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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Sep 19. 2018

아이와 함께 보낸 제주의 깊고 푸른 밤

14개월 아기의 첫 번째 제주 여행

아이가 태어나 '어느덧' 14개월에 접어들었다. 

"시간 참 빨리 간다."

돌이켜보면, 천천히 지나가던 '1분 1초의 시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흐르고 흘러 '과거'가 되었고 난 '지금'과 마주하고 있다. 


물고 빨고, 울고 싸고 먹기를 반복하면서 무럭무럭 자라난 아이. 엄마의 복직을 앞두고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하면서 한층 더 성숙해진 느낌이다. 솜털 같이 가벼웠던 녀석도 이젠 제법 묵직해졌다.  

약 10개월간 엄마의 뱃속에서 주변 모든 것에 귀 기울이며 자랐을 아이가 세상의 밝은 빛을 두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후 몇 개월간 누워만 지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1년이 될 무렵에는 혼자 일어나 아장아장 걸어 다니기도 했다. 넘어지고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벌떡벌떡 일어나 집안 이 곳 저곳을 헤집고 다닌다. 흔한 장난감보다 엄마 아빠가 쓰는 생활용품을 더 좋아한다. 


태어난 지 1년. 돌이 지나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엄마도 복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예정일을 약 100일 정도 앞둔 상태에서 '태교여행'이라는 명분으로 제주도를 선택했었는데, 엄마 뱃속에서 들었던 파도 소리를 이젠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엄마에게도, 아빠인 나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의 소중한 추억거리가 되어주길 바라며 제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족여행, 세 사람이 가족을 이루어 떠납니다!
비행할 준비가 되었나요? 잘 부탁드립니다!

모든 것이 신기한 녀석에게 비행기는 어떨까?

사실 좀 우려스러웠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도 가만히 있질 않는데 좁아터진 이코노미석에선 얌전히 있을 수 있을까? 더구나 어느 정도 상공에 오르면 기압차로 인해 울거나, 비행기가 이륙 할 때 들리게 될 굉음으로 인해 무서워하진 않을까? 

김포공항에 도착해 끼니를 때우고자 식당에 들렀지만 밥투정을 하는 아이로 인해 살짝 애를 먹긴 했다. 이륙할 시간에 맞춰 우리 세 사람은 비행기에 올랐다. 

"아, 좀 걱정되는데..."

태어나 가장 높이 올라와있는 우리 아이! 신기하지?

울며 불며 떼 부릴 줄 알았던 아이.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순간 가속이 되어 이륙을 했을 때도, 비행기가 가장 높이 올라 정점에 올라가 있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놀기만 했다. 기특했다. 다만 착륙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잠이 오고 배가 고팠는지 투정을 부리긴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제주에 도착하자 늘 그렇듯 사람들이 붐빈다. 대다수가 렌터카를 이용하기 위해 정해진 장소로 이동했고 누군가는 지인이나 가족들을 만나 상봉하기도 했다.  

제주의 날씨는 미세먼지로 가득한 서울 풍경을 보는 듯 다소 흐릿했다. 

"이렇게 1년이 지나 다시 제주로 왔네!"

변함없는 제주의 풍경은 오늘도 우리를 두 팔 벌려 반기고 있다. 아주 격하게!  

제주공항에서... Hello Jeju!

계획이 없어도 좋아! 여행이란 게 그런 거지!

우리가 정한 숙소는 산방산 부근. 공항에서 남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1시간은 넘게 가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점심에는 이 곳을 가고, 여기서 커피를 마신 후 그곳을 둘러보자!" 

아니, 사실 뚜렷한 계획은 없었다.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그때그때 계획을 세우고 이동하고자 했으니까. 제주도엔 고작 대여섯 번쯤 오긴 했지만 올 때마다 늘 새로운 느낌을 준다. '무계획'이라도 여행이라는 것 자체는 이렇게 설레고 기분 좋은, 포장은 어설프지만 내용물은 알찬 선물 같다! 

혼자였을 때나 둘이었을 때 혹은 친구들과 갔을 때나 부모님을 모시고 간 '가족여행' 모두, 이젠 곱씹어도 닳지 않는 기분 좋은 추억이 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그러하리라! 우리 세 가족 모두에게! 

