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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Jul 12. 2021

캐릭터의 내적인 모습과 숨겨진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

알베르토 망겔의 엉뚱하면서 철학적인 이야기, <끝내주는 괴물들>


하늘을 날아다니며 초인적인 힘을 뿜어내는 슈퍼맨은 쫄쫄이 팬티에 타이즈를 입고 망토를 휘날렸다. 영화와 TV 드라마로 여러 차례 제작된 사례가 있었으니 아는 사람은 알만한 슈퍼 히어로의 대표주자라 하겠다. 극 중에 등장하는 가상 물질 '크립토나이트'라는 광물 성분에 매우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알베르토 망겔은 또 다른 시선으로 슈퍼맨의 약점을 언급했다. 원치 않게 고립되었던 슈퍼맨의 평범한 과거 시절과 골골거리는 허약자의 전형,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연약함과 그의 능력으로 인한 발암의 위험성까지 고작 다섯 페이지 분량으로 다양하게 다뤄졌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바라봤던 슈퍼맨의 모습과 전혀 다른 이면이다. 더구나 내적 외로움까지 훑어보며 동질감을 느꼈다고 하니 알베르토 망겔이 캐릭터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 엉뚱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슈퍼맨부터 드라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세르반테스가 말하는 돈키호테의 원작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캐릭터의 숨겨진 이면들을 37개의 이야기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 한 권의 책으로 탄생시켰다.

바로 알베르토 망겔의 <끝내주는 괴물들>이다. 


알베르토 망겔의 <끝내주는 괴물들> by 현대문학  photo by pen잡은루이스


보통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고 만다. 화려한 캐릭터일수록 캐릭터의 후광으로 인한 눈부심으로 캐릭터의 내적 갈등과 이면을 좀처럼 보기 힘들 때가 있다. 앞서 언급한 슈퍼맨의 연약함이라던지,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처한 어쩌면 저주에 가까운 수면이라던가, 아름다운 선을 그리는 어느 여인의 목선과 드라큘라 백작의 연관성 역시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아니었을까? 

최근에 가장 열심히 보는 TV 드라마가 바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다. 주인공은 이익준, 채송화, 안정원, 김준완, 양석형이지만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우리 시야 안에 들어온다. 제작진은 단역들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보여주었다. 어쩌면 의사들의 평범한 이야기이고 기존에도 있었던 것처럼 병원이 배경을 이루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소소하고 진솔한 이야기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라 더욱 진실되게 가슴을 울린다. 물론 판타지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말이다. 

미디어를 통해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남은 사오정의 의외의 모습들이라던지 알프스 소녀로 잘 알려진 하이디보다 그녀와 함께 살던 할아버지를 다루면서 조연과 단역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이처럼 알베르토 망겔은 주인공 캐릭터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에 대한 관찰도 재미있게 다뤘다. 


<하이디의 할아버지> drawing by 알베르토 망겔.  photo by pen잡은루이스


주요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때론 시니컬하게 바라볼 때도 있다. 오롯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알게 된 캐릭터를 다룰 때면 반갑기도 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캐릭터를 만나게 되면 새로운 것을 수집하는듯한 재미도 더해졌다.

어떤 영화 작품이 전례 없는 흥행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혹은 이야기의 스케일을 키우고자 또 다른 스토리가 파생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때론 스핀오프로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프리퀄 작품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알베르토 망겔이 다룬 서른일곱의 캐릭터 이야기가 이처럼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는 걸 이들을 창조한 작가들이 알게 된다면 어떨까? 보바리 부인의 남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로빈슨 크루소,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사오정, 신밧드, 프랑켄슈타인, 폭군 반데라스 등 수많은 캐릭터를 이미 알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 이야기들은 철학적인 다큐멘터리이자 블랙코미디이고 새로운 스핀오프 작품이 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이유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느 책에서 그려졌던 캐릭터들이 또 다른 캐릭터의 양산으로 잊혀지고 난 뒤, 알베르토 망겔에 의해 되살아나 곱씹어보고 들여다보고 되새겨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문학적 캐릭터의 현실적 반영으로 의외의 매력이 더해진다. 


알베르토 망겔이 불어넣은 또 다른 매력.  photo by pen잡은루이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두 가지 캐릭터를 덧붙여본다. 하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고 하나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괴물은 사실상 신의 축복을 거스르며 생명 윤리를 파괴한 결과물이다. 인간의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지만 결국 공포스러운 기괴함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며 괴물을 탄생시켰다. 스스로도 탄생의 운명을 탓하며 도덕성과 윤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의 반려자를 만들어주면 영원히 사라지겠다고 한다. 온전한 것을 짜깁기하여 흉물이 되어버린 괴물의 형상은 누가 봐도 혐오스럽고 무섭지만 결국 그 외형과 내면 속에 우리의 모습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더욱 공포스럽기도 하다. 


또 하나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자신의 영혼을 팔아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파우스트의 스토리는 영혼과 욕망에 대한 주제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원하는 것을 주며 욕망을 채워주는 대신 계약이 끝나는 순간 영혼을 취했던 일종의 영혼 거래상이자 악마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메피스토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알베르토 망겔은 메피스토의 웃픈 운명을 이야기했다. 과거 파우스트를 비롯한 인간의 영혼은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부와 권력, 명예와 정치를 위해 누구나 쉽게 영혼을 팔아버리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영혼의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고 메피스토 역시 값싼 영혼으로 장사하기 힘들어졌을지 모른다는 웃지 못할 블랙코미디로 쓰였다.  


출판사 현대문학 제공으로 작성한 글입니다만 캐릭터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던 매력적인 계기가 되었답니다. 더불어 충분히 익숙한 캐릭터의 이면과 미처 알지 못했던 캐릭터를 새롭게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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