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t In Peace, 움베르토 에코 그리고 하퍼 리
"얘들아, 이 책 보고 다음 주까지 독후감"
"우우우"
어린 시절, 독후감이 내게 주는 느낌은 글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숙제'보단 역시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 게 더 좋았을 뿐.
그런데 어떠한 숙제보다 책을 보고 '독후감'을 쓰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고 느낀 적은 있다.
중학교 때 내 담임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치셨다. 그때 그 선생님이 여러 가지 책, 특히 국내 작가들의 책을 읽어보라 주신 적이 있다. 그 틈에 있었던 책 한 권.
바로 <앵무새죽이기>
책 표지를 보며 '하퍼 리'라는 작가의 이름보다 '퓰리처상 수상작'이 더 눈에 띄었다.
'이게 뭐지? 좋은 건가? 노벨상 같은 건가?'
퓰리처상(Pulitzer Prize)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음악/문학상으로 알려져있다. 1847년생 헝가리 출신의 미국 저널리스트인 조셉 퓰리처가 1911년 사망하면서 유언으로 제정된 상이기도 하다.
소설<앵무새죽이기>는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서 공존하는 선과 악 그리고 편견과 양심에 대해 써 내려갔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그레고리 펙과 로버트 듀발이 출연했다.
그레고리 펙은 1963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하퍼 리(Nelle Harper Lee)
1926년 출생하여 주 의회 의원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와 함께 놀던 소꿉친구는 이후 소설가로 활동했는데 이름은 트루먼 커포티, 1958년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있다.
하퍼 리는 앨라배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항공사 예약 담당으로 근무하기도 했단다.
그녀의 이름은 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됐던 <앵무새죽이기>는 자전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고도 한다.
마치 남자아이 같던 스카웃은 본인과 닮은꼴이고 변호사로 등장한 애티커스는 하퍼 리의 아버지를 묘사한듯한 느낌. 하퍼 리의 아버지는 변호사로도 활동한 바 있다.
책을 딱 한번 읽고 나름 재미있다고 느끼긴 했으나 그 안에 담겨있는 작가의 진심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퍼 리라는 인물이 세상에 남기고 간 작품들은 분명 가까운 서점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듯하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난 '앵무새'의 느낌 그리고 작가의 진심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퍼 리, 그녀의 명복을 빕니다.
2월 19일.
하퍼 리와 더불어 또 하나의 큰 별이 졌다.
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
이탈리아 출신으로 문학 이외 많은 분야에서 활동했다.
기호학과 미학으로 더욱 알려져있고 이 분야로 대학에서 강의도 해왔다.
알고 보면 문학 분야는 그 뒤다.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에코의 여자친구 권유로 2년 반 동안 책을 썼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1980년작 <장미의 이름>이다.
솔직히 난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그리고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 아니 쉽게 말해 '재미없겠다'라는 표현이 낫겠다.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그리고 프란시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이 움베르토 에코 자신의 기호학이 어우러져 '베스트셀러'로 탄생한 작품이다.
난 <장미의 이름> 이후에 출간된 <푸코의 진자>로 움베르토 에코에 대해 알게 됐다.
꼭 읽어봐야 된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그리고 여러 매체에 나오는 책들을 골라서 읽다 보면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아직 내가 작가들의 깊은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오히려 이 작품을 토대로 제작된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를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밀란 쿤데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파울로 코엘료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에 이르기까지 같은 문학 분야이지만 서로 다른 주제와 세계관 등이 담긴 일부 작품들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존재한다.
<푸코의 진자>는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 됐다. <장미의 이름>이나 이 작품 모두 '추리'라는 소설의 형태가 녹아있는데 <장미의 이름>은 뭔가 원론적이고 딱딱하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푸코의 진자>는 책 타이틀부터 손에 닿기 어려웠지만 한 번쯤 펼쳐볼 만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이 작품은 1989년 뉴욕타임스(NYT)에서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장미의 이름>만큼이나 유명세를 탔다.
당시에는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교황청으로부터 "쓰레기"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한국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은 다른 나라와 다른 관습일 뿐"이라며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언급했던 프랑스의 여배우인 브리짓 바르도에 일침을 가한 적도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렸던 2개의 거성이 졌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한 달에 한 권 많으면 한 달에 2권씩 책을 읽어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출퇴근 방법이 달라지면서 점차 책이 멀어졌다.
재작년만 해도 약 10권의 책을 읽었는데 작년 5권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움베르토 에코나 하퍼 리의 이름을 브런치에 올리는 것은 다시금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예전에 읽었던 그 책들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느껴보고자 함이다.
이제 책을 찾아봐야겠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