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 라슨으로 인한 논란, 하지만 저는 '영화'로만 봤습니다!
영화 <캡틴 마블>은 2019년 들어 처음 선보이게 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여성 히어로 무비다. 마블에서 제작된 영화로만 보면 '캡틴 마블'은 첫 번째 여성 히어로이기도 하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 워')의 쿠키 영상을 확인했다면, 캡틴 마블(Captain Marvel)에게 신호를 보내며 사라진 닉 퓨리(사무엘 L 잭슨)가 떠오를 것이다. '인피니티 워'가 2018년 4월에 개봉했으니 대략 1년이 흘렀고 후속편인 <어벤저스 : 엔드게임>이 2019년 4월에 개봉하니 <캡틴 마블>은 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브리 라슨(Brie Larson)이 여주인공 캐럴 댄버스이자 마블의 첫 여성 히어로 '캡틴 마블' 캐릭터를 연기했다.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룸>의 조이 역할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바 있다.
개인적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아버지라 생각하는 스탠 리(Stan Lee)가 2018년 11월 12일 별세한 후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캡틴 아메리카의 크리스 에반스 등 수많은 배우들이 그를 추모했다. 브리 라슨의 SNS에서는 스탠 리를 추모하는 '진심' 보다 자신이 메고 있는 가방이나 신발, 손에 쥐고 있는 칵테일 등이 더욱 돋보이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로 인해 강력한 후보였던 에밀리 블런트가 아니라 브리 라슨이 캡틴 마블 역할을 맡았다는 것 역시 '최악의 미스 캐스팅'이라며 뜨거운 논란을 가져왔다. 브리 라슨의 페미니즘 사상 또한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영화 개봉 이전부터 악플과 낮은 평점에 시달렸다. 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스트 브리 라슨의 캐스팅, 페미니즘 섞인 마블의 첫 여성 히어로 무비, 마블의 세계관을 창조한 스탠리에 대한 조롱.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마블의 영화'로서 이 작품을 관람했다.
마블의 역대급 슈퍼우먼, 캡틴 마블
잘 아시다시피, 어벤저스의 히어로들은 우주 최강 빌런 타노스를 만나 위기에 빠진다.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장착한 건틀렛으로 핑거 스냅을 날리자 우주의 절반이 휩쓸렸고 수많은 생명들이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어느 누구도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어벤저스가 가진 모든 능력을 총동원했음에도 반전 하나 없이 모두 쓰러져갔다.
그리고 닉 퓨리가 남긴, 캡틴 마블을 향한 메시지 하나가 마치 우주를 구원해줄 '희망' 같았다.
2019년 3월, 마블의 여성 히어로가 마침내 탄생했다.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캡틴 아메리카, 토르, 헐크, 닥터 스트레인지 등 주요 캐릭터는 모두가 남성이었다. 솔로무비를 앞두고 있긴 하지만 블랙 위도우를 포함해 스칼렛 위치, 가모라 등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들은 사실상 '조연'이다. 이번엔 온전히 여성이 주도하는 캐릭터로서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해 우주 공간을 뒤흔든다. 우주의 희망이 되어줄 캡틴 마블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영화의 플롯을 살펴보면, 공군 파일럿이었던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가 지구에서 있었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 외계 행성인 크리(Kree)에서 크리 족 여전사로 살아간다. 지구에 불시착하면서 일행이었던 캡틴 마-벨 월터 로슨(주드 로)과 떨어지게 된다. 지구는 그들에게 있어 또 다른 행성, 바로 그곳에서 쉴드 요원 닉 퓨리와 신참 요원 콜슨(클락 그레그)을 만나게 된다. 마침 지구로 급습해온 또 다른 무리와 싸우게 되는 캡틴 마블은 흩뿌려진 자신의 기억을 조금씩 되살려간다.
캡틴 마블이 공군 파일럿 캐럴 댄버스의 이름을 달고 전투기를 몰고 있을 때 추락사고가 아닌 격침을 당한다.
마치 우주에서 온듯한 푸른 에너지가 캐럴 댄버스의 온몸을 감싸는데 여기에서 기인하는 힘의 원천이 스페이스 스톤이라 불리는 '태서렉트'라는 추측이 있었다. <어벤저스>와 <토르> 시리즈에서 토르와 로키 손에서 주거니 받거니 했다가 결국 타노스의 수중에 들어간, 6개의 인피니티 스톤 중 하나다.
에너지 블라스트와 같은 폭발력이나 물체 투과,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어막 그리고 우주와 지구를 연결하는 포털과 같은 이동경로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스톤이다.
캡틴 마블이 소유하게 된 파워는 사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강하고 통제하기 조차 어려웠다. 여기에 도움을 주던 인물이 바로 월터 로슨. 바로 캡틴 마-벨이다.
그녀가 뿜어내는 에너지 블라스트는 마치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쓰던 '에네르기파'와 굉장히 비슷하다. 폭발력 있는 에너지가 손과 발에서 뿜어져 나오고 이를 무기 삼아 상대방과 싸운다. 공중으로 비행할 때면 보다 화려한 색채를 뒤덮으며 '초사이어인'이 된듯한 느낌마저 든다. 보통 마블 시리즈에서 이렇게 변화하는 모습을 두고 '각성'이라 표현하는데 토르가 천둥의 신으로 '각성'한 것과 같은 모습이다.
