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라는 오브제에 존재감을 불어넣었을 때 그림은 영화를 관통한다
하얀 캔버스 위에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히는 것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형형색색 배경 위로 피사체가 그려지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서 기인하는 입체적인 생동감과 놀라운 표현력은 누구나 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이 바로 미술이고 디자인이며 또 예술로 승화하기도 한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플롯으로 쓰이고 제대로 된 각본이라는 결과물을 낳았을 때 감독과 배우가 만나 영화라는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모든 작품이 그러한 것은 아닐 테지만 영화 속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났던 오브제(objet)들은 우리 기억 속 어딘가에 각인되기도 한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각인은 선명하게 새겨지고 그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스페인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인 헤수스 프루덴시오(Jesús Prudencio)가 영화 작품 속에 등장했던 자동차를 캔버스 위에 그려 존재감을 불어넣었다. 이렇다 할 바탕도 없이 단순하지만 배경색과 조화를 이루는 자동차는 작품 속에 등장했던 특징을 최대한 담고 있다. 덕분에 명확한 타이틀이 없어도 어떠한 작품을 의미하는지 영화에 대한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자동차가 생겨난 이후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배우들이 운전대를 잡아왔다. 이는 누아르, 드라마, 멜로, 액션, SF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한다.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에서 그랜드캐년 절벽 위를 날던 클래식한 '썬더버드'부터 <빽 투 더 퓨처, Back to the future>의 타임머신으로 튜닝되었던 DMC의 드로리안, <브레이킹 배드>에서 주인공과 함께 고군분투(?) 했던 캠핑카 플리트우드 바운더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영화는 주인공과 함께 했던 자동차를 상징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냈고 헤수스 프루덴시오 작가는 영화가 보여주던 색감과 함께 자동차를 드러내 캔버스로 옮겨왔다.
SF 영화 장르를 포함하여 영화 성격에 따라 자동차의 외관도 달라지는 경우들이 있다. 테슬라의 '사이버트럭'은 일론 머스크가 야심 차게 선보인 거대한 괴물인데 뉴욕 시내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마치 미래에서 온 자동차'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매우 투박하지만 또 달리 보면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세련미를 갖췄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떤 SF 영화를 찍는다면 사이버트럭을 촬영장에 모셔가도 될 것만 같다.
무려 36년 전 개봉했던 <빽 투 더 퓨쳐>의 드로리안은 1980년대에 제작되었다. 딱히 '미래형'으로 보일만한 자동차가 없었던 당시 DMC사의 드로리안은 자동차 뒤편을 완벽 개조하여 타임머신처럼 꾸몄다.
<고스트 버스터즈>는 1984년 처음 개봉되었고 1990년에 속편을 제작했다. 그리고 30년이 흐른 2020년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가 재탄생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작에 출연했던 빌 머레이와 시고니 위버 등도 출연한다고 한다.
오드리 헵번이 <로마의 휴일>에서 몰고 다니던 베스파나 케이퍼 무비를 대표하는 <이탈리안 잡> 그리고 영국 TV 시리즈였던 <미스터 빈>을 통해 화제가 되었던 미니 쿠퍼 등을 이렇게 그림으로 보니 참 아기자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모두가 똑같은 자동차 그림일 뿐이지만 그 자동차가 어느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느냐에 따라 존재감과 상징성 자체가 달라진다. 비가 오는 날 흠뻑 젖은 주인공 옆으로 수십대, 수백 대의 자동차가 지나가는 롱테이크라도 단 한대만 주인공과 함께 빛이 날 뿐이다.
스핀오프를 포함해 10편의 작품을 쏟아낸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도 수백 대의 차량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디젤의 자동차로 기억이 남는 것은 역시 닷지 차저가 아닐까? 고출력을 뿜어내는 고성능의 자동차로 슈퍼카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이는 머슬카라고 지칭하며 빈 디젤의 근육과 닮은꼴 같은 느낌이다.
빈 디젤만큼 야성미 돋보이던 젊은 시절의 멜 깁슨이 1979년 개봉한 <매드 맥스>에서 포드의 팔콘(Falcon XB GT)을 몰고 등장한 바 있다. 1970년대 후반에 제작된 근미래 배경의 영화라 나름대로 자동차에 신경을 쓴 모양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어울리는 자동차의 모습이라 그리 평범하진 않은 듯하다.
※ 아래 사이트를 참고했습니다.
- Cars and films : carsandfilms.com에서 더 많은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 jesusprudencio.com : <Cars and films>에 작품을 올렸던 디자이너 헤수스 프루덴시오의 개인 사이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