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정우성과 곽도원의 찰떡궁합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 <강철비>
※ 다소 정리가 안된 글이었는데 공유가 되었네요. 아래 내용 중에는 스포일러가 있음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유의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실로 오래간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연말에 몰린 업무로 인해 극장에 갈 시간도 없었거니와 틈만 나면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의 글을 다듬고 수정하고 작성해야 했기에 곧 개봉한다는 영화들의 예고편으로 맛보기만 했던 지난 날들.
모처럼 영화관으로 달려가 북새통을 경험했고 무대인사를 통해 '정우성'이라는 배우의 놀라운 비율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몇 차례 무대인사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배우들이 올 줄은 몰랐다.
배우 곽도원이 영화 <강철비>를 두고 '<곡성>의 충격, 그 이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게 떠오른다. <변호인>을 연출했던 양우석 감독의 차기작이기도 하고 정우성과 곽도원을 포함해 훌륭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고 하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우석 감독은 자신의 첫 번째 연출작인 영화 <변호인>으로 천만 감독 리스트에 올랐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그린 영화로 무려 1천137만 명이라는 누적관객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뒤이어 (씁쓸하게도) 양우석 감독의 이름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도 오르게 되었다.
양우석 감독은
MBC와 SK 계열사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 업무를 하다가 취미로 웹툰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의 2011년 작품 '스틸레인'이라는 웹툰이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이 되었다. <강철비>의 영어 제목 역시 스틸레인(Steel Rain)이다.
약 160억 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만큼 컴퓨터 그래픽과 화려한 액션, 굉음을 내며 구름을 뚫고 지나가는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블록버스터'가 갖출만한 자격을 거의 대부분 완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의료, 국방 등 해박한 지식을 겸유한 감독의 연출이 명배우 정우성-곽도원 콤비와 화려한 조화를 이뤘다. 양 감독이 10년간 준비했다는 영화 <강철비>,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사한 메시지를 다섯가지로 요약해보고자 한다.
※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될 수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영화에 대한 리뷰는 지극히 개인적 의견입니다.
영화 <강철비>가 던지는 이야기, 그 몇 가지에 대한 짧은 글
1. 도발적인 플롯
영화 <강철비>의 타이틀이 올라올 때까지 불과 몇 분 되지 않는 오프닝 시퀀스만으로도 충분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북에서 벌어지는 쿠데타 그리고 핵무기를 둘러싼 첨예하고 날카로운 대립관계가 이 영화의 스케일을 가늠케 했다.
올해 1월 故 김주혁이 출연했던 <공조>나 박훈정 감독의 신작 <브이아이피> 같은 영화에서도 북한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이처럼 남북의 휴전과 대립 관계를 직접적으로 건드리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영화 <강철비>는 분단의 현실과 '휴전'이라는 단어에 담긴 메시지를 관객들을 향해 던진다. 매우 도발적이면서도 신선하다.
북의 쿠데타로 인해 북한의 1호(위원장이나 장군으로 부르긴 하지만 그의 이름도, 그의 얼굴도 등장하진 않는다. 따라서 영화에서 언급한 대로 북한 1호라고 칭한다)가 치명상을 입게 된다.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뒹구는 아비규환 속에서 엄철우는 북한 1호와 휴전선을 넘어 남쪽으로 피신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난 줄 알았지만 북에서 급파된 다른 요원들을 피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엄철우는 리태한 정찰총국장(김갑수)의 지시를 받고 북한 1호를 피신시키다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와 마주하게 된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북핵 도발인만큼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국과 미국 간의 교묘하면서도 영악한 술책들이 난무한다.
이 영화는 남과 북의 '휴화산(休火山)' 상태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기로 몰고 가며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듯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북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고 북한 1호는 남한으로 피신한 상태. 핵 도발로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북한과 핵 미사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국과 미국의 날카로운 외교 분쟁은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영화란 무릇 픽션 그 자체이고 각본이 짜인 그대로 구성되기 때문에 플롯에서 느낄 수 있는 판타지는 현실과 구분되어야 한다. 혹자들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다만 그동안 등장했던 영화들의 시나리오와 비교했을 때 도발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2. <정우성 X 곽도원>의 돋보이는 케미스트리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이끄는 투톱의 이름이 모두 철우다.
정우성이 연기한 철우와 곽도원이 연기한 철우의 캐릭터는 외형이나 신분 모두 다르지만 서로 조화를 이룬다. 영화 <공조>에서 현빈과 유해진이 보여주었던 케미 이상을 보여주니 관객인 나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두 사람을 포함해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만한 곳이 없다. 흡인력이 있는 배우가 있다는 것은 플롯이 자칫 흔들려도 영화의 중심을 바로 세우곤 하는데 그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두 철우의 대화 속에서 무슨 한자를 쓰냐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통해 강철비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들의 운명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기도 한다. 엄철우는 벗 우(友)를 쓰고 곽철우는 집 우(宇)를 쓴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만나자고 말하는 곽철우는 벗으로서 엄철우를 대하고, 엄철우는 다시 가족과 합치라며 집(가정)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하이라이트 중 두 철우가 마주 앉아 국수를 먹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남과 북이 갈라져있듯 엄철우와 곽철우 역시 마주하고 있는 상태다. 수갑을 차고 있는 엄철우는 국수를 신나게 먹고 있는 곽철우를 머뭇거리며 바라보다 한숨에 면을 들이켠다.
