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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Sep 27. 2018

고요하고 아늑한 사가현의 시골마을

후쿠오카, 그 어딘가의 작은 동네

연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다. 이래도 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처럼 '방학'이란 존재하지 않는 직장인의 삶은 오늘도 여전하다. 이렇게 더운 날씨엔 대형 폭탄 같은 전기세를 각오하더라도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어놔야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에어컨이 망가진건 아닌지', '오늘따라 유독 두꺼운 옷을 입고 나온 건 아닌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작은 탁상용 선풍기가 시끄럽게 돌아가도 이마에 땀이 흐른다. 그리곤 짧은 상상을 해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 몇 편을 하루 종일 보고 있노라면, '이런 게 진짜 휴가'라고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 방학은 없어도 휴가는 있으니까!" 

평소와 달리 극성수기인 7월 말과 8월 초에 휴가가 잡혔다. 불가피한 날짜,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순 없어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열심히 구글링을 했다. 


사가현의 작은 도시, 가라쓰(唐津)

일정은 잡혔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예산도 생각해야 하고 휴가기간 역시 그리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극성수기라 비용도 상상 이상이었다. 그나마 비행시간도 짧고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아보니 후쿠오카가 가장 눈에 띄었다. 후쿠오카 벳푸에 다녀온 지 6년 전.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후쿠오카 공항 주변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벳푸로 향했던 그 길은 마치 시골길을 떠올리게 했다. 이번엔 어디로 가볼까? 지도를 펼쳤다. 

후쿠오카 지도. 여기도 참 넓구나!  출처 : google map

비행기는 와이프의 마일리지를 사용하고 렌트카와 숙소만 알아보기로 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료칸에 가보기 위해 예약 사이트 여기저기를 뒤져보니 후쿠오카 중심부와 점차 멀어졌다. 마음에는 들지만 가격은 천정부지.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공항에서 1시간도 넘게 떨어진 곳을 겨우 선택하고 보니 사가현의 작은 도시인 가라쓰라고 한다.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올해 여름휴가 일정이 정해졌다. 여행을 가기 전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그리곤 짧게 한마디 남기셨다.

"일본도 그렇게 덥다는데 괜찮겠니?"

이제 곧 출발합니다

올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덥다고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동남아의 흔한 휴양지들이 서울보다 시원하다는 말들이 오고 갔는데 과연 여기는 어떨는지? 공항에 내리니 푹푹 찌는 무더위가 서울과 흡사했다. 아스팔트가 열심히 쌓아둔 태양의 열기가 고스란히 올라와 땀샘을 자극했다. 

렌트카의 시동을 켜고 에어컨을 최대치로 올려보지만 아직은 미지근한 느낌이다. 우리나라와 반대편에 위치한 운전석, 몇 번이나 핸들을 잡았던 경험이 있지만 오늘따라 이 길이 매우 어색하다. 차는 매우 작은데 왜 이렇게 도로는 좁고 차는 크게 느껴지는 걸까? 

이번 여행도 잘 부탁해!!
후쿠오카 도심 풍경
우뚝 솟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신사
일본의 흔한 교통 표지판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내부순환로처럼 이 곳에도 길고 복잡하게 뻗은 순환로가 있었고 이 길을 따라 30~40분 질주하니 점차 길은 좁아졌고 도심을 벗어나는 듯 점차 한적해져 갔다. 서울을 빠져나가 경기도 외곽이나 충청도 어디쯤 와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1시간 30분 남짓 달려 도착한 해변의 끝자락. 울창한 대나무 숲과 목조로 지어진 료칸의 모습이 진정한 일본의 모습인 듯 위풍당당하게 자랑하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가라쓰의 일본 전통 료칸


대나무숲을 지나 료칸 로비로 향합니다
숙소의 창문을 활짝 열고 푸른 바다를 멍하니 바라봅니다.

숙소 방에 들어가 창을 여니 언제나 그렇듯 파란색의 바다와 늘 푸른 소나무가 분위기를 자아냈다. 처음으로 와본 료칸의 분위기는 TV나 영화 등 미디어에서 접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래된듯한 목조 건물에 낡은 에어컨, 태풍이라도 온다면 금방 날아가버릴 듯한 야리야리한 창문이 엔틱하고 고즈넉했다. 좁은 욕조와 화장실은 언제나 그렇듯 아담했다. 

3일간 묶게 될 아담한 료칸 내부

이 숙소는 료칸의 특색이자 상징인 '온천'이 존재하는데 바다에서 끌어온 해수 온천이 가족탕과 대욕탕으로 구분되어 관광객들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노천탕의 경우는 별이 반짝거리는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20개 이상의 반찬을 조식으로...

이 곳의 조식은 일반적인 호텔에서 경험하는 뷔페식과 달랐다. 료칸이라면 아침상을 객실 안에서 받아먹는 경우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별도로 정해진 식당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했다. 

