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춘추전국시대 중심에서 돌풍을 일으킨 K-콘텐츠
K-콘텐츠 열풍, 인정하십니까?
2021년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를 사로잡았던 화제의 콘텐츠는 아마도 <오징어게임, Squid Game>이었을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타이틀이 짙게 새겨진 K-콘텐츠로 지난 9월 공개된 후 국내를 넘어 해외 구독자들의 관심과 사랑까지 한 몸에 받았다. 2019년 전 세계 영화제에서 수도 없이 이름이 불렸던 영화 <기생충>처럼 2021년 <오징어게임>은 국내외 미디어와 SNS 등에서 꾸준하게 회자되기도 했다.
※ <오징어게임>은 31회 <고담 어워즈>에서 최우수 장편 시리즈 부문에서 수상했고 7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는 작품상에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까지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그 밖에 27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도 노미네이트 되었다. 시상식은 2022년 1월이다.
K-콘텐츠의 열풍은 <오징어게임>으로 끝나지 않았다. 애초에 <킹덤>으로 한차례 돌풍을 일으킨 바 있고 <스위트홈>, <인간수업> 등 공중파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하면서 독특한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대한민국 콘텐츠의 무한한 가능성을 글로벌하게 알리기도 했다. <오징어게임> 바로 이전에는 <D.P>가 있었고 그 뒤로는 <마이네임>과 <지옥> 등이 있었다. 8월 27일 <D.P>부터 11월 19일 <지옥>까지 매달 한 작품씩 넷플릭스에 공개된 셈이다. 워낙 퀄리티 좋은 작품들이기도 하고 애초에 시즌2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도 있다. 2021년을 뜨겁게 달구던 K-콘텐츠는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공개된 <고요의 바다>로 2021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정우성이 제작에 직접 참여했고 공유와 배두나를 투톱으로 내세운 SF 스릴러물로 지구와 늘 함께하는 '달'을 배경으로 했다. 1981년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최항용 감독의 2014년 동명의 졸업작품을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화한 것이다.
국내 OTT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올해 넷플릭스는 전 세계 2억 명이 넘는 구독자수를 확보하여 OTT 춘추전국시대 속에서 독주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K-콘텐츠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동안 우리나라에는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가 들어왔고 급기야 타임워너의 OTT인 'HBO Max'까지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 각각의 OTT 플랫폼을 앞세운 다양한 콘텐츠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를 대항하고 있는 국내 OTT 상황은 어떠할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OTT 플랫폼으로는 국내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이 합작으로 구축한 웨이브(wavve), CJ의 티빙(tving) 그리고 왓챠와 쿠팡플레이, KT의 시즌(seezn)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웨이브의 경우 공중파 3사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작품들을 무삭제 또는 감독판 형태로 본편과 더불어 숨겨진 이야기까지 볼 수 있게 했다. 물론 웨이브 오리지널도 꾸준하게 제작되고 있다. 변요한 주연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라는 작품은 넬레 노이하우스(Nele Neuhaus) 작가의 추리 소설 시리즈인 <타우누스>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동명의 소설을 소재로 했는데 변영주 감독이 오래간만에 메가폰을 잡았다고 한다. 임시완과 고아성 주연의 <트레이서>도 웨이브 공개 예정작이다. 최근 티빙의 구독자를 증폭시켰던 <술꾼도시여자들>은 그만큼 엄청난 인기를 불러모았고 또 회자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 송지효 주연의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머리가 벗겨진 이서진의 모습이 화제였던 <내과 박원장>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티빙 오리지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넘쳐나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 우리는 명확하게 정해진 24시간을 쪼개서 살고 있고 그 안에서 단 몇 시간 (사람마다 다를테니 짧다면 짧게 혹은 길다면 길게) 문화생활을 즐길 뿐이다. 개인적으로도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다. 그럼에도 어느 한 작품에 중독되면 앞만 보며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결승선까지 정주행하고 만다.
<오징어게임>의 경우 전체 9부작으로 러닝타임을 합치면 대략 8시간에 달한다. 2시간짜리 영화 4편을 이어 놓은듯한 러닝타임이니 마음만 먹으면 짧고 굵게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참고로 <킹덤> 시즌1과 시즌2 그리고 <D.P> 모두 6부작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러닝타임은 각각 300분을 전후로 한다.
OTT를 자주 즐기는 구독자들의 경우 넷플릭스든 뭐든 하나만 소비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상황에 따라 무엇보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주변 지인들은 대다수 최소 2개 이상의 OTT를 구독한다고 했다. 필자는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이전에는 왓챠를 구독한 경험이 있다. 이를 두고 멀티 구독(multiple-subscriptions) 또는 복수 구독이나 교차 구독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미국 현지의 경우에도 넷플릭스와 아마존프라임 등 2개 이상을 보는 경우들이 많다고 한다. 'Statista' 자료에서 보면 넷플릭스 구독자 중 84%가 아마존프라임을 보고 있고 50% 이상이 훌루(Hulu)까지 본다고 한다. 각 OTT에 배열된 콘텐츠를 모두 소비할 수는 없을테니 결국엔 독점 콘텐츠이면서 킬러 콘텐츠이자 인기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경우들이 단연 눈에 보일 것이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맛스럽고 멋스러운 요리로 만들어야!
