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에세이 #오키나와 2편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10시.
눈곱도 떼지 않고 창을 열어 밖을 내다봤다.
여전히 흐린 날씨에 비도 조금씩 내리고 있는 듯했다.
일기예보가 실수였기를 원했지만 잘 맞아떨어졌다. 야속하다.
사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챙겨 먹으려고도 해봤지만 시간에 치이지 않기로 하고 편히 늦잠을 청했다.
다행히 조식 쿠폰은 점심에도 가능했다.
1층에 마련된 점심 뷔페로, 브런치이자 아첨을 즐겼다.
한국인이나 중국인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본 사람인 듯했다. 일본 본 섬에서도 거리가 떨어진 곳이고 우리나라로만 따져봐도 제주도 수준이니 일본인들도 꽤 오는 모양이다.
스시, 커리, 나베까지 다양한 음식들이 눈에 보인다. 더구나 아이들을 위한 코너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레스토랑 옆으로는 바로 바다가 보인다. 물론 흐린 날씨 덕분에 분위기는 그랬지만 날씨가 좋으면 음식 먹는 맛도 배가 될 듯 싶었다.
이 곳에서의 마지막 날이 가장 좋은 날씨였다. 다시 글로 쓰이게 되겠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쨍쨍하게 변해버린 날씨가 너무나도 얄미웠다.
다양하게 차려진 식사를 단 두 접시로 마무리하고 미리 예약해둔 렌터카를 찾으러 이동했다.
바우처에 나와있는 맵으로는 분명 가까워 보였으나 택시를 타고 이동하라고 한다.
아메리칸 빌리지에 늘어서있는 택시 하나를 잡아탔다.
일본 도쿄의 택시보다 더 작고 낡은 택시.
"도요타랜드 마데 오네가시이시마스"(도요타랜드로 가주세요)라고 짧은 일본어로 이야기하니
"하이"라고 하면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짓을 하며 뭐라고 짧게 이야기하는 기사. 대충 보니 지름길로 가겠다는 모양이다.
어쨌든 기본요금 수준으로 목적지에 도착.
도요타랜드는 렌터카도 있었지만, 중고차와 신차를 판매하는 듯 보였다.
멀뚱멀뚱.
근데 여기가 어디지? 어디로 가야 되는 거지?
맵에는 엄청 쉽고 간단하게 설명이 되어있지만 주변에 쓰여있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어지러웠다.
심지어 어디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다짜고짜 바우처에 나와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 사무소는 받지 않았다. 토요일이라 부재인 건가?
그리곤 일본 사무소로 전화했다.
"모시모시..."
"아... 저... 아노..." (에라 모르겠다) "Can you speak English?"
"No..."
어쩔 수 없었다. 전화를 붙잡고 있어봐야 소용이 없을 듯했다.
도요타 전시장 바로 옆에 붙은 휴대폰 판매대에 마침 직원이 있었다.
"렌터카를 찾으러 왔는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라고 짧게 말을 건넸다.
표정으로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지만 아주 친절하고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너무나 다행.
렌터카 대리점을 가니, 마스크를 쓴 직원이 전화통을 붙잡고 내내 통화를 했다.
5분이 지나자, 전화를 끊고 미안하다고 하더니 이것저것 서류를 준비한다.
다행히 내 이름으로 예약된 차가 리스트에 있었다. 일단 안도감.
우산을 씌워주며 바로 앞에 있는 차로 안내하고는 심플하게 설명을 해준다. 그만큼 차도 있을 것만 있는 '심플'하고 '콤팩트'한 차였다.
도요타 비츠!
도요타 비츠는 1천 cc의 배기량으로 굉장히 콤팩트한 해치백형 차량이다.
이 차량은 1999년 일본 내에서 판매를 시작하였고 영어인 VIVID와 독일어인 WITZ를 붙인 합성어 VITZ로 불린다.
차도 작고 특별한 건 없지만 특별할 필요도 없었고 필요한 건 다 존재했다.
네 바퀴가 잘 달려있고, 와이퍼도 잘 움직이며 에어컨도 시원하게, 내비게이션도 한국말로 잘 나왔다.
흠집 하나 없는 새 차의 향이 뿜어져 나왔다. 쾌적하기까지 했다.
무사히 차를 받았고 앞뒤 좌우를 마구 살피며 액셀을 밟아 천천히 움직였다.
너무 어색했다. 그나마 차 한 대 잘 다니지 않는 도요타랜드이기는 했으나 바로 옆에 대형마트가 있어 간간이 차가 들어왔다.
"안 되겠다" 일단 조금 움직여보고 다시 주차해서 마트에 들러보기로 한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된 거 같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에서 내려 마트로 향했다.
비가 조금 오기도 했고 거리도 조금 있었지만 코끼리 코 모양의 절벽이 절경이라는 '만좌모'에 가기로 했다.
이것도 다 차가 있으니 가능한 것.
마트에 들러 커피나 씹을 거리 등 필요한 것을 구매하기로 했다.
당연하지만 다양한 식품들로 꾸며진 마트의 모습을 보니 몽땅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기저기 마트 한 바퀴를 둘러보니 10분이 넘어갔다. 필요한 양만큼 작은 사이즈로 들어간 식료품들은 진짜 '일본'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Nissin의 컵누들마저도 '미니' 사이즈가 존재해 박스채 가져오고 싶을 정도. 계산대에 올라간 식료품이 한가득이 되어버렸다.