웅장한 산방산의 모습. EOS M

아침이 밝았다. 어제와 달리 화창한 햇살이 제주도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창문을 여니 산방산의 웅장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액자 속 사진처럼 보인다. 

이른 아침부터 잠에서 깬 아이와 함께 이불속을 뒹굴다가 부랴부랴 아침을 먹이고 나갈 채비를 한다. 

옷을 입히고 귀찮아하던 모자를 억지로 씌워 차로 모셔갔다(?).

뜨거워진 렌터카의 창문을 열고 어디론가 달릴 준비를 했다. 기분 좋은 날씨에 뒷좌석에 앉은 우리 아이도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숙소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아기 새처럼 밥을 받아먹었던 아이와 달리 우린 배가 고팠다.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해물라면을 선택했다. 딱새우와 전복, 게, 문어가 가득 들어가 '푸짐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이에게도 마냥 신기한 비주얼, "이건 문어고, 이건 새우라는거야" 조금이라도 달라고 떼를 써보지만 아기 과자를 손에 쥐어주곤 겨우 달래 본다. 

푸짐한 해물이 가득 들어간 해물라면! 다시 봐도 침이 고이네요.

이 곳은 우리가 5년 전 찾았던 논짓물 해변가 바로 앞. 이 해변가에는 땅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곳으로 담수와 해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따갑게 느껴지는 햇살이 바다와 만나 눈부시게 빛이 났다. 5년 전과 달리 우린 셋이 되었고 다시 이 곳에 왔다.

논짓물 마을의 흔한 풍경! 

아이가 낮잠에 들 시간, 유모차에서 잠에 들려고 했던 아이도 언제 깼는지 엄마 아빠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 곳을 향해 손가락질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바다 처음 보지? 저 파란 곳이 모두 바다야!"

뭔가 알아들었는지 한참 옹알이를 하는 아이.

저 멀리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아주 잠깐의 시원함을 선사했다.  

담수와 해수 그리고 자연이 만들어놓은 '오션뷰'의 해변은 화산으로부터 만들어진 검은색 현무암과 함께 인피니티 풀을 연상케 하는 천혜의 수영장 같았다. 그곳에서 물장구를 치는 몇몇 아이들을 보며 우리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 저곳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그리고 저기서 장난을 치며 수영을 하는 아이들에게도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바다에서 물질 중인 해녀분들! EOS M

어느 정도 걸어 다닐 순 있지만 부모의 입장에선 아직도 바깥은 위험하다. 

아이 역시 유모차보다는 넓은 대지 위에 발을 붙이고 싶어 하지만 안겨있는걸 더 좋아하는 '아기'다. 비자림 숲과 같은 제주의 자연이나 수도 없이 존재하는 오름과 같은 곳 역시 제주의 볼거리 중 하나이지만 조금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아이와 가면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아내는 '실내 동물원'을 추천했고 바로 차를 돌렸다. 서울대공원이나 어린이대공원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살아있는 동물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와 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좁은 케이지 안에 딱 한마리의 사막 여우가 먹이를 바라보고 있다.
미어캣. 너희는 언제나 그런 포즈구나.
깡총깡총, 아이가 한참을 바라봤던 토끼 두마리
카리스마 돋보이는 염소

아이는 이 곳에서 신이 났다.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지만 미어캣이 다가오자 무서웠는지 울음을 토해냈다.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활기를 찾은 아이는 아빠의 손도 뿌리치며 좁은 공간을 '그야말로' 휘젓고 다녔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찰나'같은 시간. 태어나 처음 보는 동물들과 짧고 굵은 교감의 시간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넓지 않은 공간, 우리가 상상하는 '동물원'의 사이즈와 비교하면 턱 없이 모자라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긴다면 더 큰 곳에서 더욱 다양한 동물들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점차 '무언가'를 인식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살아 움직이는 동물들의 모습은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동물원은 우리 아이에게 매우 적합한 장소였다. 나중에 더 많이 보여줄께! 

다음 날에도 우린 아쿠아리움을 찾았다. 

아이와 함께 오니 '필수코스'가 되어버린 수족관. 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작은 물고기들을 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에게 이 곳 역시 기분 좋은 장소가 될 거라 판단했다. 

