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완성판, <어벤져스 : 엔드게임>
한국의 영화 산업과 국내외 작품들을 기록하는 역사책이 있다면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의 이름은 절대 빠지지 않을 것 같다. 2019년 4월 24일 전국 상영관에서 일제히 영화가 시작되었고 개봉 첫날부터 역사적이고 놀라운 '대기록'을 쓰고 있는 중이다. 개봉 전부터 마블의 팬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 예매 사이트를 찾았고 트래픽이 몰린 덕분에 사이트가 마비되는 전례 없는 현상도 있었다. 엔드게임의 인기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개봉 첫날 오전, 이미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4월 24일 기준으로 133만 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한국 영화 역사상 초유의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외국 영화로는 <쥬라기월드 : 폴른 킹덤>이 118만 명, 국내 영화로는 <신과 함께 : 인과 연>이 124만 명이었다. 4월 25일 기준으로는 217만 명이 관람했다.
엔드게임의 예고편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면서 여기저기 영화에 대한 예측이 튀어나왔다. 축구나 야구 등 스포츠 경기에 대한 예측은 누군가 승기를 거머쥐면 또 다른 누군가 패배하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의 예측이라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봐야 한다. 그냥 아무 글도 보지 않고 이 작품을 관람하기를 적극 추천한다.
단순한 히어로물이 아니라는 점은 지금껏 이들을 만나왔던 팬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 말이 필요 없다.
<아이언맨>이 2008년 등장한 이후 마블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토르, 캡틴 아메리카, 헐크 그리고 최근 등장한 캡틴 마블에 이르기까지 한 작품에서 이렇게 많은 히어로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야말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엔드게임은 11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아주 알차고 굵게 모아놓은 집대성이자 결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했던 크리스 에반스는 엔드게임을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의 눈물엔 너무나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마블의 팬으로서 그 눈물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 최대한 스포 없이 작성한 글이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보기 전에 영화를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어떠한 정보든 영화 관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완벽한 집대성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무려 3시간이 넘는다. 루소 형제(안소니 루소, 조 루소)가 이 영화를 연출하고 편집했을 때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며 다시 돌려보고 잘라낼 영역을 찾아 여러 차례 재편집을 해봤지만 10명이 넘는 히어로가 등장할뿐더러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메시지가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3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누군가 '인터미션(intermission, 영화 중간에 쉬는 시간)' 이야기도 했었다는데 만일 그랬다면 영화의 집중도가 더욱 흐려졌을 것 같다.
※ 참고로 1959년 '벤허'는 222분, 1994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킹덤'이 280분으로 인터미션이 있기도 했다. 280분이면 4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니 관람객의 생리현상을 위한 인터미션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다.
영화의 플롯이 지루하거나 뚜렷한 메시지도 없이 무리하게 질질 끌다 보면 아무리 현란한 CG와 시원한 액션이 차고 넘쳐도 금방 지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각 시퀀스를 잇는 요소들이 매우 짜임새가 있다는 느낌이다. 더구나 여기저기 흩어진 수많은 히어로들을 하나의 스크린에 모아놓아도 산만하지 않은 것은 역시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잘 쌓아 올린 견고함에서 기인한다.
히어로물이라면 화려한 CG, 그들이 펼치는 강력한 액션이 주를 이루곤 하는데 각각의 히어로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또 어떻게 싸워왔는지 알고 본다면 사뭇 진지하고 흥미로우며 감동적인 요소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과거(전작)를 찾아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최대한 말이다.
히어로들이 많기 때문에 누군가는 자칫 비중이 적어질 수 있는데 이러한 부분은 (당연히) 감안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블의 지난 11년, 21개의 영화 속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수많은 시퀀스에 절묘하게 녹여냈다. 루소 형제의 기막힌 연출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기술력은 꾸준히 발전하기 마련이다. 테크놀로지는 미래를 지향하기 때문에 쇠퇴하는 경우가 없다. 반면 영화의 시나리오나 플롯은 늘 완벽할 순 없는 법인데 다른 마블 시리즈도 그러했지만 이번 작품만큼은 그간의 무비들을 제대로 '집대성'한 느낌이다. 아이언맨의 기상천외함, 스파이더맨의 큐트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클래식하고 펑키한 느낌, 닥터 스트레인지의 진중함, 캡틴 아메리카의 깊이, 토르의 색다른 모습까지 이 안에 모두 담겨있다.
