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고 바람이 불 때마다 저 넓은 대지 위에 드리워진 풍경도 서서히 바뀌어간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눈이 오면 눈이 쌓이는 자연 그대로 변화무쌍할 것도 없이 그저 황량하게 느껴지는 이곳은 1920년대 미국 서부 몬태나(Montana)주다. 2009년 작품 <브라이트 스타> 이후 12년 만에 <파워 오브 도그>라는 작품으로 스크린에 돌아온 제인 캠피온(Jane Campion) 감독은 자신의 고향 뉴질랜드를 영화의 배경으로 삼았다. 잘 알다시피 1992년 영화 <피아노>로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거머쥔 여성 감독인데 이번에는 이 작품으로 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손에 쥐었다.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영화를 통해 줄곧 메시지를 던져왔다. 그 안에는 억압이 있었고 때론 폭력도 존재했으며 아름답지만 절망적인 사랑 이야기도 있었다. 이번 작품은 한없이 거칠고 묵직하며 단단하다. 그러면서도 유연하고 섬세하게 다가간다. 극장에서는 11월 17일 개봉했고 넷플릭스에서는 12월 1일 공개되었다. 모처럼 좋은 영화를 만났다.
※ 아래 작성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유의하세요.
황량한 대지 위로 수많은 소들이 모자를 눌러쓴 카우보이들의 손짓 아래 이리저리 뛰며 모래바람을 일으킨다. 그 선두에는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이 있고 그의 뒤로 한껏 교양미를 뿜어내는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가 있다. 겉보기에도 둘의 모습은 형제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남남인 듯 느껴진다. 필이 그저 날 것의 거친 사내라면 조지는 한없이 부드러운 예일대 출신의 엘리트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로즈(커스틴 던스트)가 나타난다. 로즈는 죽은 남편의 부재를 슬퍼하지만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를 보며 살아간다.
필과 조지로 앞장세운 카우보이들의 초반부는 로즈와 피터를 통해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맨손으로 수소를 거세하며 피로 범벅되는 모습만으로도 필은 그저 날것의 마초남이었다. 카우보이들 사이에서도 대장으로 군림하지만 정작 이들을 벗어나 홀로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과거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브롱코 헨리를 추억한다. 때에 따라서 굉장히 다른 면이라고 느꼈다. 분명히 남성성 짙은 와일드함이 있지만 그 사이에 부드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조지는 로즈에게 진심으로 다가간다. 외로움과 슬픔을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조지의 진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로즈이지만 필은 로즈와 피터 모두에게 아주 거칠고 위압적으로 다가가며 몰아친다. 동생에게도 그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저 여자는 너의 돈 때문에 결혼한거야"
엄마 곁에서 일을 돕던 순수한 소년 피터는 어느새 의대에 진학하게 되면서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된다. 로즈에게는 조지가 있었지만 아들의 부재는 이미 세상을 떠난 전 남편의 부재만큼 크다. 더구나 필의 존재 자체가 로즈에게는 매우 고통이다. 거친 행동과 서슬이 퍼런 차가운 말투는 로즈와 피터는 물론 동생 조지와 부모에게도 거의 동일하게 쏟아진다. 로즈는 맨 정신으로 필을 대하기 어려워 몰래 술에 의존하고 만다. 집으로 돌아온 피터는 슬쩍 필에게 다가가며 친근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풋풋한 듯 차가우며 애틋한 듯 보여도 팽팽한 긴장감이 녹아있다. 필과 브롱코 헨리 사이에 있던 동성애적 감정은 친구 사이에 있을법한 우정 그 이상이 되어 필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이를 알아차린 피터가 그 사이를 파고들며 필의 거친 외면을 뚫고 들어간다. 영화의 엔딩신에 등장한 성경 말씀이 생각난다.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고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소서" - 시편 22장 20절
영화의 제목은 이렇게 성경 구절과 이어진다. 피터가 브롱코 헨리와 함께 바라보던 저 너머의 산세는 피터에게도 동일시된다. 그저 개의 형상일 뿐이지만 정작 피터에게는 자신과 엄마를 괴롭히는 위험한 인물들이 바로 '개의 세력'이었던 것이다. 나의 유일하고 소중한 존재는 다름 아닌 '엄마'이고 죽은 아빠의 자리를 채우는 조지다. 즉 피터에게 유일한 것은 그저 가족이다.
총질을 하고 무엇인가 강탈하는 평범한 웨스턴 무비가 아니라 거칠고 차가우면서도 토끼털처럼 아주 부드러운 드라마 한 편이라 생각했다. 피칠갑하지 않아도 섬세하고 예리하며 잔혹한 복수극이 이 영화의 정체성이라 하겠다. 이 작품은 미국 작가인 토마스 새비지(Thomas Savage)의 1967년작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한 영화다. 제인 캠피온 감독 역시 소설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다던데 그 소설이 이렇게 섬세한 영화 한 편으로 만들어졌다.
극 중에서도 등장하지만 당시 흔하지 않은 자동차 한 대와 증기기관차가 아주 초기의 산업혁명 시대를 보여준다. 필이 살던 외딴 시골과 도시를 잇는 그 모습 자체는 필이라는 정착된 인물과 피터라는 이방인의 (일종의) 결합 같은 것이다. 또한 자신이 살던 집 안으로 조지가 로즈에게 선물한 피아노가 넓게 자리를 차지한다. 줄곧 울리는 피아노의 선율은 필이 가진 밴조(banjo)라는 악기 소리에 그대로 묻히고 만다. 그 두 사람의 사이가 그러했듯 그 시퀀스 자체로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불협화음'임을 오롯이 보여준다.
자신의 테두리 안에 무엇인가 들어오는 것을 혐오했던 필에게 이들은 밀어내야 할 존재에 불과했다. 브롱코 헨리 역시 필에게 그러한 존재였을테지만 그의 죽음을 기리고 또 추억할 만큼 자신의 어떤 자리를 내어준 셈이다. 그 빈자리를 채우고 그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밧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하나둘씩 가죽을 잘라 꼬아 만들어낸 밧줄은 빈틈이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팽팽하다. 물론 그만큼 정성 들여 오랜 시간 엮어야 한다. 극 중에서도 몇 차례 언급되듯 피터의 아빠는 목을 메 자살했다. 피터의 아빠를 죽게 만든 그 밧줄은 필이 피터에게 전해줄 선물이면서도 피터가 필을 죽게 만든 탄저균의 근본적 물질이었다는 점을 보면 극 중에서는 '죽음'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 개인적 의견이 포함된 영화 리뷰입니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 영화 속 메시지에 대한 해석들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