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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Mar 10. 2023

'현상'에 주목하는 M. 나이트 샤말란의 신작

아름다운 오두막에 울려 퍼진 섬뜩하고 낯선 노크, <똑똑똑>


※ 아래 내용 중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꼭 유의해주세요.


푸른 나무들이 우거져 파릇파릇한 것이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풍경이다. 옆으로는 호수가 있고 숲 속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다. 도심을 떠나 이곳으로 휴가를 온 가족들이 있다. 두 사람의 아빠가 있고 이들과 닮진 않았지만 매우 귀여운 동양인 아이 하나가 보인다. 아빠가 둘이라니 성소수자인 듯하고 동양인 아이가 딸이라고 하니 입양된 아이다. 어떤 식으로 만났든 그들은 가족이다. 그런데 이들 앞에 낯선 방문자들이 문을 두드린다. 그들은 대체 왜 이곳을 찾아왔을까? 이들 가족의 희생이 인류 멸망을 막을 수 있다며 뜬금없는 아포칼립스를 예고하기에 이른다. 가족을 지키고자 한다면 아무 죄 없는 인류가 종말이라는 것에 다가서게 되겠지만 역으로 인류를 살리고자 한다면 눈앞에서 누군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죄는 없다.

이 작품은 2천만 달러(한화 약 264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갔고 <식스센스> 등 반전 영화의 거장이라 할만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역대급으로 빠르게 각본을 썼다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똑똑똑>이라는 이름으로 박스오피스에 올라가지만 영문 제목으로는 <Knock at the cabin>이다. 원작 소설은 폴 G. 트렘블레이의 <세상 끝의 오두막>이라는 공포물이었다. 미국 공포 작가 협회의 브램 스토커 소설상 수상 작품이기도 하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똑똑똑>   출처 : 유니버설픽쳐스


※ 아래 내용 중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꼭 유의해주세요.



이 글의 타이틀로 무엇을 적을까 하다가, 감독의 몇몇 필모그래피를 감안하여 '현상에 주목한다'라고 써붙여봤다. 굳이 말이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라스트 에어벤더>나 <애프터 어스>와 같은 SF 혹은 판타지 작품들도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샤말란 브랜드에는 감독의 고유한 특징들이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플롯이든 배우든 당연히 다르게 가지만 굉장히 유사한 구석이 있다. 창 밖으로 햇살이 스며들어 고즈넉하고 평화로운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어두운 분위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주인공의 흔들리는 눈빛에 어느새 스며든다. 그런데 미국 어디선가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그리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라 대놓고 어떤 무기 따위를 들고 있어도 제대로 쓸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극 중에는 193cm나 되는 프로레슬러이자 보디빌러 출신의 데이브 바티스타가 안경을 쓰고 등장한다. 엄청난 거구인지라 펀치 한방에도 나가떨어질 만큼의 포스를 자랑하지만 굉장히 차분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드렉스는 온데간데 없다. 그의 입에서 종말과 희생,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사이비 종교를 떠오르게 만든다. 믿고 싶지 않은 말을 내뱉고 있는 찰나의 순간에도 어떻게든 탈출을 감행하려는 가족들 눈앞에서 불쑥 찾아온 이들이 하나씩 피를 뿜어내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급기야 이들이 말한 대로 인류가 재난을 맞이한다. 지진이나 해일, 전염병 등이 일종의 천재지변이자 자연현상이라고 한다면 비행기가 추풍낙엽처럼 추락하는 모습은 초자연현상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이 이들의 죽음으로 연달아 생긴다는 것도 샤말란 감독이 만들어낸 초자연현상이겠다.


 

거구의 데이브 바티스타가 차분한 레너드 역할을 연기했다. 그의 앞에는 웬을 연기한 크리스틴 쿠이.  출처 : 유니버설픽쳐스


웬의 두 아빠로 출연한 조나단 그로프와 벤 알드리지가 각각 에릭과 앤드류를 연기한다. 웬은 두 사람을 아빠라고 부른다. 에릭의 모습을 보면 굉장히 센서티브 한 느낌이다. 반면 앤드류는 와일드하면서 즉흥적인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함께 살고 있지만 결이 다른 느낌이다. 낯선 이들의 방문과 그들이 줄곧 이야기하는 인류의 운명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진실 혹은 거짓에도 다르게 반응하는 건 예고된 디스토피아를 떠나 마치 가톨릭이든 기독교든 불교든 사이비든 어쩌면 (종교적으로) '믿음'이라는 입장에서 연출되는듯 하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믿으려 하고 또 누군가는 개소리라며 불신하고 있는 것처럼.

 

왼쪽부터 앤드류(벤 알드리지), 웬(크리스틴 쿠이), 에릭(조나단 그로프).  출처 : 유니버설픽쳐스



영화 <식스센스> 이후로는 굉장한 반전을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라고 영화를 본 누군가 극장 앞에서 외쳤다는 소문처럼 영화 관람 전 결코 알아서는 안 될 굵직한 반전 하나가 샤말란을 대표하는 시그니처가 된 적도 있다. <빌리지>나 <싸인>, <해프닝>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난 <식스센스>의 결말을 알고 봤다. 하지만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음에도 차갑고 냉랭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플롯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서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그런 쪽으로는 굉장히 프로페셔널하다. 그 후로 뒤통수 세게 후려치는 특급반전을 선사하기도 하는데 알 수 없는 어떤 특정 현상에 집중하다가도 결말에서 맥없이 축 늘어지는 경우들도 종종 있어왔다. 감독은 자신의 작품 속에 자신이 만들어낸 (어떤 현상과 이어지는) 매개체들을 반드시 집어넣는다. 그 매개체란 '외계인'일 수도 있고 '유령'일 수도 있다. 혹은 보이지 않는 기괴한 현상들이다. 초자연현상이든 지극히 자연현상이든 어떠한 현상에 포커싱하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감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스릴러와 서스펜스, 미스터리 연출에 매우 능한 사람인지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품의 배경 자체가 분명히 밝은데도 어두운 면이 눈에 보이는듯한 착시현상(어쩌면 착각)도 있더랬다. <올드>라는 작품도 그랬다. 아름다운 해변이고 또 휴양지인데 따사로움 없이 매우 차가웠다. 보는 관객들을 습하고 어두운 통로로 잡아끌었지만 그 뿐이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결말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M. 나이트 샤말란'이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프랜차이즈로 각인되었다. <식스센스> 이후 그의 이름은 이른바 명성이 되었다. 모든 감독들이 '흥행'이라던가 '웰메이드'를 보증하지 않듯 샤말란 감독 역시 반전이라는 굵직한 결과물을 매번 선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일련의 사건과 현상에 집중한다면 플롯 자체도 납득이 갈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스오피스를 넘어 OTT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수많은 콘텐츠를 소화해 내는 관객과 시청자들이 있다. 이제 관객들은 충분히 똑똑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세요'라고 던지는 건 감히 말해 위험한 짓이다.


※ 위 내용 중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꼭 유의해주세요.

※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여전히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시선과 감상에 대한 후기는 사람마다 다른 법, 저 역시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꾹꾹 눌러 담아 작성한 리뷰랍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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