추월에 출전할 수 있다는 규정을 잘못 알려줬다'면서 노선영 선수의 출전 기회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을 지켜보기만 했다. 노선영 선수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결과적으로 빙상연맹은 국제규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고 국제 빙상연맹의 책임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노선영 선수의 마지막 출전 기회와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 故 노진규 선수와의 약속이 멀어져 가던 찰나, 러시아 선수가 도핑 문제로 출전이 어려워지면서 예비순위에 있던 노선영 선수가 다시 기회를 찾게 됐다(故 노진규 선수는 한국체대 출신으로 쇼트트랙 선수로 활약하다가 골육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중한 출전 기회를 얻은 노선영 선수에게 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3명이 조화를 이뤄 거의 동등한 실력을 뽐내야 하는 종목이라 쉽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팀워크가 없는 팀 경기, 팀추월
2018년 2월 19일. 평창올림픽 10일째.
우리나라 여자 팀추월 대표팀이 준준결승에 1조로 출전했다. 네덜란드와 맞붙은 대표팀은 출발 신호와 함께 거침없이 출발했다. 처음 200미터는 0.78초 네덜란드팀에 뒤졌다. 이후 1초에서 2초로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다. 레이스가 계속될수록 3명의 협동심은 매우 중요해졌다. 2바퀴를 남겨두고 4초 이상 벌어졌는데 이때부터 노선영 선수는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힘이 빠진 노선영 선수는 앞에 달리는 우리 선수들을 바라보며 쫓아가기 바빴는데 김보름과 박지우 선수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앞서 가기만 했다.
http://tv.kakao.com/v/382767280
MBC 방송에서는 '협동심이 필요하다'고 했고, SBS 방송에서는 '뒤쳐진 선수가 없도록 서로 챙겨줬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일침 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노선영 선수만 멀리 떨어진 채 경기가 운영되어 최종 결과 3분 03초 76으로 골인했다. 반면 네덜란드는 스피드 스케이팅 강국답게 2분 55초 61의 올림픽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경기를 마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노선영 선수에게 다가온 사람은 함께 경기한 동료 선수가 아니라 밥 데용(Bob Johannes Carolus de Jong) 코치 한 사람뿐이었다.
박지우 선수에 비하면 9살이나 많았고 훈련할 시간도 많지 않았던 노선영 선수에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노선영 선수에게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낼 수도 없고 책임을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정말 문제가 되었던 건 뒤쳐진 선수를 챙겨주지 못한 다른 선수들의 레이스와 3명이 이루는 팀워크의 부재, 마지막으로 '우리보다 늦은 노선영 선수에 대한 비아냥' 섞인 그들의 인터뷰였다.
http://tv.kakao.com/v/382769339
인터뷰에 노선영 선수는 없었다.
팀 경기에 팀워크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 밀고 당겨주는 팀플레이임에도, 그리고 노선영 선수가 맨 뒤로 처졌음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은 이를 무시했고 결과에 대해 노선영 선수를 우회적으로 저격했다. 경기 중은 물론이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팀워크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김보름 인터뷰가 전부는 아니다. 박지우 선수 역시 '김보름 선수가 팀추월에 있어 기둥 역할을 했고 노선영 선수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믿고 레이스 한 것'처럼 말했다. 팀추월 경기에 있어 마지막 선수의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명확하게 알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기록을 챙겼다는 말이 너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기를 지켜보던 한 사람으로서 허망함마저 느낀다.
백철기 감독과 김보름 선수가 20일 오후 5시 30분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본래 노선영 선수도 나오기로 했으나 불참했다. 김보름 선수는 노선영 선수가 뒤쳐졌다는걸 몰랐다고 했고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하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백철기 감독은 관중들의 응원과 함성으로 인해 선수들의 소통이 어려웠던 것 같다고 했다. 또한 노선영 선수 소외 논란에 대해서는 추후에 답변하겠다며 답을 하지 않았다. 김보름 선수와 박지우 선수의 대표팀 자격 박탈과 국제대회 출전 정지에 관한 국민청원이 19일 올라가 20일 현재 30만명을 돌파해 최단기간 청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감독에 따르면, 박지우 선수는 벌벌 떨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박지우 선수는 1998년생으로 이제 겨우 20살이고 김보름 선수는 93년생, 노선영 선수는 89년생, 모두 한국체대 출신이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불만은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한 사람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케이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 픽션인 줄 알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팀워크는 고사하고 동료이자 선배이자 같은 팀원을 향한 저격은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선수 개개인들의 역할과 인성과 자질에 대한 부족이 전파를 타고 모두에게 오롯이 노출되었다.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의 안현수(빅토르 안) 선수가 말한 빙상연맹의 파벌싸움이나 그들의 구태의연한 대응과 체계가 이러한 결과를 낳게 한 근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노선영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두 선수들의 인성과 인터뷰 논란은 기자회견을 했음에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더 이상의 피해자와 폐해가 없기 위해서라도 뿌리는 뽑아야 한다. 이번 계기를 통해 꼭 변화하길 바란다. 그들도 그리고 그들 뒤의 그들도!
※ 혹자는 김보름 선수를 방어하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하기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실제 상황이 어땠는지, 그들의 관계가 어떠한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온라인 상에서 공격만 하는 또 다른 가해자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성(人性)이란, '사람의 성품'을 의미하는데 좁은 의미에서는 도덕성이나 사회성, 넓은 의미로 확장하면 인간의 됨됨이를 뜻합니다. 팀을 이루고 경기를 하는데 내가 다른 팀원들보다 월등하다고 해서 그 팀이 100% 승리할 수 있을까요? 뛰어난 실력의 누군가가 팀 승리를 이끌고 '쟤네들은 나보다 못해서 그냥 제가 다 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말 한 마디가 천냥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팀워크가 반드시 스포츠 경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대다수가 '팀워크'의 진정한 의미를 잘 알고 있으리라고 봅니다. 스포츠 경기는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실력을 따지는 자리입니다만 '꼴찌'를 했다고 해서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잘했다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금메달을 목에 걸고 나라의 순위가 올라가면 뭐합니까? 금빛으로 찬란한 그 웃음 뒤에 가려진 이면과 인성이 '금빛'이 아닌 것을.
※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대한민국 선수는 물론이고 경기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을 응원합니다!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논란거리가 아니라 웃음 지을 수 있는 올림픽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 노선영 선수의 SBS 단독인터뷰 기사가 올라와 하단에 붙입니다. 결국 백철기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던 코멘트는 사실이 아니었네요. 피해자를 만든 말 한마디의 또 다른 ‘가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계속 되고 있었는다는 꼴이 되었습니다. ㅠ
http://v.sports.media.daum.net/v/20180220214810955?f=m&rcmd=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