그런 의미에서 올해 K-콘텐츠는 (적어도 내게) 독점 콘텐츠이자 킬러 콘텐츠였다. <킹덤>은 김은희 작가가, <오징어게임>은 황동혁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했지만 <D.P>나 <지옥>등은 웹툰을 기반으로 제작된 콘텐츠다. 앞서 언급했던 티빙의 <술꾼도시여자들> 역시 미깡 작가의 <술꾼도시처녀들>이라는 웹툰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내과 박원장> 또한 웹툰이 원작이다. 소설을 넘어 웹툰 자체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는 일이야 하루 이틀 아니겠지만 이를 얼마나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맛깔나게 연출할 수 있는지에 따라 호불호 및 흥행 여부가 갈릴듯하다. tvN에서 방영하던 <유미의 세포들>은 주인공 김고은, 안보현과 더불어 3D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함께 접목해 제작되기도 했다. 이동건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애플TV+가 국내 상륙하면서 프로모션 했던 김지운 감독, 이선균 주연의 <닥터 브레인> 역시 웹툰을 기반으로 한다. 참고로 <닥터 브레인>은 흥행 여부를 떠나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2021년 베스트 한국 드라마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넷플릭스 작품으로는 <무브 투 헤븐>과 <D.P>가 있었다. 모든 콘텐츠가 그러한 것은 아닐 테지만 좋은 웹툰이 매우 훌륭한 소재가 되어 능력 있는 감독과 배우들을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이겠다.
좋은 콘텐츠는 어떻게 탄생할까? <오징어게임> 이후의 K-콘텐츠는 다시 한번 그 선풍적 인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닥터 브레인>의 김지운 감독이 인터뷰 한 내용이 떠오른다. 국내 제작 환경에서 연출자가 다소 제한적 위치에 놓여있다면 할리우드에서는 감독, 제작사, 배우 모두 서로 눈치 싸움을 하는 듯 그들이 가진 권력 자체를 조금씩 나누는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애플은 창작을 하는 제작진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상호 존중한다고도 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넷플릭스 또한 크리에이터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지원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징어게임>의 시나리오 또한 넷플릭스의 지원 덕분에 제작 가능했었다는 황동혁 감독의 이야기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와 그렇게 만들어진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쟁력은 넘사벽이었다. 그러니 구독자수를 대략 비교만 해도 한때 2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었다. 토종 OTT가 글로벌 OTT와 경쟁하여 살아남으려면 토종 OTT 자체도 글로벌 진출 발판을 마련해야 할 뿐 아니라 좋은 콘텐츠 제작을 위한 적극적 투자가 필요하고 콘텐츠 자율등급제가 조속히 안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콘텐츠를 제작하고 수급하게 되면 빠른 시간 내에 각 OTT 플랫폼에 띄워 구독자들에게 공개해야 하지만 '심의'라는 절차가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OTT 기업들은 이러한 절차로 인해 적절한 배포 시기를 놓치게 되니 자율적으로 등급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정부도 토종 OTT에 힘을 더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글로벌 진출을 위한 기술 개발 지원을, 문화체육관광부는 콘텐츠 제작에 대한 예산 지원안까지 마련하여 콘텐츠 제작, 배포, 유통, 해외진출까지 두루 힘을 써보겠다고 했다. 그밖에 방통위에 금융위까지 정부부처들이 나서기도 했다. 아직까지 (정부의) 예산 규모가 크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하지만 그 숙제는 온전히 정부가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라 8할 이상 OTT 기업의 몫이지 않을까?
맺는말
K-콘텐츠가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한 공룡의 힘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인데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콘텐츠의 IP(지식재산권)라던가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수익들을 온전히 그들이 독식하는 것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국내 매체들 역시 글로벌 OTT 규제와 독식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세웠다.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와 한 목소리를 냈지만 네티즌들의 댓글들 대다수는 기사 내용과 상반되기도 했다. 공격적으로 투자한 넷플릭스가 자신의 플랫폼에서 발생한 수익을 가져간다는 것인데 왜 이를 독식이라 표현하고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는 것인지 대다수 탄식 섞인 이야기들이었다. 저들이 가져간 수익을 어떻게 규제하고 어떻게 재분배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도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앞서야 하지 않을까? 규제가 필요하다면 그건 그다음이어야 하겠다. 어쨌든 정부 차원으로도 토종 OTT 지원에 나선 셈이고 토종 OTT 또한 킬러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리며 글로벌 OTT과 맞서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정부 차원의 제작 지원과 자율등급제 등이 국내 OTT의 힘을 얼마나 더 키워줄 수 있을까? 감히 말하지만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확보하는 것 자체가 가장 강력한 경쟁력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OTT 콘텐츠는 기존 공중파의 드라마를 뛰어넘기에 충분하고 한 편의 영화로 끝나는 작품들 또한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와 (약간이더라도) 차별화를 보이기도 한다. 결국 OTT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OTT 춘추전국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아주 적합하고 매우 바람직한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우리 일상에 자리한 OTT의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내년에도 지속하게 될 테지만 <오징어게임>이 K-콘텐츠의 기준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 좋은 소재가 훌륭한 배우와 제작진을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제작 환경과 아낌없는 투자를 만나 퀄리티 좋은 콘텐츠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OTT가 지속되는 한, 꾸준하게 말이다.
- <Share of subscription video-on-demand (SVOD) subscribers who also subscribe to other services in the United States as of December 2020, by service>(2021.11.29), statista.com
- <The 20 Best Korean Dramas Of 2021>(2021.12.15), forbes.com
- <디지털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과 과제> 일부 참고, kocca.kr : 국무조정실 주도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7개 정부부처의 미디어산업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