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디스토피아로 만들어낸 연상호의 <지옥>
<사이비>와 <돼지의 왕>처럼 굵직한 메시지를 던졌던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그 세계관을 확장해 <부산행>이나 <반도>와 같이 실사 영화로도 이어졌다. 특히 <부산행>은 2016년 개봉 당시 천만관객을 넘어서며 대한민국 영화 역사에 짙게 새겨지기도 했다. 서양학 전공이라 그런건지 몰라도 (폭력적이고 자극적 의미의) 성인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왔던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이름 석자가 새겨진 웹툰 <지옥>을 실사 작품으로 만들어 마침내 넷플릭스에 띄웠다. 연상호 감독의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면서 <킹덤>과 <D.P> 그리고 <오징어게임>을 잇는 K콘텐츠에 합류하게 된 셈이다.
※ 웹툰 <지옥>은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렸고 연상호 감독이 스토리를 맡은 공동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은 상명대학교 서양학과, 최규석 작가는 상명대학교 만화학과를 각각 전공했다.
<지옥>을 이야기하기 전에 굳이 연상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언급한 이유는 그가 만들어낸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때문이다. ‘평범함 속의 디스토피아’라는 의미로 이 글 부제에 기재한 것처럼 모든 이야기들은 지극히 평범한 주변 이야기이지만 러닝타임을 내달릴수록 광기를 일으키며 잿빛으로 칠하고 흑색으로 덧칠해 짙은 어둠을 만들어내곤 했다.
천만관객을 이룩한 <부산행>은 어떠한가. 세상은 좀비로 가득한, 말 그대로 '생지옥'으로 변해갔다. 멀쩡한 사람들이 올라탔던 KTX는 단 하나의 좀비에 의해 점차 핏빛으로 물들며 지옥행 열차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사람의 목을 물어뜯는 것은 좀비의 날카로운 이빨이었고 그 입구멍에 밀어 넣은 것은 아주 멀쩡한 사람들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희생양이 필요했던 누군가는 다른 이들을 방패 삼아 자신의 생존본능을 먼저 내세웠다. 그래서인지 김의성이 연기한 캐릭터 '용석'이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 엔딩에 살아남은 두 사람은 좀비가 가득한 세상에서 오랜 시간 버텨낼 수 있었을까? <부산행>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연상호 감독 작품은 강동원 주연의 <반도>였다. 이미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좀비는 그저 풍경에 불과했다. 결국엔 살아남기 위한 사람과 그 상황을 잔악하게 즐기는 이들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기존 애니메이션부터 위에서 언급한 두 작품 모두 염세적이다. 이번 작품 역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디스토피아의 세계관이다. <사이비>의 광기가 들어있고 <부산행>과 <반도>의 좀비 떼처럼 이미 넋이 나간 맹신과 불신과 광신이 함께 섞여있었다.
※ 아래 내용부터는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 작품의 플롯은 이러하다.
어느 날, 기이한 존재로부터 자신이 언제 죽게 되는지 날짜와 시간을 고지받는다. 그리고 고지받은 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신의 사자들이 나타나 무차별적인 심판으로 당사자를 고통 속에 몰아넣고는 눈부신 섬광을 뿜어내며 육체와 영혼을 휩쓸어간다. 섬뜩하고 잔혹하게 극의 시작을 알린 <지옥>의 전반적 스토리는 신의 사자들의 단죄와 심판 그리고 새진리회라는 종교와 새진리회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은 애초에 어떤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고 정의롭지 않은 특정 인간을 향한 단죄라고 주장하는 새진리회에는 정진수(유아인)라는 의장이 있다. 의장이라고 하지만 광신도들 앞에 서있는 일종의 교주나 다름이 없다. 신의 고지를 받은 사람과 새진리회와 맞서려는 사람들을 응징한다며 화살촉이라는 광기 어린 집단이 더욱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경찰 진경훈(양익준)이나 민혜진 변호사(김현주)가 그러한 인물들에 속한다. 작품은 전체 6부작으로 이야기의 중심에는 민혜진 변호사가 있다. 극의 앞뒤로 보면 진경훈과 유아인이 선두에 서고 뒤로는 박정민이 연기한 배영재, 원진아가 연기한 송소현이 있다. 우리가 다른 작품에서 익히 보았던 인물들 옆으로 박정자로 열연한 배우 김신록이 있는데 묵직한 신스틸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보면서 휴대폰을 들고 검색까지 해봤다. 서울대 출신의 배우라 옥자연처럼 회자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박정자 캐릭터는 시즌2를 향한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을법한 캐릭터다.
사실 '신'이라는 존재 앞에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지만 고지를 받고 신의 사자에 의해 지옥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보게 되는 목격자라면 혹은 당사자라면 그 누구도 멀쩡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연'이라는 것을 통해 결코 평온하지 않은 누군가의 처참한 죽음을 카메라에 담고 온 세상에 알리는 기자들이 있고 유튜버들이 있다. 또한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제삼(3)자들도 있다. ‘죽어가는 이’를 바라보며 남은 가족들에게 손가락질하게 만드는 광기 어린 종교와 (일부) 대중들은 판타지 같은 스토리 안에 논픽션인 듯 사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연상호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묵직한 돌멩이가 <지옥>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 던져진다. 무엇이 비현실이고 어느 것이 현실의 풍경인가? 신의 사자보다도 무서운 것은 진실을 가리고 숨기는 행위이며 왜곡된 사실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 더구나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방관하고 주먹질에 발길질을 더하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넷플릭스에는 K-콘텐츠라고 불리는 국산 오리지널 콘텐츠가 다수 존재한다. 심지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면서 꾸준하게 주목받고 있다. <오징어게임>으로 인해 넷플릭스 구독자들의 K-콘텐츠를 향한 기대감은 남다르다. 그래서인지 연상호 감독의 <지옥> 역시 애초부터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오징어게임> 역시 피가 튀는 잔혹함이 있지만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지옥>은 섬뜩하고 묵직하며 어둡고 공포스럽다. 같은 K-콘텐츠라고 해서 <오징어게임>과 <지옥>을 대놓고 비교한다는 것부터 무리가 있을 수 있겠다. <오징어게임>으로 쏠려있는 대중들의 기대와 관심이 <지옥>으로도 이어지게 될지 예측하는 이야기들이 미디어를 통해 쏟아진 상황이니 여기선 더 언급하지 않겠다.
결론적으로 <지옥>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할 듯하다. 연상호가 만들어낸 디스토피아적 관점이나 어두운 세계관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 느껴진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더욱 그러하다. 아기자기함은 물론이고 웃음 지을 수 있는 구석 하나 없이 저돌적으로 밀고 간다. 연상호 감독이 주로 던지는 메시지 역시 폭력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인간이 가진 나약함과 단죄 그리고 맞서 싸우는 정의 더불어 미디어가 가진 양면성이다. 물론 <지옥>에서도 그러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다만 전체 6화로 풀지 못했던 개연성 부분과 조금이나마 작위적으로 보였던 부분들 더불어 스토리 라인에서 놓쳐버린 캐릭터들의 남은 이야기들을 다음 시즌에서 잘 풀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