차에 짐을 싣고 내비에 맵 코드를 찍었다.
맵 코드란, 우리나라의 내비게이션처럼 주소나 명칭으로 조회하는 것이 아닌 지역의 숫자 코드를 입력해 찾아가는 것으로 대부분 지역에 코드가 존재했다.
맵 코드를 찍으니 대략 30분 정도가 걸린단다. 유료인 고속도로를 타고 근처 IC에서 빠진 후 국도만 조금 타면 된다고 한다.
조심스레 도로로 나갔다. 차량들 대부분이 서행을 하고 한국에서 쉽게 들을법한 경적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나만 조심하면 될 듯 싶었다.
내가 몰고 있는, 내가 타고 있는 이 차 자체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도로는 더 작고 좁아 보였다.
조심조심 규정속도를 준수하고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하마터면 엉뚱한 길로 빠질 뻔했으나 제대로 올라가 내비가 알려주는 대로 달려갔다.
팔이 후들후들, 차가 흔들리지 않도록 10시 10분 방향으로 정확하게 핸들을 꼭 부여잡았다.
신나게 달리고 달리니 어느새 익숙해졌다. 단지 내 오른편으로 씽씽 달려가는 차량들을 보니 어색하긴 마찬가지.
내비게이션에서는 합류하는 차량을 조심하라 일러준다.
그리곤 곧 도착하니, 돈을 준비하라고 한다. 조금 있으면 만좌모에 도착.
만좌모(Cape Manza)는,
오키나와에 있는 해안 절벽으로 석회암이 침식되어 단면을 만들어내고 기괴한 모습이 펼쳐져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넓은 잔디밭을 보고 18세기 류큐왕국의 쇼케이가 만 명이 앉아도 충분한 벌판이라고 한 것이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코끼리의 코를 닮은 모습도 이 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제주도의 섭지코지 느낌이 든다.
날씨가 좋았다면 이 곳에 펼쳐진 푸른 바다가 달리 보였을 것이다.
바로 옆 리조트에 묶고 있는 사람들이나 이 곳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이 옆 해안가에서 해양스포츠를 즐긴다고 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뱀 조심"이라는 문구가 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단순한 "뱀 조심"도 아니고, 맹독을 가진 뱀이 자주 출몰한다는 문구.
"자 다 봤으니 후딱 나가자. 진짜 뱀 나올 것 같다"
그랬다. 우거진 풀 사이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올듯한 분위기. 잘 구경하고,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다.
만좌모를 구경할 땐 그나마 나았는데 차로 돌아오니 비가 거세졌다.
비에 홀딱 젖은 차에 올라타 다시 호텔로 가기로 한다.
비치 타워 호텔 부근에서 랍스터 요리로 유명한 '레드 랍스터'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고 이후 바로 앞 대형마트인 이온몰(AEON Mall)에 들르기로 했다.
만좌모까지 왔던 길을 반대편 차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심에 차량은 조금씩 늘어났다.
초소형 자동차부터 박스형 차까지 다양한 차들이 있었지만 중형이나 대형 그리고 거대한 SUV는 찾기 힘들 정도였다.
하긴 기름값 펑펑 쓰면서 제주도만한 땅덩어리를 돌아다닐 일이 얼마나 있을까?
어찌 보면 현실에 맞는 규격일지도 모르겠다.
차를 몰다 보니, 이만한 차 하나 있어도 괜찮을 듯 싶었다. 5명까지도 크게 무리 없을 듯했다.
물론 1천 CC의 배기량이 얼마나 견뎌줄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만좌모 왕복으로 도로 연수는 끝이 났다.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레드랍스터로 나름 럭셔리한 저녁을 만끽했다.
"곤반와"
들어오자마자 나름대로 저녁 인사를 일본어로 건넸더니 이후 쭉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종업원.
"미안해요. 일본 사람이 아닙니다"
메뉴판에서 화이트와인과 랍스터를 포함해 이것저것 주문했더니 더욱 허기가 졌다.
곧이어,
2명이 먹을만한 수준의 랍스터를 주문했더니 갑자기 2마리의 살아있는 랍스터를 들고 오는 종업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둘 중에 뭘로 하실래요?"
이렇게 직접 녀석들을 보여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겉으로 봐도 크게 차이가 없어 그나마 튼실한 녀석을 골라 잘 보내주기를(쪄주기를) 부탁했다.
찜통에 들어가 제대로 익혀지기까지 꽤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벌겋게 익은 랍스터가 등장했다.
튼실한 집게발과 화이트와인 그리고 이 곳의 분위기가 주는 편안함과 나른함이 아주 특별했다.
호텔 앞에 위치한 마트는 우리나라의 흔한 대형마트와 다를 바 없었다.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 그 날의 저녁거리를 사는 곳으로 다양한 식료품과 의류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관광지이니만큼 기념품 코너도 존재하고 있었다.
신선함을 자랑하는 스시부터 바로 익혀먹을 수 있도록 깔끔하게 손질된 생선류, 먹음직스러운 와규까지 배가 어느 정도 찼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침이 고였다.
오키나와의 전통주인 '아오모리' 한 병과 아주 신선한 참치회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은 어디로 가볼까?
오키나와 편을 작성하다보니 사진도 글도 다소 길어졌습니다.
2편에서 마무리 하려고 열심히 해봤지만 스크롤 압박이 있어
3편으로 한번만 더 나누고자 합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곧 3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