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아픔과 분노가 저항을 만들고 나아가 혁명을 이루다!
※ 주의! 스포일러 있음.
데모를 하고 시위를 하는 행위들은 무언가에 대한 저항이다. 부당함과 억압에 분노하고 삼삼오오 연대하여 투쟁하는 행위는 나아가 (때론) 쟁취나 희망의 발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진압대와 시위대가 충돌하고 최루탄과 화염병이 서로 격돌하는 장면은 1980년대를 직접 목도했던 세대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숨통을 조이는 최루탄 가스를 가로지르며 응어리를 내던진다. 화염병 속에 가득 담긴 가슴속 분노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가 이내 바닥으로 내리 꽂히며 활활 타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80년대가 지나가고 지금의 우린 화염병 대신 촛불을 손에 들었다. 분노는 저항을 일으켰고 이내 혁명으로 이어졌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군사독재를 부활시키려는 신군부세력의 쿠데타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외친 핏빛 전쟁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시민들 그리고 계엄군마저도 목숨을 잃었지만 그 위에 존재하는 절대악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며 몇 년간 세력을 이어갔다.
1987년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끊임없이 묵살해오던 전두환이 자신의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호헌조치(護憲措置)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해 6월 전국적으로 민중항쟁이 일어났고 이 민주화운동은 약 20일간 이어졌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라고, 무겁게 짓누르는 억압과 폭력은 자연스레 분노를 일으켰고 우린 그 무게를 밀어내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끝없이 저항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영화 <1987>은 그 시대를 다시 곱씹는다. 장준환 감독이 연출한 '영화'이지만 한 편의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시대를 만든 절대악과 시대가 만든 분노와 저항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뤘던 영화들을 읊으라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이지만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직접적으로 건드린 영화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은 보도채널에 출연해 비밀리에 추진한 영화 프로젝트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실존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관한 이야기들로 인해 극비리에 제작했다고 하니 최근 있었던 촛불시위를 곱씹어보면 이 영화의 배경과 묘하게 겹친다.
영화는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박종철 군(여진구)이 고문을 받다 사망하는 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영화 초반부부터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이 '기승전결'의 전형성을 탈피해 본격적인 위기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캐스팅을 보며 그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 예상했다.
'광장에 나온 모든 시민들이 주인공'인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을 생각해보면 주연과 조연, 단역과 수많은 엑스트라의 경계선은 무의미했다. 결국 영화는 시대가 만든 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에 포커싱 했던 것이다. 감독의 의도와 연출은 그대로 적중했다.
보통 '권선징악'으로 점철된 영화는 시종일관 분노를 불러일으키다가 엔딩 시퀀스에서 사이다 같이 뻥 뚫리는 느낌을 선사해주곤 한다. 김윤석이 연기한 대공수사처 박 처장은 이 영화 속에서 절대악의 중심에 존재하는 기둥이다. 북에서 가족을 잃고 혈혈단신 홀로 남한으로 내려와 '빨갱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며 절대 권력자와 소통하고 상대방이 누구든 자신의 공권력 이상을 행사한다. 전두환의 최측근인 안기부장(문성근)이 박 처장의 뒤에서 배후가 되고 '각하'라는 말을 반복하며 사건의 은폐와 조작을 지시한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어이없는 경찰의 발표는 전두환 정권의 비도덕성과 잔인함에서 기인하는 사건 은폐의 서막이었고 영화의 플롯을 급박하게 돌리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던 공권력의 언론 발표는 기자는 물론 검사, 의사, 교도관, 대학생 등으로 퍼져나기에 충분했다. 거짓 뒤에 감춰진 진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두환은 신군부세력으로서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정권으로 대한민국을 장악했다.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끝내 무시당했고 호헌조치와 보도지침 등으로 더욱 분노를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시대가' 만든 절대악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대를' 만든 절대악이기도 하다. 이 영화 속에서 그의 모습은 사진 혹은 TV 화면 속에 잠시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모두 인지하고 있다. 박 처장의 '배후'이자 안기부장의 배후였던 독재정권의 잔악함은 우리를 더욱 저항하게 만들었다.
배우 김윤석은 박 처장을 연기하며 결코 단순함을 보이지 않았다. 악역이라 하면 그저 때리고 짓밟고 협박하고 겁박해야만 악역이 아님을 자신 스스로 보여주었다. 눈빛은 그 누구보다 싸늘했고 그 입에서 터져 나오는 북한 사투리와 흐트러짐 없는 차림새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더욱 음산하게 만들기도 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한 캐릭터의 시퀀스가 끝나면 다른 캐릭터로 넘어가 바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캐릭터 간 연결된 고리는 절대 끊어지지 않아 빈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서울지검 최 검사(하정우)는 이 영화에서 박종철 사건의 의문을 제기하며 공권력의 사건 축소를 정면에서 멈춰 세우는 인물이다. 최 검사는 모두가 벌벌 떤다는 박 처장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거의) 유일무이한 캐릭터다. 더구나 깨알 같은 재미도 선사하는 익살스러움도 선보인다.