123분이라는 러닝타임에 힘을 어떻게 얻었고 또 어떻게 쓰이게 되는지 빌런으로 등장하는 인물을 격파하고 다시금 평화로운 분위기를 되찾는 데까지 빠르게 전개하려니 딱히 빌런에게 위기를 맞는 장면은 없다고 봐도 좋다. '한주먹'에 날려버리는 에너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파워가 타노스와 상대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강력함이라고 설명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타노스와 캡틴 마블의 격투는 <엔드게임>에서 본격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닉 퓨리의 두 눈이 멀쩡했던 쉴드의 '요원' 시절로서, 기존 마블 시리즈의 프리퀄인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론 다른 시리즈 대비 시대적 배경이 앞서있다고 보면 좋겠다(참고로 캡틴 아메리카의 <퍼스트 어벤저>가 가장 오래 전의 배경이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이 등장하고 그곳에 1994년 작품인 '트루 라이즈'가 노출되었으니 대략 1995년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지금 이 시대를 감안하면 차량도 옷도 다소 엔틱하고 클래식한 측면도 보인다. 무엇보다 CD 한 장을 컴퓨터에 넣고 로딩하는 과정을 보면 얼마나 '구식'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화의 플롯 자체는 (주인공이니 당연히) 캡틴 마블이 이끌어 나가지만 여기에 닉 퓨리가 큰 몫을 한다. 그런데 퓨리보다도 영화 전체를 사로잡은 캐릭터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구스'라는 고양이. 이 녀석이 등장하는 시퀀스는 전부 '신 스틸'에 가까우니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스의 활약은 영화제작자이자 마블의 수장인 케빈 파이기의 의견에서 비롯되었고 실제 고양이의 연기(?)와 섬세한 CG가 이를 완성했다. 물론 너무 매력적이었다.
결론적으로, (기존의 마블 시리즈와 굳이 비교한다면) 참신한 느낌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고 통상 히어로 탄생의 배경이 잘 나타나는 반면 캡틴 마블은 이러한 설명 자체가 부족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측면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캡틴 마블의 힘이 너무도 강력하고 범접하기 힘든 다른 차원, 다른 세계의 캐릭터라 그런지 너무나 쉽게 나가떨어지는 악역들이 볼품 없을 정도다. 대등한 결투라도 있어야 캡틴 마블이 선보이는 액션과 격투신이 돋보이는 법이고 그러한 시퀀스에서 보일 수 있는 파워가 <엔드게임>에서 더욱 명분이 있지 않을까? 어벤저스를 구하고 타노스로부터 우주를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이라고 할 정도라면 말이다.
히어로 무비가 갖춰야 할 '전형성'을 탈피하지 않으면서도 여성과 히어로의 강력함과 강인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대했던 걸크러시나 마블 히어로가 가진 특유의 위트 등 흥미요소의 부재는 상당히 아쉬운 편이다. <캡틴 아메리카>의 경우 어떤 무기도 뚫을 수 없는 방패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맨몸, 맨주먹으로 부딪혀 빌런들과 상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캡틴 마블 역시 이와 유사한데도 밋밋하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벤저스>와 마블 세계관의 전체를 완벽하게 끼워맞추기 위한 퍼즐조각으로서 이 영화는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브리 라슨 그리고 논란
캡틴 마블의 역할을 소화한 브리 라슨은 연기력으로 봤을 때 오스카도 인정한 인물이다. 1989년생으로 12살이었던 2001년 <매디슨>이라는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2005년에는 [She Said]라는 싱글 앨범을 내며 공식적으론 가수로 데뷔한 이력이 있다. 데스틴 크리튼의 영화 <숏텀12>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캡틴 마블>은 여성 히어로라는 굵직한 뿌리로부터 '페미니즘'이 뻗어나간다.
"오빠는 되는데 난 왜 안돼?", "여자는 조종석에 어울리지 않아", "여자는 안돼!"라는 다양한 대사들을 '여자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역전시킨다. 그것이 감독이 꿈꾸었던 핵심 의도였을듯 싶다. 헐리우드에서 시작해 우리나라로 진입한 '미투 운동'이 사회적 흐름이 되면서 페미니즘은 활활 타올랐다. 메가폰을 잡은 여성 감독이 각본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여성을 포커싱 한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이를 직접 연기한 브리 라슨이 촬영장 밖에서 충분히 공격 받을만한 인터뷰를 한 덕분에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긍정의 의미가 굉장히 많이 퇴색된듯 하다. 결국 그러한 논란이 '평점 테러'를 만들게 된 도화선이 되었다. 쿠키 영상에도 등장했듯 <엔드게임>에서도 캡틴 마블의 활약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평점 테러'와 배우 교체 요구가 지속되어 브리 라슨이 하차하게 된다면 마블 시리즈에서 주연이 교체되는 첫 사례가 될지도 모르겠다(아이언맨에 등장했던 제임스 로드 역의 테렌스 하워드가 출연료 문제로 하차해 이후 돈 치들로 교체된 사례가 있긴 하다. 헐크의 경우도 에릭바나로 시작해, 에드워드 노튼의 바통을 마크 러팔로가 이어받았다. TV시리즈는 제외한다)
고마워요, 스탠 리
그간 마블 시리즈를 관람하면서 딱히 실망한 적이 없는 편이었다. 오히려 ‘역시 마블’이라며 박수를 쳐줄 정도였으니까. 마블 시리즈라면 본 영화가 상영되기 전 마블의 오프닝 테마가 관객들을 설레게 했는데 이번 오프닝에는 그간 카메오로 등장했던 스탠 리의 지난 모습들이 마블의 로고와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울컥하기까지 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짧지만 몇초간 카메오로서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마워요 스탠 리'라는 이 짧은 한 문장이 마블이 펼쳐놓은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우주를 깊게 울린다.
※ 같이 보는 글
https://brunch.co.kr/@louis1st/225
https://brunch.co.kr/@louis1st/206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리뷰였습니다. 브리 라슨의 논란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느냐, 마느냐는 당연히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 본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