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X 넷플릭스] Sci-Fi 앤솔로지 '블랙미러'에 대한 짧은글
오랜 연구 끝에 이룩한 테크놀로지(Technology, 기술)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그 순간부터 결코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쉽게 말해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고 저변에 확대되면 그 이후로 늘 발전하게 되어있는 것.
퇴보하는 기술을 본 적이 있는가? 기술을 가진 어느 국가가 다른 나라의 기술력보다 뒤떨어질 순 있어도 기술 자체는 끊임없이 발전하게 마련이다. 눈이 부시게 성장하는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인류의 삶과 산업 분야는 크게 변화했고 혁명에 이르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첨단'을 향해 발전하고 있는 테크놀로지로 인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루었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체험하며 활용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류, 인간의 안락한 삶을 꾀하고 산업의 발전을 이루는 첨단 기술에는 늘 긍정적인 부분만 존재할까?
넷플릭스의 <블랙미러>는 인류가 이룩한 첨단 기술과 인간의 어두운 본능 그리고 충분히 있을법한 악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이파이 앤솔로지(Sci-Fi Anthology)다. 2011년에 시작한 <블랙미러>는 이번에 시즌 5번째로 다시 팬들을 찾아왔다.
<블랙미러>는 이른바 디지털 시대의 '환상특급'이라 불리는 SF 시리즈로 늘 기상천외한 플롯으로 때론 예상치 못한 반전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시즌5는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짧게 언급해보고자 한다.
※ <블랙미러> 시즌5를 보지 못한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
시즌 5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바로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로 플롯의 중심에는 핵심 키워드 'VR(Virtual Reality)'이 있다. VR이라 하면, 컴퓨터 그래픽 또는 영상으로 구축한 가상의 세계에서 마치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현한 첨단 기술을 의미한다. 현존하는 VR은 가상현실 체험을 위해 오큘러스나 오딧세이와 같은 HMD(Head Mount Display)를 활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mp4나 avi 파일로 구동하는 영상과는 포맷 자체가 다르다. 어떠한 영상을 담느냐에 따라 용량도 다르긴 하지만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서라면 5G의 통신망과 속도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극 중에 등장하는 VR 전용 대전 게임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팔콘을 연기했던 안소니 마키가 이번 드라마에서 대니 역을 소화했다. '칼(야히야 압둘 마틴 2세)'은 대니보다 더욱 게임을 즐겨하는, 마치 철부지 같다. 칼은 아내와 아이를 재워두고 종종 콘솔 게임을 즐기는 대니의 둘도 없는 절친이다.
대니의 생일날, 칼은 VR 게임을 선물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VR이 아니었다. 극 중에서는 관자놀이에 기기를 부착해 게임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에 기존의 HMD보다 훨씬 간편한 모양새였다. 게임에 빠지는 순간, 플레이어는 현실과 전혀 다른 곳에 자리하게 된다. 무릉도원을 방불케 하는 세상에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진짜 서있는 듯한 현실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역시 HMD를 활용해 오아시스라는 가상현실에 빠져들게 한 것과 굉장히 유사하면서 조금 다른 면을 보인다. HMD를 벗어던지고 쉽게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법한 연출이라 하겠다. <레디 플레이어 원>과 같이 자기 자신이 가상세계의 또 다른 캐릭터로 빙의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실제 플레이어인 대니와 칼이 캐릭터를 입는다. 다만 활동할 수 있는 세계는 게임 속 장면처럼 한정적이다. 게임 속에서는 대니 자신과 칼의 캐릭터인 상대방으로 딱 둘만 존재한다. 공교롭게도 대니는 랜스(루디 린)라는 근육질의 남성 캐릭터를, 칼은 미모의 여전사 록시트(폼 클레멘티에프)를 선택해 게임 속에서 만난다.