거하게 차려져 있는 테이블 위에 20개 이상의 찬이 올라왔고 돌솥에서 주걱을 기다리는 하얀 쌀밥의 풍미는 압권이었다. 골라서 먹는 재미 또한 쏠쏠했고 무엇보다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을 먹는 이 시간이 상당한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을 먹는다는 것.

가라쓰에서는 오징어가 꽤 유명한 편이다. 이른바 '가라쓰의 명물'이라 불리는 오징어는 팔팔 튈 정도로 싱싱하다. 한치와 비슷하게 생긴 이 곳의 오징어는 몸통만 얇게 회를 쳐서 서비스되고 다리를 포함해 회를 먹고 남은 부분들은 튀김(天ぷら)으로 제공된다. 

바삭하게 튀겨진 튀김을 입으로 물었을 때 전해지는 '바삭한' 소리와 식감은 지금도 온몸의 감각들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가라쓰의 명물, 오징어 회
바삭바삭한 오징어 튀김

후쿠오카에도 일본 라멘의 특색이 있는 편인데 이 중 '이치란(一蘭)' 라멘이 꽤 유명하다고 한다. 50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마늘과 버섯, 계란, 돼지고기 등의 토핑을 넣어 먹는다. 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에 의하면 한국의 신라면이 더 맛있다고도 했다. 물론 라면은 맛있다! 

후쿠오카 도심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 캐널시티(Canalcity)에는 후쿠오카는 물론 삿포로, 가고시마, 구마모토 등 일본의 8대 라멘집을 모아놓은 라멘 스타디움이 있으니 한 번쯤 가보면 좋을 것 같다. 보통의 푸드코트가 여러 음식을 파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곳은 오로지 라멘만 전문적으로 팔고 있다. 

후쿠오카 도심에 위치한 캐널시티는 대형 쇼핑몰로 남녀노소, 국적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곳 중 하나다. 

캐널시티에 위치한 라멘스타디움.
라멘 지도.  출처 : http://canalcity.co.jp/ra_sta/

사가현 숙소 주변과 후쿠오카 도심의 이 곳 저곳을 돌다가 숙소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소나무 숲을 발견했다. 

마치 광릉수목원의 숲길이나 제주의 비자림 숲을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니지노마츠하라(虹の松原)'라는 이름의 소나무 숲은 해변가와 인접해있어 더욱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본의 3대 송림으로 일본에서 지정한 특별 명승지라고 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소나무 숲과 좁은 도로가 있는 이 곳은 방풍방조림으로 심기 시작해 무려 5km에 달하는 드라이브 코스로 조성되어 굉장히 운치가 있다. 

옆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으르렁 거리며 지나가도 어색하지 않을 공간이다. 이 곳을 아침마다 운동삼아 뛰거나 걸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 위에서 눈을 감고 서본다. 바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소나무 사이를 뚫고 귓가를 때릴 때면 입가에 왠지 모를 미소가 번진다. 등에 흐르던 땀이 그 바람에 씻겨나가는 느낌마저 든다.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가 얇고 뾰족한,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의 솔잎들이 힘겹게 방패막이를 하고 있으니 지금 이 시간의 방풍림은 편안한 그늘막이 되어준다.   

니지노마츠하라. 가라쓰의 소나무 숲
이 길의 끝은 해변가와 마주한다.

길은 꼬불꼬불 그리 넓지 않은 도로 위를 달리며 주변에 널려있는 오래된 가옥들이 시골의 한적한 마을을 연상케 했다. 푸른색의 바다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눈부신 빛을 발산했고 돌아다니는 차량의 엔진 소리만 가끔 들릴 정도로 고요하고 한적했다. 파도소리 하나 없이 적막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영화처럼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색채가 더욱 와 닿는다.  

한적한 마을과 파도 없이 고요한 바다
숙소 앞에서.

서쪽을 향해 내리꽂는 태양의 빛이 점차 붉은색으로 변해가며 노을을 만들었다. 매일 같이 무더운 날씨를 선사했지만 짧은 '휴가'는 힐링이라는 선물을 주었고 료칸이 주는 아늑함 또한 경험할 수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직장인의 삶, 주변 곳곳에 펼쳐진 아스팔트와 높다란 마천루의 건물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올여름의 더위를 극한으로 몰고 갔다. 피곤함은 늘 그렇듯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것, 결국엔 무뎌지는 매너리즘 속에서 "휴가 좀 가겠습니다"의 한 마디 그리고 정해지지 않은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은 당장 내일 방학이라도 맞이한 초등학생들이라도 된 듯 잠이 오지 않을 만큼의 설렘을 주곤 한다.

물론 이번에도 그러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의 여행은 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경험은 앞으로의 삶 위에 고스란히 축적되고 여행이 주는 치유는 행복으로 쌓이며 내 눈에 담았던 이 곳의 아름다움은 추억으로 남는다.   

붉게 물든 가라쓰의 노을
다음 여행을 기약하는 붉은 빛
안녕히 주무세요!

※ 제가 묶었던 곳은 후쿠오카 공항에서 넉넉하게 약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사가현 가라쓰의 시오유 나기노토(Shioyu Naginoto) 료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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