경찰들의 어이없는 사건 결과 발표에 의문점이 들었던 언론들은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들에 갸우뚱한다. 의심을 품은 사회부 윤 기자(이희준)는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의사를 찾아가 정황을 캐묻는다. 언론 역시 정권으로 인해 장악되어 '보도지침'까지 내려온 마당이지만 윤 기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의사로부터 그리고 최 검사로부터 정보를 받아 사건을 취재한다.
언론의 힘은 매우 중요했다. 최 검사가 박처장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외신 보도의 가능성이었다.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기엔 언론보도만한 것도 없다. 칠판에 쓰인 보도지침을 박박 지우며 끝까지 취재하라 소리치는 사회부 데스크(고창석)의 거침없는 당당함은 관객들에게 실낱 같은 희망을 선사한다. 역시나 사건은 조금씩 알려진다. 신문이라는 오브제는 영화 속에서 빠짐없이 등장한다. 누군가에게는 알려야 할 정보가 되고 누군가에겐 감춰야 할 기사이며 양쪽 모두 다른 의미에서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근원이 된다.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은 교도소에 수감된 해직기자 이부영(김의성)으로부터 숨겨진 진실을 건네받아 세상으로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그들의 의지와 신념은 한결같았고 '세상에 반드시 알려야 할 일'이라는 명분으로 위험을 감수한다. 이들의 연결고리는 김정남(설경구)과 이어지고 그 연결고리는 다시 박 처장과 이어진다. 박 처장에게 김정남은 반드시 잡아야 할 수배자였고 이부영과 한병용에게 김정남은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우는 민주화 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
직업과 나이에 관계없이 독재정권에 맞서는 시민들의 저항과 투쟁은 곳곳에서 일어났다. 전두환 군사 정권으로 만들어진 시대는 억압과 폭력, 독재로 얼룩졌고 그 분노의 시대가 시민들을 뭉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선택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영화를 보며 눈물 흘린 게 얼마만이던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영화는 더욱 급박하게 진행된다.
한병용의 조카 연희(김태리)는 무엇보다 '가족'을 걱정하는 인물이다. 아빠 역시 독재정권의 역사 속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가족을 잃은 뼈아픈 슬픔이 대한민국이 직면한 아픔보다 우선시 되기에 데모에는 관심도 없거니와 데모에 참여할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병용으로부터 비밀서신을 받아 전달하는 주요 인물임을 감안해보면 아빠의 죽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다.
박종철 사망 49일째. 연희는 친구와 함께 시내 거리를 걷다가 시위대와 백골단(사복경찰)이 충돌하는 중심에 서게 된다. 이때 연희는 한열(강동원)과 마주한다. 연희는 87학번, 한열은 동문 선배다.
만화사랑 동아리에 있던 한열은 박종철 사건의 진실과 호헌철폐를 요구하며 세상과 맞서 싸우는 인물이다.
연희와 한열이 담긴 투샷 중, 전단지를 건네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전단지 앞에는 박종철을 추모하는 글과 진실을 요구하는 문구들이 있었고 그 뒤에는 '그날이 오면'의 악보가 담겨있었다. 한열은 '그 날'을 맞이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걸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듯 해 그 글귀를 보자마자 울컥했다.
엔딩 시퀀스는 관객의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혼신을 다한 배우들의 연기는 절정이었고 플롯의 마지막 역시 더욱 활활 타올랐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연희 앞에 함성을 외치는 시민들이 있었고 광장에 나온 시민들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의 러닝타임 129분을 완벽하게 완성하는 엔딩 크레디트는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제 이미지들을 배경음악에 담아 천천히 흘려보낸다. 당시에 있었던 실제 사건들과 영화 내내 관객을 울렸던 장면들이 디졸브 되며 눈물샘을 또다시 자극했다.
영화를 보며 울어본 게 얼마만이던가?
솔직히 영화를 본 후 울어본 적이 별로 없는 편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영화를 봐왔지만 눈물을 흘린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은 단순히 감수성의 부재인 것일까?
영화는 각 시퀀스 별로 숨 쉴 틈 주지 않는 긴박함과 동시에 분노와 슬픔으로 인한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눈물샘과 연결된 감정선을 쉴 새 없이 건드려대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자리를 지키며 일어날 수 없었다'라고 말한 어느 관람객의 멘트를 듣고서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이었는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1987년 나는 아이들과 뛰어놀기 좋아하던 초등학생에 불과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몰랐다. 전두환 정권에서 일어났던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과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나와 연결고리가 없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그 시대가 대한민국 역사 속에 쓰라린 아픔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우리의 감정선을 건드릴 수 있을만한 연결고리가 될법했다.
감정 이입을 통한 눈물샘 자극과 달리 소시민들의 분노와 저항 그리고 절대 권력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던 절망적인 시대적 배경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1987년 이후 무려 30년이 지났다. 정권은 여러 차례 바뀌었고 세상 또한 변했다. 뭐하러 아픈 역사를 드러내 영화까지 만들었냐는 지극히 일부 누리꾼들의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고 한 것처럼 우린 당시의 아픔을 희망의 불씨로 기억하고 민주주의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내게 너무도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