사실 VR이라는 테크놀로지보다 대니와 칼이 선택한 캐릭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가상현실 세계 속에서 대니나 칼의 정신은 살아있지만 육체는 이미 가상 캐릭터의 것임에도 캐릭터가 정체성을 집어삼키는 요소가 된다. 말 그대로 랜스와 록시트라는 전투 캐릭터라기보다 그저 남성과 여성이 만나는 셈이니 게임의 기본 구성인 격투(fight)가 사랑에 빠져 육체적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작용하게 된다. 대니의 현실은 아이를 원하는 아내가 있고 조용히 잠을 자고 있는 아들을 둔 평범한 직장인, 칼 역시 여자 친구는 있지만 게임 속에서 경험했던 육체적 사랑에 갈증을 느끼게 된다. 대니 역시 인간의 본능과 한계를 넘어 현실과 가상에 대한 혼란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VR은 말 그대로 '가상으로 만들어진 세계'이고 게임 속 캐릭터 역시 그 세계 안에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VR은 가상이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는 법. VR이라는 테크놀로지의 기술력이 첨단으로 진화하게 되면 이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선을 잃게 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R이 구현한 가상의 세계는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다. 어떻게 보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 세계의 확장이자 자기 자신과 너무나 다른 캐릭터를 입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확장이라 하겠다. 이 에피소드를 바라보는 시청자 또한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셈이다. 대니와 칼이 과연 어떻게 가상과 현실 세계를 정리했을 지에 대해서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스미더린, Smithereens>이라는 생소한 타이틀이었다. 극 중 스미더린은 영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소셜미디어 회사였다. 스미더린 본사 앞에 어제와 똑같이 손님을 태우려는 콜택시 한 대가 서있다. 어느 날 콜택시 기사인 크리스(앤드류 스콧)가 검은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스미더린 직원 제이든(댐슨 이드리스)을 태워 공항으로 이동한다. 제이든이 스미더린 직원이라고 밝힌 순간 콜택시는 인질을 납치해 도주하는 차량으로 변하게 되고 크리스는 총을 가진 범인이 되어버린다. 크리스가 원하는 것은 스미더린의 수장인 빌리 바우어(토퍼 그레이스)와 통화하는 것. 그는 왜 빌리 바우어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을까?
<스미더린> 에피소드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스미더린이 보유한 크리스의 정보다. 범인과 인질이 함께 타고 있는 차량 주위로 경찰들이 몰려들고 FBI까지 가담하게 되지만 소셜 미디어의 막강한 힘을 가진 스미더린의 정보와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경찰들도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를 스미더린이 '공유'해주는 모양새다. 더구나 크리스와 제이든이 함께 타고 있는 범죄 현장에 대한 소식 역시 SNS를 타고 급속도로 번져나간다.
크리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빌리 바우어와 통화를 하게 되고 그토록 사랑했던 약혼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국엔 크리스 역시 SNS로 인해 자신의 약혼녀를 잃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빌리 바우어 역시 SNS의 과도한 사용이 '중독'으로 귀결된다는 것에 대한 인지는 어느 정도 하고 있을 테지만 이미 자신의 손을 벗어난 것인 양 통제할 수 없다고 한다.
크리스의 인질극은 이미 선을 넘었다. 자신의 아픔과 죄책감을 모두 털어놓은 셈이니 속이 후련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크리스의 존재는 순식간에 흩어져갈 뿐이다. 빌리 바우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도 언제 그랬냐는 듯 그저 다시 일상이다.
前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 경도 SNS를 하는 일부 축구 선수들의 경솔한 발언을 두고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수많은 셀럽들도 자신의 SNS를 운영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긴 하지만 어느 특정한 상황이나 배경에서 언급한 한 마디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다반사다. 더구나 이를 언론 보도에 활용해 작은 불씨를 키우는 경우들도 매우 흔해졌다. 누구보다 트위터에 집중하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정치나 외교에 활용하는 케이스도 있다. 2019년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있었던 G20 정상회담 중 DMZ 방문에 대한 트윗을 날리게 되면서 극적인 회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SNS가 인생의 낭비로 전락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 과도한 사용이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렇기에 자정적인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도 개선의 노력은 필요하다. 어쩌면 크리스도 선의의 피해자일 수 있겠다. 그렇다고 스미더린이 강요한 것은 아니다. SNS는 강제성이 없다. 그러니 통제할 명분도 없는 것. <스미더린>의 메시지는 확고하다.