어느새 엄철우 옆으로 다가가 함께 국수를 먹고는 불편해 보였는지 수갑을 풀어주고 곽철우 자신의 손목에 하나를 건다.
"너 믿고 풀어주는 거야. 딴생각하지 마"
엄철우의 두 손을 묶어두었던 수갑이 곽철우와 하나로 이어져 연결되는 장면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주된 장면을 이끌고 가는 두 남자의 케미는 버디 무비로서도 손색이 없다.
한편, 임기가 막바지에 이른 이의성(김의성) 현 대통령과 김경영(이경영) 대통령 당선자의 첨예한 대립 구도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서로의 의견이 극도로 상반되고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 또한 상이하니, (굳이 북한이 아니더라도)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불꽃 대결이 더욱 눈에 띈다.
3. 분단국가의 현실
이 영화는 엄철우로부터 오프닝 시퀀스를 시작한다. 이후 등장하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는 이혼남이다. 아마도 현 정권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일만 했던 모양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스마트폰만 바라본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에게 햄버거 하나 먹이지 않는 엄마 수현(김지호)과 달리 아무렇지 않게 패스트푸드를 먹인다. 햄버거를 먹던 곽철우의 아들은 엄마랑 다시 합쳐서 같이 살면 안 되냐고 한다.
곽철우의 캐릭터를 보고는 굳이 '이혼남'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늘 이런 캐릭터들이 이혼남이거나 이혼녀였기에 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로맨스를 연출하기에 적절한 편이었다. 어색하지 않은 설정이긴 하지만 국가의 분단과 한 가정의 별거 그리고 이혼이 묘하게 맞닿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지점에서 곽철우가 엄철우에게 이런 말을 한다.
"분단국가의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인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 때문에 더 고통받는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우린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졌다. 이데올로기의 싸움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생이별을 해야 했다. 우리를 가로막은 휴전선도 벌써 70년을 향해가고 있다.
분단이 되어야만 했던 한반도는 분단으로 인한 가족과 고향과의 이별로 고통을 받고 무엇보다 전쟁을 일으키고 분단으로 이어지도록 했던 누군가의 정치적 이득 때문에 더욱 고통받아야 했다.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국민들을 생각하지 않는 어느 누군가의 이데올로기가 수많은 생명을 휘어잡고 흔들어놓았다.
이혼이란 남녀의 성격 탓을 비롯,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한 나머지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결정해야 할 마지막 종착역이자 중차대한 문제라고 하겠다. 특히 곽철우의 딸과 아들처럼 아이들이 있는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아빠 곽철우와 엄마 수현의 이혼을 한 국가의 분단과 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남남이 되어버린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영화의 엔딩신에서는 다시금 화해 모드로 분위기가 풀린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 속에서 벌어졌던 위기가 봄이 안겨주는 따스함과 동시에 해소가 되는 느낌이지만 북한은 여전히 핵을 보유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을 넘겨받아 온전히 방어를 위한 핵을 보유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북한 1호를 구급차에 태워 북쪽으로 보내면서 북한 요원들은 북쪽으로 대한민국의 통일부장관(장현성) 등 남측 요원들은 남쪽으로 향해간다. 화해 모드라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등을 돌린 상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우린 여전히 휴전 중이다.
4. 배우 조우진의 놀라운 발견
정우성과 곽도원이 영화를 끌고 가는 중심축에 있다면 김의성, 장현성 등 조연배우들은 그 중심축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주연급의 조연배우들이다. 보통 '감초 역할'이라고 하지만 이 영화 속에 등장한 배우들은 조연 이상의 몫을 해낸다.
이 영화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배우가 바로 조우진이다.
배우 조우진의 날선 연기는 이미 <내부자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등장한 분량에 비하면 몇 안 되는 시퀀스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인 셈이다. <내부자들> 이후 다소 물렁물렁한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친근한 배우로 거듭났었는데 <강철비>에서는 조상무를 뛰어넘는 전투형 캐릭터를 소화해 전례 없는 강력함을 선보였다. 영화 초반부부터 강렬하게 등장했다가 엄철우와 마주한 격투신에서는 소름 끼칠 정도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터미네이터>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5. 감독 양우석의 힘
사실 140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이처럼 다양한 이슈들을 담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플롯이다. 남과 북이 대치한 상황 속에서 민감할 수 있는 소재인 북한의 핵 미사일을 작은 수류탄 던지듯 던져버렸다.
과감했다.
더구나 주변국과 벌어지는 외교 문제 또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거울 보듯 했다. 첩보 스릴러는 물론이고 두 철우의 가족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지드래곤의 유명세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2집인 쿠데타(Coup D'etat)를 음악으로 사용한 것 역시 매우 영리했다. 북한에서도 인기가 많다며 언급되는 지드래곤의 이야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알콩달콩'한 이야기거리가 된다. 더구나 곽도원으로부터 기인하는 우스꽝스러운 코믹 요소 또한 날선 긴장감을 해소하기에도 충분히 적절했다. <변호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상업적 영화의 색깔은 확고한 편이다. 첩보와 액션을 모두 아우르는 블록버스터로서 2017년을 마감하는 대작이라 하겠다.
※ 위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될 수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영화에 대한 리뷰는 지극히 개인적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