'엄마, 나 저거 사줘! 잘 키울 수 있단 말이야!'

떼를 쓰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냉정하게 돌아서는 부모들을 보니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되고서야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강아지며 병아리며 무작정 사달라고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은 여느 아이들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지금 우리 아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모습이 오롯이 드러나게 되겠지. 

'조금만 더 보고 가자'는 아이의 눈빛과 느낌을 보니 '어느새 이만큼 자랐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는 수족관에 들어서자 열심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파란 물결 속에 수많은 물고기가 떼를 지어 다니니 아이는 통제가 되지 않을 만큼 이 곳 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온통 파란 빛으로 가득찬 아쿠아리움
대형 수조 앞에서, 엄마와 함께
알록달록 아름다운 빛깔의 물고기들
가족들로 가득찬 아쿠아리움 대형수조


요리조리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아장아장 걷는 아이. 행여 넘어지지는 않을까 그 뒤를 바짝 쫓는 아빠. 수조 안에 있는 물고기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옹알이를 하다가도 소리를 지르며 마구 돌아다니기 바쁘다. 

"저거 봐. 저게 바로 펭귄이야! 신기하지?"

아빠 엄마의 말에 옹알이를 하며 웅얼웅얼 되받아친다. 그나마 넓고 시원한 이 곳이 부모에게나 아이들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부모들의 얼굴에서 조금 지친듯한 기색이 역력하긴 하지만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났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아쿠아리움 앞에서도 에너지를 발산하는 우리 아이.

아이에게 더욱 많은 곳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시간도 더위도 장소도 더구나 아이가 있으니 한 군데를 가더라도 여유가 필요했다. 저녁을 먹을 때도 입으로 음식을 먹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둘이 있을 때보다 꽉 찬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식당이든 카페든 늘 가방이 차지했던 자리엔 아이가 앉아있고 우린 그 자리를 차지하며 과자를 먹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제 아들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주의 카페는 '우후죽순'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오션뷰는 물론이고 아기자기하거나, 때론 품격 있게 스타일을 갖춘 인테리어가 더욱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인기가 많은 곳은 당연히 줄을 지어 서있어야 할 정도라 오랜 시간 '대기'를 감수해야만 한다.

여행 일정 중 어느 날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기 위해 아이를 안고 카페 한 곳을 찾았다. 문 앞에 적힌 'No Kids Zone'이라는 문구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마치 우리 아이에게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흥, 뭐 여기 말고 갈 곳이 없나' 

물론 갈 곳은 많다. 그리고 '노 키즈 존'에 대해선 서비스업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있고 그들만의 정책이니 우린 그저 다른 곳을 선택할 뿐이다. 선택의 여지는 많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카페인 한 컵!
바깥 풍경이 궁금한 아이는 그렇게 한참 창문 밖을 바라봤습니다

아이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TV를 쳐다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세상과의 스킨십이 아닐까? 경험은 그 무엇보다 값지고 소중한 것. 

제주에서 돌아와 아이가 한 뼘 더 자란 기분이 든다. 떼를 쓰고 우는 것이야 어차피 이제 두 살이 된 아이에겐 평범한 하루 일과이지만 여행으로 인해 분명히 좋은 경험을 했고 아이는 물론 우리 가족에게 기분 좋은 추억을 만든 것 같다. 

여행이라는 것은 늘 새로운 것이다. 자연이 보여주는 세상의 만물과 그 곳의 아름다움,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눈으로 담고 몸으로 느낀다. 살아숨쉬는 육체의 모든 오감들이 느꼈던 그 곳의 공기를 가슴 속에 온전히 모셔두면 오래 기억될 '추억'으로 남겠지. 특히 아이와 함께 한 여행이니 더욱 오래 남을 것 같다. 한뼘에서 두뼘 그렇게 자라고 있는 아이와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제주 사진 더 보기
어느 카페 앞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마주한 산방산의 모습
시원한 커피 한잔을 위한 여유로운 카페
그렇게 먹고 싶었던 보말 미역국과 성게비빔밥
성게알이 들어간 고기국수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운 책들!
평대리의 푸른 바다
어느 작은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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