<블랙미러> 시즌5의 세 번째 에피소드에는 미국의 유명 가수이자 배우인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의 반가운 얼굴이 등장한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팝가수 애슐리 O(이하 애슐리) 역을 연기한다. 애슐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레이첼(앵거리 라이스)은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와 딱히 친한 친구들이 없다. 밥을 먹으면서도, 방안에서도 애슐리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함께 즐기는 10대일 뿐이다. 반면 레이첼의 언니 잭(매디슨 데븐포트)은 레이첼의 그런 모습이나 애슐리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기타를 튕기며 록음악과 메탈 장르를 즐겨 듣는 다소 반항적인 외형을 갖고 있어 레이첼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핵심은 AI 로봇이다. 애슐리의 외형과 인격, 목소리를 그대로 입힌 애슐리투는 인공지능 스피커와 유사하지만 조금 더 고도화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알고리즘은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음성 명령이나 질문에 대한 답은 막힘이 없을 정도로 진화된 모습을 보인다(가령 사용자에게 역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처럼)
애슐리투는 애슐리와 동일한 이름을 갖고 있고 애슐리라는 인간의 본성을 모방한 것이지만 애슐리의 이면은 철저하게 감춘 '상품(인형이자 로봇)'에 불과하다. 애슐리의 매니저이자 고모이면서 보호자인 캐서린(수잔 포파)은 애슐리의 어둡고 소극적이며 조금이라도 부족한 모습들은 대중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철저하게 감춘다. 캐서린이 만들어낸 그러나 전혀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애슐리를 가둬버린 셈이다. 결국 미디어를 통해 등장하는 애슐리의 모습은 캐서린이 포장한 가식, 말 그대로 '가짜'인 것이다. 애슐리 역시 그런 모습의 캐서린을 극혐해하고 답답해한다. 애슐리투 역시 알고리즘에 의해 감춘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레이첼과 잭에 의해 서서히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캐서린의 교활하고 간사한 속내를 파헤치고 애슐리를 구원하기 위해 레이첼과 잭 그리고 애슐리투는 합심하여 손을 내민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애슐리투는 인공지능으로 작동하는 로봇이다. 친구 하나 없는 소심한 레이첼에게 애슐리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준다. 사용자가 욕을 해도 잘못된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신호를 내보내지 않는다. 모든 인공지능 스피커가 그러하듯 격려하고 조언할 수 있도록 학습되었을 뿐이다. 결국에 애슐리투라는 껍데기도 가식적인 존재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와 음악을 통해 레이첼에게 다가갔던 무대 위의 애슐리나 이를 모방한 애슐리투 모두 레이첼에게 부정적인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판타지의 중심에는 캐서린이 존재한다. 포장된 애슐리를 무대 위로 내몰듯이 밀어내고 결국엔 영리적인 목적을 위해 애슐리투를 내세웠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자 홀로그램 입체영상으로 구현한 또 다른 애슐리의 '판타지(가짜)'를 실감나게 표현하기도 한다. 캐서린에게 애슐리에 대한 마음 역시 모두 철저하게 포장된 위선이라는 점. 애슐리에게 있어 잘못된 환상과 진심이 없는 가식, 자신을 내세우며 영리를 추구했던 캐서린은 가면을 쓴 마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테크놀로지로만 보면 인공지능과 로봇, 홀로그램 입체영상을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애슐리투의 경우 현존하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보다 업그레이드한 수준으로 보이지만 충분히 가능할법한 모양새였다. 물론 애슐리의 목소리나 말투를 담아내는 것쯤은 가능하겠지만 그녀의 인격을 고스란히 담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이슈라 하겠다. 가식을 걷어내고 자연스러움을 표현하게 되는 애슐리투의 과감한 용기가 오히려 소심한 레이첼에게 좋은 벗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에피소드였다.
※ 개인적으론 이전 시즌(시즌1~시즌4)의 플롯들이 훨씬 과감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메시지는 모든 에피소드에 포함되어 있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있네요! 취향은 모두 다른 법이니 직접 보시는걸 추천드리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