인피니티 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앤트맨이나 호크아이 등 반가운 히어로들이 이번 작품에서 모습을 보인다. 더불어 캡틴 마블의 어벤져스 합류 또한 눈에 띈다. 일부 관객들은 캡틴 마블의 능력 자체가 '사기 캐릭터' 수준이라고도 한다. 타노스로 인해 위기에 빠진 우주 그리고 어벤져스를 구원할 수 있는 실낱 같은 희망은 닥터 스트레인지가 인피니티 워에서 언급했던 1천400만 개 중 단 하나의 가능성과도 같다. 캡틴 마블의 파워는 실로 어마어마한 편이다. 본격적으로 타노스와 상대하게 되는 어벤져스의 히어로들 그리고 캡틴 마블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타격감은 매우 통쾌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인피니티 워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했을 때나 토르가 스톰 브레이커를 들고 나타났던 신(scene)만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심장이 뛰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 속에서 또 다른 위기를 겪는 이들에게, 히어로를 위해 히어로가 등장하는 모습은 늘 그렇듯 언제나 반갑다.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2008년 아이언맨이 등장한 이후로 21개나 되는 작품들이 11년 동안 관객을 찾았다. 모두가 동일하게 뛰어나다곤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것 하나 뺄 수 없을 정도로 모두 다 흥미로웠다. 마블의 특징이라면 바로 쿠키 영상인데 본편과 더불어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나타나는 쿠키 영상들은 마블의 세계관을 잇는 매우 소중한 시퀀스들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이번 작품에는 쿠키가 없다. 하지만 웅장한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엔딩 크레디트에는 11년간 마블과 함께 했던 주인공들의 모습이 흘러나온다. 더불어 팬들에게 선물이라도 해주는 듯 각 히어로들의 싸인(signature)이 등장해 기존의 작품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받았다. 올해 7월이면 마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스파이더맨 : 파프롬홈>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왜 이렇게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듯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이동진 평론가는 이 작품에 대해 "팬들과 함께 추억의 앨범을 하나하나 넘긴 끝에 전하는 우정 가득한 송사"라고 표현했다. 181분의 러닝 타임도 11년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의 또 다른 한장일뿐.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추억의 앨범'에는 따스한 메시지들이 존재한다. 11년을 이어온 마블의 역사는 또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기록을 쓰게 될 것이고 그 시간 동안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나이를 먹게 될 것이다. 영원히 늙을 것 같지 않을 듯한 영화 속의 히어로를 바라보는 우린, 마치 '중2병'이라도 걸린 듯 나이를 먹어서도 그들이 전하는 우정 가득한 이야기들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 최대한 스포 없이 작성한 글이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보기 전에 영화를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어떠한 정보든 영화 관람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 언론에서는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전국 상영관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면서 '독과점 논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케팅 예산이 많은 블록버스터형 영화나 범접할 수 없는 대형 배급사들이 우리가 알만한 멀티플렉스와 손을 잡고 상영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때가 많기도 했었죠. 그런데 엔드게임만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할 순 없습니다. <군함도>, <극한직업>, <국제시장>, <명량> 등 영화의 완성도, 재미를 떠나서 저예산 영화나 독립 영화들이 자리를 차지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난 사례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천만 관객을 모아 화제가 되었던 국내 영화 중 "이게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나?"라고 할 정도로 의구심이 들었던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천만관객을 만들기는 쉽죠. 말 그대로 상영관을 독차지 하면 되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엔드게임이 그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겠죠. 규제나 법안을 똑똑하게 마련하는데 있어서 '내로남불'은 없어야 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